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진 한 장에 목숨 걸어? 인생은 동영상처럼 살아!(Feat.김종국)
종잇장 근육을 지닌 내가 들은 말 "횐님! 근육 진짜 잘 붙을 몸이에요!"
퍼스널 트레이닝(PT)을 받은지 4개월 만에 지금 난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아니, 통곡에 가깝다고 해야 하나. 무릎과 허리 부상, 갑상선과 호르몬 이상으로 인한 생리 중단 등으로, 4달 동안 준비한 바디프로필 촬영을 취소하게 된 것이다. 촬영을 불과 3주 앞두고 생긴 일이었다. 몸에 새겨지는 기억은 강력해서, 주 8일 생명수처럼 마시던 술까지 끊으며 나를 몰아 붙인 4개월여 간의 운동이 물거품이 됐다는 생각은 집에 도착할 때까지 눈물을 멎게 하지 않았다. 마치 먹을 것을 뺏긴 어린 아이처럼 꺽꺽대며 서럽게 우는 내가 울면서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리둥절한 채로 핸들에 기대 1시간을 꺼이꺼이 울었다. 대체 뭐가 문제였을까. 자, 4개월 전으로 돌아가보자.
"50대는 첫사랑 같아.. 있긴 있었는데 생각이 안나."
"30대는 불륜 같아. 후반으로 갈수록 숨기고 싶어.."
올해 초, 회식 중에 들은 얘기들에 따르면 난 마침내, 불륜의 클라이막스는 벗어난 나이가 됐다. 마흔 줄에 들어서며, 파란만장하고 거창한 계획보다는 12개의 단기 목표를 끊어 치며, 심신의 코어를 다시 세워보자고 다짐했건만, 여전히 코어는 무너지고, 가슴은 처지며 내장 지방은 늘어나고 있다. 그러다 찾아온 갑작스런 허리 통증. 인심 좋은 할아버지처럼 굳은살로 가득한 손바닥으로 성실한 고양이처럼 내 허리에 꾹꾹이를 해대던 의사는 "근육이 종잇장처럼 얇다"는 전문가 소견을 남겼다. 아, 더 안 무너지려면 운동을 해야겠구나. 그럼 PT라도 받아볼까. 카드 결제는 수수료가 많이 붙는다기에 적금을 해약한 현금으로 헬스장에서 PT를 받기 시작했다. 청담동에 위치한 바디프로필 전문 PT샵으로 인스타에서 유명한 곳이었다. 전문가에게 PT를 받으면서 내가 그간 얼마나 잘못된 자세로 운동을 했는지, 호흡 방법이나 힘 주는 부위를 달리하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운동 효과가 달라지는지를 체감했다(고 믿었다).
"횐님~! 횐님은 자세가 진짜 좋아요! 우리 바디 프로필 갑시다!"
늘 자세가 좋다며 침이 마르게 칭찬을 하던 내 담당 트레이너는 회원들의 체지방을 가장 빠른 속도로 빼줘 샵에서도 실적 1위를 기록한 바디프로필 전문 트레이너였다. 그녀는 얼마 지나지 않아 내게 바디프로필을 추천했고, 그녀의 추천에 따라 요즘 가장 핫하다는 성수 바디프로필 스튜디오에 예약을 한 후 3개월 후 촬영을 목표로 운동에 들어갔다. 하지만 수십 만의 팔로워를 거느린 바디 인플루언서이자, 활어 같은 20대의 몸을 가진 그 트레이너는 성긴 그물에도 쉽게 걸릴 만큼 지친 40대의 몸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 주5일 5km 공복 유산소, 주 3일 웨이트를 견뎌내기엔 40년 넘게근육 운동이라고는 1도 안하던 내 몸이 너무 보잘것 없었던 것이다. '삼대 300'도 아닌 몸으로 100kg 레그 프레스 등을 무리하게 진행한 탓에 1차로 무릎에 염증이 생겼고, 이윽고 허리마저 망가졌다. 평소 안 좋았던 자세와 과한 운동이 서로 성공적인 콜라보를 이루어 골격과 근육을 망가뜨린 것이다. 여기에 긴급 구호 수준으로 줄어든 영양 상태 역시 몸의 세포들로 하여금 브레이크를 걸어 생리마저 끊기게 된다. 무려 3개월이나.
