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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yan Son Jun 09. 2024

비전이냐, 비관이냐

어른용 성장

전제: 일상 속 수많은 결정의 전제, 생각


생각은 선택이다.

상황: 매장 운영 방향성을 향한 고민.


영업을 시작한 어머니의 곱창 가게에 나가 저녁마다 일을 돕고 있습니다. 빠른 정상화를 위해 주로 홀 업무를 담당하다 보니 방문해 주시는 손님들과 짧은 대화를 나누거나 주시는 의견을 들을 기회가 있습니다. 그중에는 주변 상인 분들이 해당 상권에 대한 본인들의 경험을 토대로 영업시간의 변경, 메뉴 가격의 변화, 메인 메뉴 주문 후 추가 메뉴 주문 가능 등의 판매 정책 상의 변화, 냉장고 변경 등에 관해 다양한 의견을 주시곤 합니다. 


그리고 이 같은 주변 분들의 의견은 크게 두 가지 방향성에의 현실적 고민들을 상기시키고는 합니다. 


변경하세요
- 가게를 찾아주시는 모든 손님들을 수용할 수 있는 정오부터 늦은 새벽까지의 운영

- 메인 메뉴가 아닌 추가 메뉴의 단독 판매


유지하세요

- 처음 정한 대로의 마감 시간 준수

- 메인 메뉴 중심의 판매 중심 지침 유지 등


양 방향성 모두 나름의 근거는 충분히 확인됩니다. 


요즘 같은 불경기에 생존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거나 손해를 감수해서 어떻게든 매출을 조금이라도 더 만들어내야 한다는 근거. 아니면 수십 개 매장을 운영 중인 프랜차이즈 본사가 정해준 영업시간 내 최적의 매출 발생 구조에 집중하거나 유지하는 게 낫다는 근거.   


현상: 비관과 비전을 가르는 딜레마.


저는 이 두 가지 근거들을 단순하게 '비관'과 '비전'으로 구분합니다. 


비관: 

상권 특성상 밤 10시 이후에는 지나다니는 사람조차 거의 없다. 요즘 계속 불경기라 한우곱창의 가격은 손님들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 그러니 밤에 국물 안주 하나 시키고 앉아있으려 하는 술꾼들을 대상으로 추가 메뉴라도 파는 게 나은 선택이다. 


비전: 

본사가 정해놓은 메뉴 별 가격과 메인 메뉴, 추가 메뉴의 구분은 시장성과 수익을 고려해 정리된 전략적 결정이다. 한우곱창이나 타 브랜드들과 비교했을 때 저렴한 가격, 메인 메뉴와 추가 메뉴 간 차별화는 전체 주문의 흐름과 수익 면에서 최적화된 결정이다. 


무엇보다 방문해 주시는 손님들을 보다 보니 크게 세 가지 특징으로 구분 지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A. 6시에서 9시 사이 방문, 가족 단위

메인 메뉴 중심의 주문과 추가 메뉴 주문까지, 30분~45분 머물다 일어서는 손님들


B. 9시에서 11시 사이 방문, 2~3인 단위

메인 메뉴만 주문 또는 재방문 후 추가 메뉴만 주문, 45분에서 1시간 이상 머물다 일어서는 손님들


C. 11시 이후, 2차 장소를 찾는 4인 이상 방문

메인 메뉴 2인분 주문 또는 추가 메뉴만 주문, 1시간 이상 머물다 일어서는 손님들


작은 매장이기에 테이블 회전율을 고려하면 A 유형의 손님들이 영업시간 내 가장 많이 자리를 채워주시는 게 가게의 빠른 정상화 및 안정화에 가장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예상됩니다. B 유형의 손님들도 매출 상승에 많은 도움이 될 듯합니다. 하지만 C 유형의 손님들은 어머니의 체력을 중요한 기준으로 고려해 볼 때 과연 지속적인 운영을 위해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 선택인가에서 고민이 되기도 합니다.


여기서 딜레마가 확인됩니다.


어머니의 매장이 생기기 이전의 상황으로 보면 추가 메뉴의 단독 판매도 해야 할 듯하고, 새벽까지 운영 시간을 늘려야 할 듯합니다. 불경기라 주변에서 많이 이야기하고, 현 매장이 위치한 상권의 특성상 10시 이후에 매장을 찾을 손님들이 없을 거라는 주변 분들의 의견이 타당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머니의 매장 오픈 전 지나다니는 분들이 이 근처에 먹을 데가 없었기에 잘 될 거다, 인테리어가 독특하고 세련되었다, 한우곱창 가격이 저렴한 게 맞다 등의 피드백도 주신 바 있습니다.


