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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정의 백설기 Oct 24. 2021

바디프로필 촬영을 앞두고 통곡했다

찜질과 부황이 있는 오후

운동 4개월 만에 난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질질 짜고 있다. 무릎과 허리 부상, 갑상선과 호르몬 이상으로 바디프로필 촬영 3주 전 운동을 관두게 된 것이다. 몸에 새겨지는 기억은 강력해서, 생명수와 같은 술까지 끊으며 나를 몰아 붙인 4개월여 간의 운동이 물거품이 됐다는 생각은 집에 도착할 때까지 눈물을 멎게 하지 않았다. 대체 뭐가 문제였을까. 자, 4개월 전으로 돌아가보자. 

"50대는 첫사랑 같아.. 있긴 있었는데 생각이 안나." 
"30대는 불륜 같아. 후반으로 갈수록 숨기고 싶어.." 
 회식 중에 들은 얘기들에 따르면 난 마침내, 불륜의 클라이막스는 벗어났다. 마흔 줄에 들어서며, 파란만장하고 거창한 계획보다는 12개의 단기 목표를 끊어 치며, 심신의 코어를 다시 세워보자고 다짐했건만, 여전히 코어는 무너지고, 내장 지방은 늘어나고 있다. PT를 등록한 헬스장에서 바디프로필을 추천했고, 3개월 후 촬영을 목표로 운동에 들어갔다. 전문가에게 PT를 받으면 내가 그간 얼마나 잘못된 자세로 운동을 했는지, 호흡 방법이나 힘 주는 부위를 달리하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운동 효과가 달라지는 지를 체감했다. 몸에 이상이 온 뒤 정밀 검사를 해본 결과 문제는 다리를 즐겨 꼬는 내 평소 자세와 함께 정해진 스케줄 외의 무리한 운동이었다. 전시 상황으로 생각하고 몸에 브레이크를 걸어 경고음을 울린 것이다.   

보험 실비 서류를 몇 달에 한번 챙기다 보면 알 수 있다. 내 몸의 어디어디가 자주 고장 나는지, 그나마 움직일 수 있도록 하려면 어디에 기름을 칠하고 어디 볼트를 조여야 하는지. 매일 아침 닦는 난초 잎 마냥 혼자 자기 자신을 잘 보살피며 산다는 건 이토록 힘든 일이었다. 하물며 난 식물 연쇄살인범이 아니었던가.
제주에서 하타 요가 수업을 들었을 때 ‘내 몸에 이런 근육이 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이내믹한 움직임과 근육을 복합적으로 써야 하는 동작이 많은 하타요가는 처음 접하는 이들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순간이 많다. 나와 붙어 있는 내내 딴집 살림 하고 있던 근육들이 ‘나한테 왜 이러냐’며 비명을 지른다. 알고 있다. 지금 내가 40년간 한 번도 써본 적 없는 근육을 괴롭히고 있다는 사실을.
"잘 들여다 보세요 분명히 몸이 좋아하는 소리, 기뻐하고 있는 게 보일 거예요. 고통스러웠건 부분이 풀리는 소리, 몸의 시원함, 고통도 그대로 직시하세요.” 선생님, 저한테 왜 이러세요. 제주에서의 하타 요가 경험은 바디프로필을 준비하며 생긴 부작용과 함께 내 몸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는 계기가 되어 주었다. 

그리고 재활을 거쳐 지금은 바디프로필이 아닌 체형 교정 PT를 받고 있다. 아침엔 무릎과 허리에 무리가 없는 산책을 시작했다. AM 5:30. 모르는 번호를 보니 차 빼달라는 건가. 출근길에 함흥차사인 앞차 주인을 기다리다 못해 이중주차를 해두고 옮겨둔다는 것을 깜빡했다. 더 잘까 하다가 <새벽3시30분에 기상하는 기적>의 저자를 생각하며 눈을 떴다. 미라클 모닝이 유행이라지 않은가. 새벽 4시에는 못 일어나지만 5시 반도 대단하다고 뇌까리며 대충 걸치고 집을 나선다. 아침에 걷는 것도 모닝 페이퍼와 마찬가지로 아침 생각을 배설하게 만드는 기능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에 눈뜨자 마자 연필을 들고 끄적이기 시작하는 것은 내 감정 배설을 돕는다. 밤새 쌓인 잠의 잔몽이든 프로이트 할아버지가 말하는 무의식이든 현실의 고달픔을 풀이해내고 싶은 꿈의 메타포이든 뭔가를 시작하게 해준다. 한 걸음 한 걸음이 엉망으로 뭉쳐져 있던 생각의 타래를 풀어내게 만드는 볼펜 뚜껑 역할을 한달까.
 
모닝 페이퍼에 이어 매일 아침 공복 달리기를 한다. 그리고 그 길에서 동부간선을 질주하는 앰뷸런스를 만난다. 매일 빠짐 없이 적게는 1~2대부터 4대까지 본 적도 있다. 저 안에 실려있는 환자는 자신이 오늘 저 침대에 누워있을 줄 어제는 알았을까.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하고, 또 그때문에 생긴 질환 때문에 마사지를 받고 물리치료를 받고, 우린 도시의 이곳 저곳을 왔다 갔다 질주한다. 닦고 조이고 기름치며 내 몸이 주는 신호에 귀를 기울이는 것, 그것이 내 몸에 대한 예의라는 걸 아프고 나서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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