산부인과 전문의는 "나라에 전쟁이 나면 그 나라의 여성들이 모두 생리 불순에 걸려요. 패션 모델도 일찍 폐경이 오잖아요"라며, '당장 운동을 중단할 것'을 권고했다. 재활의학과 선생님 역시 "연골은 한번 닳으면 끝"이라며 '촬영하느라 무릎 아작낼 거냐'며 혀를 쯧쯧 차며 바프 촬영 취소를 권유했다. 거듭된 의사들의 겁박에 운동 중단과 촬영 취소에 들어간 나는 바프 준비생에서 환자 모드로 돌입한다. 족저근막염, 접촉성 피부염, 탈모, 생리 불순, 허리 전방전위와 무릎 염증. 평생 들어보지도, 앓아보지도 않았던 질병을 도장 깨기하듯 경험하며 종합병원이 된 몸으로 병원 투어를 했다. 촬영에 맞춘 지방 커팅을 위해 200g에서 100g으로, 또 80g으로 줄어들 대로 줄어든 탄수화물은 내 몸으로 하여금 '앗! 이건 지금 전시 상황인 거군!' 이라고 생각하게 만들었단다. 부족한 영양은 갑상선 이상과 호르몬 불균형을 일 잘하는 저승사자처럼 차례차례 성실하게 불러왔다.
식물 연쇄살인범의 몸 가꾸기
4개월 간 쏟아부은 돈과 시간과 피땀눈물, 그간 마시지 못한 내 술병의 숫자들이 억울해서라도 눈물은 쉬이 그치지 않았다. 눈물이 잦아들고 난 처음엔 '트레이너를 고소해야 되나, 이거 금융치료 함 해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전문가이고, 난 비전문가 아닌가.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본다. 과연 이 부상에 그 트레이너의 잘못만 있었을까? 시키지도 않았는데, 코어에 근육이 생겨나기 전에 시작한 무리한 5km 러닝과 평소의 안좋은 자세들. 피로 신호에도 불구하고 몰아붙인 야근과 모임들. 하지만 가장 큰 건 따로 있었다.
'바디 프로필 사진으로 내 인생 다시 빛나 보는 거야!'라고 결심하고 밀어붙인 내 속마음.
노화를 역전시키면 인생이 행복해지지 않을까라는 나의 나이브함. 지금 내 인생을 불만족스럽게 느껴지게 하는 내 비주얼이 바뀌면 불친절한 사회가 다시 친절해지지 않을까라는 믿음. 번호만 물어간 채 잠적한 썸남들이 몰라보게 달라진 SNS 속 내 사진을 보고 다시 전화를 걸어오지 않을까라는 기대. 납작해진 배와 가늘어진 팔, 다시 올라간 힙 사진을 지닌 채 SNS에 올라갈 '나도 모르는 나'를 원하던 내 얄팍한 목적 말이다.
보험 실비 서류를 몇 달에 한번 챙기다 보면 알 수 있다. 내 몸의 어디어디가 자주 고장 나는지, 그나마 움직일 수 있도록 하려면 어디에 기름을 칠하고 어디 볼트를 조여야 하는지. 매일 아침 닦는 난초 잎 마냥 혼자 자기 자신을 잘 보살피며 산다는 건 이토록 힘든 일이었다. 하물며 나는 그 키우기 쉽다는 스투키조차 죽여버리는 식물 연쇄살인범이 아니었던가.
몇 년 전 제주에서 하타 요가 수업을 들었을 때 ‘내 몸에 이런 근육이 있었던가’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다이내믹한 움직임과 근육을 복합적으로 써야 하는 동작이 많은 하타요가는 처음 접하는 이들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순간이 많다. 나와 붙어 있는 내내 서로 딴집 살림 하고 있던 근육들이 ‘나한테 왜 이러냐’며 비명을 지른다. 알고 있다. 지금 내가 40년간 한 번도 써본 적 없는 근육을 괴롭히고 있다는 사실을.