그러니 A 유형의 손님들이 10시 이후에도 찾아오는 매장으로 만들자를 목표로 삼는 것도 일견 타당해 보입니다. 그러려면 추가 메뉴만 주문하려 하는 술 취한 손님들에게 본사의 지침마저 어기며 무리해서 맞추기보다는 메인 메뉴 판매 중심의 기존 방침을 유지하며 정해진 운영 시간의 최적화에 집중하는 선택 또한 타당한 선택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어머니는 '비관'에 집중해 B, C 유형의 손님들을 대상으로 늦은 시간에는 추가 메뉴를 파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내셨고, 저는 '비전'에 집중해 A 유형의 손님들이 늦은 시간에도 찾는 매장이 되도록 추가 메뉴만을 파는 선택은 하지 않았으면 한다는 의견을 내었습니다.

 

생각: 생각이 현실을 만든다.


수백억 원의 투자를 요하는 상업 영화 연출의 기회는 입봉을 꿈꾸는 감독들에게 매우 얻기 어려운 기회입니다. 수년간 집필한 시나리오가 채택되어 어렵게 연출할 기회를 만들어도 막상 개봉한 영화가 예상만큼 흥행에 성공하지 못하면 이후에는 더욱 연출을 맡을 확률이 급격히 줄어듭니다.


그러다가 몇 년을 다시 시나리오 집필로 보내다 연출할 기회를 못 만들다가 결국 최후로 고려하는 선택지 중의 하나가 에로 영화 업계입니다. 그리고 일단 에로 영화 연출로 이름을 크레디트에 올리는 순간, 마치 주홍 글씨처럼 다시는 상업 영화 연출의 기회가 없어지게 된다고 합니다. 그만큼 하나의 업계 내 '격'의 차이는 실제로 존재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의 작은 매장이라 하더라도 매장을 찾아주시는 손님들 중에는 다양한 분들이 있습니다.


저는 추가 메뉴만 주문하고 싶어 하는 B, C 유형의 손님들이 늘어나 가게를 채우는 상황이 당연해지면 어쩌나라는 걱정이 앞섭니다. 그러다 정작 A 유형의 손님들이 찾지 않는 가게로 인식될까 두렵습니다. 그리고 이 두려움의 배경이 '비관'에 집중한 미래에의 상상임을 상기하곤 합니다. 


하지만 '비전'에 집중해 A 유형의 손님들이 늦은 시간에도 찾아오고 싶은 가게로 유지하고, 아직 어머니의 가게를 잘 모르는 A 유형 손님들에게 가게의 존재감을 보다 넓게 알리는 선택과 집중 또한 가능성 높은 선택지라 판단합니다.


무엇이 더 가능성이 높은가? 이 질문은 사실 크게 의미가 없습니다. '비전'이나 '비관'이나 모두 당장의 현실에서 확인 불가능한 미래의 어떤 순간이나 상황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단순하게 생각을 딱 두 종류라 정의해 보는 겁니다.

'비관'이냐 '비전'이냐


비관에 집중한 생각을 지속하면 무기력증이 찾아오거나 몸과 머리가 굳어 당장 익숙하게 해 오던, 더 이상 큰 생산성을 기대할 수 없는 단기적이고 단일화된 성과에 집중하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반면 비전에 집중한 생각을 지속하면 적은 가능성이라도 늘리기 위한 필요한 행동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물론 결과로써의 미래가 어떨지 현재에 존재하는 우리가 확인할 방법은 없겠죠. 그러나 적어도 하루를 어떻게 경험했는가에 있어서는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생각합니다.




생각은 선택입니다. 선택한 생각이 오늘 자신의 행동의 양상과 질을 결정합니다. 그리고 이 행동이 매일 지속되면 생각으로 머물던 미래가 현실로 채워집니다.


오늘 어떤 생각에 집중하고 계신가요? 당장 보이는 현실에 기반한 걱정과 불안에 갇혀 있는 건 아니신가요? 아니면 허황되고 불가능해 보이더라도 생각 속에서나마 미소 짓는 미래를 상상하고 계신가요?


주말 오후, 어머니와 오랜 시간 절에서 친분을 쌓아오신 친구분들이 가게를 방문해 주셨습니다. 어머니는 그분들과의 대화 중 마시지도 않으시는 맥주잔을 손에 들고 외치셨습니다.


"아자아자, 2호점, 3호점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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