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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정의 백설기 Oct 24. 2021

시가 나오는 짠한 바다

시인의 자궁, 변산반도 작당마을

 

'비로소 여행이란, 인생의 쓴맛 본 자들이 떠나는 것이니까/ 세상이 우리를 내버렸다는 생각이 들 때/ 우리 스스로 세상을 한번쯤 내동댕이쳐 보는 거야' 안도현의 모항 가는 길 중의 한 구절이다. 



‘부안읍에서 버스로 삼십 분쯤 달리면
객짓밥 먹다가 석 삼 년 만에 제 집에 드는 한량처럼 거드럭거리는 바다가 보일 거야.
먼 데서 오신 것 같은데 통성명이나 하자고, 조용하고 깨끗한 방도 있다고.
바다는 너의 옷자락을 잡고 놓아주지 않을지도 모르지.’
(안도현 <모항 가는 길> 中)
 


인파가 북적이는 적벽강을 지나 구불구불한 30번 해안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모항, 궁항, 상록, 작당 같은 갯내음을 가득 풍기는 어촌 이름들이 곳곳에서 고개를 내민다. 변산반도의 주둥이에 해당하는 작당마을은 당돌한 그 이름에 끌려 들어가 만난 곳이다. 떼를 짓거나 무리를 이루는 것을 이르는 '작당(作黨)'. 이웃 왕포마을과 더불어 한때는 조기잡이 배로 북적거렸으며, 풍어가 계속될 때는 색시들이 몰려들어 들썩들썩했다는 항구는 이제 흔적조차 없다. 지금은 '작당'이라는 앙큼한 그 이름과 반전을 이루는 조용하고 한적한 어촌마을로, 쉼이 필요한 나같은 '도시 해독자'들을 넉넉한 가슴으로 반기는 곳이다. 

작당마을은 방파제 양 옆으로 줄을 선 배들, 마을회관 옆의 정자나무 한 그루, 나지막한 집들과 곧게 뻗은 논이 전부다. 세월과 함께 낡아온 염전 역시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해가 넘어갈 시간이 되자 낙조가 시작된다. 작당마을의 낙조 역시 변산 8경에 든다는 다른 지역의 낙조와 비교하자면 담백한 수준이다. 뻘배를 밀고 들어오는 해녀의 물길 위로 작은 불꽃이 인다. <변산>을 만든 이준익 감독을 꼬인 불꽃이 저런 것일까. 작당마을을 계절로 분류한다면, 아직 실패가 무언지 몰라 발랄한 봄이나 열기에 기운을 놓아버리는 여름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움직임이 없는 겨울이나 리즈 시절을 넘겨 지나가는 늦가을 정도에 가까우려나.

한때는 파시를 이루었을 항구. 변산반도의 매력은 수만 권의 책을 쌓아놓은 듯한 채석강도, 적벽강도 아니었다. 바로 높은 파도와 싸워 여기저기 생채기가 난 낡은 배들이 쉬는 항구들이다. 인생의 빛날 때가 지나가버렸음을 아는 그 평정심, 외지인의 젖은 어깨라 해도 감싸 안을 수 있는 넉넉함 말이다. 곰소의 무채색 바다는 행색은 허름하지만 녹록하지 않은 삶의 무게를 감당하느라 속이 곰삭은 중년 사내의 바다를 연상시킨다. 오랜 세월 소금을 말려 자식들을 공부시킨 어부 얼굴에 새겨진 주름살의 깊이 같은. 송수권 시인의 말처럼 소금기에 절지 않고 뻘물이 튀지 않은 삶은 또 얼마나 싱거운 삶이겠는가(경향신문 2004.2.24).

아침엔 알람을 몇 번이나 끄며 인공눈물로 눈꺼풀을 일으키는 대신, 마을 앞 파도 소리에 눈을 떴다. TV를 보며 우격다짐으로 집어넣는 출근길 토스트가 아니라 재료의 물성을 하나 하나 음미하며 밥을 먹고 게스트하우스를 나선다. 쉬는 날도 잘 쉬지 못하고 뭐라도 해야 할 것 같고, 휴일엔 시끌벅적하게 나가 놀아야 할 것 같고, 목소리가 변할 때까지도 본인이 피곤한 걸 잘 모르는 편인데, 이상하게도 작당마을에선 자꾸만 발걸음이 멈춰졌다.
나를 포함한 많은 여행자들은 실망한 여행을 대단한 로망을 이룬 것마냥 포장한다. 사람들 역시 SNS 속 남들에 뒤질세라 최고의 시간을 살고 있다고 포장한다. 답답하고 정체된 평일 도시의 삶을 숨가쁘게 주워 삼키는 주말의 일탈로 응급 처치하는 삶. 때때로 설레고 행복하지만 또 때때로 무력해지고 우울한 시간들. 상처의 원인을 찾아보지도 않은 채 힐링이라는 이름으로 적당히 임시방편의 밴드를 붙인 채 급체가 이어지는 삶.

작당마을을 내려오다 생각했다. 어쩌면 이게 쭉 내 삶이 될지도 모르겠다고. 멋있게 봉투를 던지고, 세계 여행을 할 용기나 깜냥이나 젊음은 원래 없었거나 지금은 영영 사라졌다. 여행에서 꼭 자신을 안 찾아도 된다. 어차피 답은 안 찾아진다. 여행이 우울증을 해결할 처방전이라거나 유일한 행복이라고 생각할 필요도 없다. 그냥 그런 비일상 속에 나를 세워둠으로써 공기를 바꾸는 것 자체에 효용성이 있으니까. 절뚝일지언정 계속 나아간다. 작당마을은 내게 이런 작당 모의를 살금살금 해온 마을이었다. 절경이라기엔 2% 모자란 작당마을의 덜 붉은 낙조는 내게 그걸 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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