"잘 들여다 보세요 분명히 몸이 좋아하는 소리, 기뻐하고 있는 게 보일 거예요. 고통스러웠건 부분이 풀리는 소리, 몸의 시원함, 고통도 그대로 직시하세요.” 선생님, 저한테 왜 이러세요. 제주에서의 하타 요가 경험은 내 몸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는 계기가 되어 주었다. 하지만 최근 몇 달 간 나는 하타요가 중 몸이 속삭이는 소리는커녕, 내 몸이 지르는 비명 소리를 듣지 못할 만큼 나는 '사진 한 장이 선사할 환상'에 젖어 있었다.
인생을 동영상처럼 살기 1단계, 내 몸이 내는 소리에 성실히 귀 기울이기
AM 5:30. 더 잘까 하다가 <새벽3시30분에 기상하는 기적>의 저자를 생각하며 눈을 떴다. 새벽 4시에는 못 일어나지만 5시 반도 대단하다고 뇌까리며 스트레칭과 5분 명상을 하곤 집을 나선다. 두 번의 연기를 거쳐 아예 취소한 바디 프로필 촬영 대신, 이젠 바디프로필이 아닌 체형 교정을 위한 운동을 하고 있다. 아침엔 무릎과 허리에 무리가 없는 수영과 가벼운 산책을 시작했다. 아침에 걷는 것 역시 모닝 페이퍼와 마찬가지로 아침 생각을 배설하게 만드는 기능이 있는 것 같다. 왼쪽, 오른쪽 성실하게 땅을 밟는 내 두 발이 종이에 연필 촉을 대는 순간처럼 아침의 감정 배변을 돕는다.
밤새 쌓인 잠의 잔몽? 혹은 프로이트 할아버지가 말하는 무의식? 아침 산책은 모닝 페이퍼와 마찬가지로 현실의 고달픔을 풀이해내고 싶은 꿈의 메타포마냥 뭔가를 시작하게 해준다. 왼발 오른발 땅을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이 엉망으로 뭉쳐져 있던 생각의 타래를 풀어내게 만드는 코바늘 역할을 한달까. 아침 중랑길 산책을 하며 매일 빠짐 없이 적게는 1~2대부터 많을 때는 4대까지 앰뷸런스를 마주친다. 오늘도 그 산책길에서 앰뷸런스를 만났다. 저 안에 실려 있는 환자는 자신이 오늘 침대에 실려 동부간선을 달릴 줄 어제 알았을까. 4개월 전 바디 프로필 촬영을 예약하고 운동을 시작했을 때 나 역시 10개 가까운 질병에 몸을 지배 당한 채 지금처럼 자동차 안에서 울고 있게 될 줄은 몰랐다. 과로하다 저 앰뷸런스에 실려간 누군가도, 내 몸이 지르는 비명소리를 듣지 못하고 바프에 온몸을 혹사시킨 나도, 당장 오늘 어떻게 될 줄 모르는 이 세상에서 갈지 자를 그리며 스스로를 몰아붙여온 것이다.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하고, 또 그때문에 생긴 질환 때문에 마사지를 받고, 물리치료를 받고, 우린 오늘도 도시의 이곳 저곳을 왔다 갔다 질주한다. 그 과정에서 내 몸을 인생의 저 구석으로 멀리 밀쳐 두지 않고, 자주 닦고 조이고 기름치면서 내 몸이 주는 신호에 귀를 기울이는 것, 그것이 내 몸에 대한 예의라는 걸 아프고 나서야 깨닫는다. 내 인생을 한방에 바꾸는 사진이라는 건 애초에 없다. 그렇게 만들어낸 찰나의 라인이 주는 행복은 그리 길지 않았을 것이다. 바디프로필, 일명 '바프'를 찍기 위한 4개월간의 모험은 스펙타클하고도 쓰디 쓴 교훈을 남겼다. 심호흡을 해본다. 그리고 오늘도 몸에 남은 상흔을 서서히 치유시키며 결심해본다. 천천히 오늘도 한 걸음씩, 하루에 한 가지씩 내게 작은 행복 선물하기, 그리고 내 몸이 내는 소리에 귀기울이기. 김종국의 말처럼 인생은 사진 한 컷이 아니라 끊이지 않는 동영상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