우물 안 개구리의 시작
2004년 4월 30일 금요일이었다.
구청의 대강당에 조직원으로서의 첫발을 뗀 사람들이 모여 임용장 수여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양한 직렬들 틈에서 나와 같은 직렬의 동기는 나를 포함해서 3명이었고, 같은 과로 발령이 난 신규 조직원은 나를 포함 총 4명이었다.
몇 년 동안 이렇게 많은 인원이 대거 임용된 적이 없다고 했다. 실제로 근무지에 가보니 바로 윗 기수 2명이 전년도에 임용되었고 그 위로는 나이를 껑충 뛰어넘어 40대 주사님들이 계셨으니 오랫동안 신규자가 없었던 것은 맞더라.
위생과로 발령을 받은 우리 4명은 임용장을 수여받고 위생과 서무 담당이라고 불리는 분의 안내에 따라 사무실로 입성했다.
두근두근 떨리는 마음으로 사무실에 들어갔지만 서너 명만이 있을 뿐 사람들이 보이질 않았다. 하필 이날이 부서 체육행사 날이란다. 필수인원을 제외하고 과장님 포함 대부분의 직원이 행사장에 있으니 인사드리러 가자고 한다.
신규자가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두말없이 따라나서 차를 타고 멀지 않은 곳으로 이동했다. 직원 분들은 산행을 마치고 내려와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계시던 차였다. 그렇게 첫 만남은 식당에서 각자 떨리는 소개로 이어졌고 바로 우리는 과의 일원이 되어 족구에 투입되었다.
임용장 받는 날이라 우리 네 명은 정장 차림이었는데 족구라니!! 그걸 핑계로 신규자가 못하겠다고 뺀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 정장을 곱게 차려입고 구두를 신은 우리는 족구를 통해 서로에게 강렬한 첫인상을 남기며 첫 출근의 추억으로 삼았다.
이튿날인 2004년 5월은 주말 근무가 있었던 시기였다. 같은 해 7월부터 본격적인 주 5일 근무제가 되었기에 두 달은 주말 오전 근무를 했었고 같은 해 연말 17시에 퇴근하는 동절기 단축 근무도 경험한 나는야 옛날 사람.
2004년은 공무원 시험 과목도 변경된 첫 해였고, 관공서의 주말근무가 없어지고, 동절기 단축 근무도 해가 바뀌며 없어지면서 지금의 주 5일 근무형태를 토대를 갖추게 된 해라고 볼 수 있겠다.
어쨌든 나는 그런 시기에 당당하게 9급 조직원이 되어 지도팀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땐 몰랐다. 4년을 자리 이동 없이 같은 팀에서 근무하게 될 줄은...
팀장 하나에 팀원 셋, 나를 제외한 세분은 당시 사십 대 초반정도 되셨을 것 같다. 띠 동갑을 훨씬 넘는 나이차가 어려워 어찌할 바 모르던 팀 막내였다.
지도팀은 쉽게 말해 단속반이었다. 단속 대상은 식당, 다방, 유흥 및 단란 주점, 숙박업소, 공중목욕탕 등이었고 무허가 업소도 포함된다. 식품위생법, 공중위생법을 섭렵하고 민원이 접수되거나 점검 시 위반되는 사항이 있으면 확인서를 받아 행정처분을 때린(?)다. 행정처분에는 가벼운 시정명령이나 경고부터 영업정지 및 과징금, 과태료 같은 사항도 있기에 처분 내용에 따라 업주와 크고 작은 실랑이가 생기곤 한다. 때론 목소리를 높여 싸워야 하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여기서 잠깐, 이 일을 해야 했던 당시 나의 성향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당시 스물여섯 살이었던 난 지금의 MBTI로 치면 대문자 I의 성향을 가진 아주 극도로 소심하고 목소리도 작고 자신감도 없으며 말수도 적은 내성적인 성향의 거의 끝판왕 정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이런 사람이 단속 업무를? 사수로부터 팀의 업무 내용을 듣고 머릿속이 하얘졌다. 민원인과의 불편한 접촉이 많기에 누구나 기피하는 팀이었는데 하필 내가 그 자리로 가게 된 것이다.
해야 할 일들이 두려웠지만 티를 낼 순 없었다. 자신이 없다고 차마 얘기할 수도 없었다. 내 감정과 생각 그리고 의견을 내는 데에 서투른 극히 내성적인 단속반원이었다.
일단 사수 두 분을 쫄래쫄래 따라다녔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니 두 분이 어떻게 하시는지 가만히 보기만 했다. 이렇게 아무것도 안 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말없이 지켜봤다. 지도 점검은 베테랑이신 두 분이 척척 알아서 하셨고 젊은 나는 두 분이 어려워하시는 문서작업을 하며 지침서와 법령을 익혀나갔다.
그렇게 무사히 어렵지 않게 6개월이 지나고 '시보'딱지가 떨어져 나갔다. 시보라는 건 공무원이 되고 6개월간의 유예기간을 두는 것으로 이 기간에 문제를 일으키면 짤릴 수도 있는 임시 공무원 딱지라고나 할까? 이제 난 서기보(9급) 시보에서 완전한 서기보(9급)가 된 것이다.
"우리 막내~ 지침서랑 법 보면서 이론은 잘 익혔을 테고 이제 본격적으로 현장에 투입되야겠지?"
감사하게도 나의 성향을 파악하시고 문서 작성이라는 강점을 알아 봐 주신 두 사수님께서 기다려 주신 것이었다.
6개월간 현장을 따라다니며 보고 들은 것은 나도 모르게 체득이 되어 업주 앞에서 저절로 표출되고 있었다. 이십 대 후반 어린 여자 공무원이라고 무시하는 남자 사장님들도 많았지만 떨리는 마음을 최대한 티 내지 않고 할 말을 하는 우수한 조직원으로 거듭나고 있었다.
식약청, 시청 합동단속에 투입되었고 유흥, 단란 주점 야간단속을 할 땐 속으로 벌벌 떨며 깍뚜기 아저씨나 성깔 있는 언니야들과 대면하기도 했다. 단속업무를 하며 차츰 나 같은 사람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할 수 있는 일과 나와 맞는 일이 일치하는 건 아니다.
지적하고 잔소리하고 싫은 소리를 해야 하는 일에 들어맞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더더군다나 나의 성향과도 너무 동떨어진 일이기에 일을 잘한다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늘 불편했다.
시간은 흐르고 반복되는 일은 익숙해지면서 8급 승진을 할 무렵 슬슬 업무가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다들 기피하는 업무라서 그랬을까? 승진을 해도 자리 이동이 없었다.
'고작 2년 된 조직원이 지겹다고 하면 안 되지, 앞으로 근무해야 할 날이 구만리인데...'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 같은 내일이 반복되는 지겨움은 일상과 같은 보호색을 띠며 동시에 내 안으로 흡수되고 다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되어 버린다.
이것은 어찌 보면 깊은 우물 속 그 안에서 안정을 느끼며 조금씩 더 깊숙이 들어가 버리는 개구리가 되어 가고 있는 모습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