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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yan Son Jun 02. 2024

침묵의 리더십: 말 너머의 이해와 성장

전제: 소통과 이해에 '말'이 꼭 필요할까?


말로 다 설명해야 한다면, 애초에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일 수 있다.

상황: '말'이 '말'을 키우고 이를 '말'로 막는 기묘함.


팀원이 사무실 밖에서 목소리를 높여 저에게 항의하고 있습니다. 자신은 제 기준에 맞추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면접 당시 "다 배우고 싶다"고 했던 대화를 기억하는 건 한 사람뿐인 듯합니다. 그는 아이디어가 거부당하는 상황을 견디기 힘들다며 분노를 표출합니다. 급기야 욕까지 하며 "팀장님과 달리 자신은 갈 데가 없으니" 조금 전 그만두겠다 한 말을 번복하겠다 합니다.


물론 화가 납니다. 하지만 이 이해할 수 없는 반응들을 지켜보며 자꾸 침묵하게 됩니다. 머릿속에 선명해지는 한 문장 때문입니다.


'사회에서 만난 관계에서 내가 전할 수 있는 의견은 과연 어디까지인가?'  


현상: 나야말로 선을 넘고 있는 건 아닌지 반성이 필요하다.


아마 저는 좋은 팀장은 아니었을 겁니다. 새로운 업계에 관리자로 들어갈 수 있었던 건 입사 전, 오롯이 혼자 해외 기업 대상의 프로젝트들을 기획 및 영업을 해 성공적으로 완수했기 때문입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고 대부분의 작업을 일정 기준 이상으로 해냈기에 팀원에게도 비슷한 기준을 적용했을 수 있습니다. 이런 일관된 기준이 알게 모르게 많은 압박감을 주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당시의 대화에서 확인한 진짜 고민의 시작은 상대의 '태도'였습니다.


가족에게서도 이런 압박감을 받은 적이 없다는 그의 감정적인 반응에 '그럼 여기는 회사인데, 이 사람은 어떤 기대를 품고 있는가'라는 질문이 따라붙기 시작했습니다.


- '왜 저렇게 화를 낼까?'

- '왜 오늘의 능력 부족을 이해해 달라 하소연할까?'

- '왜 먼저 그만두겠다 할까?'

- '왜 다시 말을 번복할까?'

- '왜 자신의 결정을 번복하는 것에 대해 내게 책임이 있다는 표현을 할까?'


사회와 가정에서 배우는 것과 기대하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습니다. 제가 상대를 위한다고 생각했던 부분들이 실은 과한 제 일방적 욕심일 수 있고, 주어진 역할을 넘어서고 있었던 게 아닐까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마치 정원사가 모든 식물을 똑같이 가꾸려 하는 것과 같습니다. 어떤 식물은 더 많은 물이, 어떤 식물은 더 많은 태양이 필요합니다. 팀원 각자의 '토양'을 이해하고 그에 맞는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리더의 역할일 것입니다. 그렇게 제 자신의 역할과 책임의 한계를 조금 더 명확하게 구분하게 되었습니다.


그제야 눈앞의 상대에게, 당시 상황에서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결정이 되더군요.

 

생각: 각자의 기준을 함께 생각해 보기.


당시 그 팀원은 이후로도 계속 회사에 남았습니다. 이후 저는 소통할 때 딱 한 번만 명확하게 의견을 전달하고, '전 분명히 의견 드렸습니다'라는 확인으로 마무리하는 방식을 채택했습니다. 소통에서 중요한 것은, 상대방이 스스로 깨닫고 경험할 수 있는 여지를 주는 것입니다.


그 순간의 평가는 어차피 본질을 다루지 못합니다. 그저 상황에 맞춰진 순간의 반응이자 상대에 대한 수많은 의견 중의 하나일 뿐입니다. 그러니 처음부터 다 설명하려 하지 않습니다. 지켜보고 최대한 적게, 맥락에 맞는 말만 하려 노력합니다. 


당시 경험을 통해, 저는 관리자로서 몇 가지 중요한 교훈을 얻었습니다:


기준과 기대의 명확화
명확한 기준과 기대를 전달하되, 각자의 '토양'에 맞게 조정하고, 스스로 경험하고 깨닫게 시간을 준다.


감정적 반응의 이해와 수용
팀원들의 감정을 이해하고 수용하며, 그 배경을 탐구한다.


역할의 한계 설정
관리자로서의 역할과 책임을 명확히 하고, 그 한계를 넘어서는 기대나 개입은 피한다. 필요한 지원을 하되, 스스로 해결하고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회사 생활 힘들어한다고 상사에게 전화하는 부모님들의 사례를 뉴스에서 볼 때가 있습니다. 연봉 협상 자리에 부모님이 동석하는 것과 같은 기괴한 상황이 누군가에게는 당연할 수 있음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말'이 때로는 오히려 이해의 장벽이 될 수 있습니다. 때로 이해는 말을 넘어, 경청과 인내, 그리고 상호 존중의 공간에서 자라납니다. 리더의 침묵이 때로는 가장 웅변적일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살면서 마주하는 상황에서 말을 통한 설명이 앞설 필요가 생각보다 적을 수 있습니다. 이해시키고 싶은 우리 안의 욕심을 먼저 보세요. 그러면 상대가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인지도 확인이 가능해집니다. 


그러면 어디까지 말하고 어떤 태도로 그 상황에 대응할 수 있을지 결정도 쉬워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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