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4월 3일부터 4월 9일까지의 일주일.
친구와 함께 한 4/3의 기록은 여행기(먹방 후기)를 참고해주세요.
-週刊 <워킹홀리데이@타이베이> 번외편 타이베이 여행기 (1) 4/1 https://brunch.co.kr/@ryuj/108
-週刊 <워킹홀리데이@타이베이> 번외편 타이베이 여행기 (2) 4/2 https://brunch.co.kr/@ryuj/109
-週刊 <워킹홀리데이@타이베이> 번외편 타이베이 여행기 (3) 4/3 https://brunch.co.kr/@ryuj/110
나의 대만 소울푸드 훈뚠탕. 실패하지 않는 따뜻한 선택.
근무지 근처의 1인 훠궈 집에 가보았다. 매번 가야지 가야지 하다가도 시간이 맞지 않거나 시간적으로 여유가 없어 매번 가지 못했던 곳이다. 평소에 생선을 먹기 힘드니 해산물 메뉴가 있을 때면 선택하게 된다.
사실 1인 훠궈집은 어디나 다 같다는 생각을 하긴 했는데 여러 곳 다녀보니 역시 가게마다 다르다. 이곳은 먹으면서도 높은 평가가 이해가 갔다.
아직까진 질리지 않는 쯔주찬. 맛있어. 밥 먹는 기분이 든다. 다른 곳들도 도전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기는 한다.
드디어 가봤다, 101 타워 근처의 햄버거 집. 도대체 몇 번을 도전했는지 모르겠다. 정기휴일이거나 연휴 거나 아직 문을 안 열었거나! 구글 평점이 무척 높아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곳이었다.
물론 호주식 버거를 제일 사랑하고 무척 그립긴 하지만 '대만식 버거' 역시 그 개성을 인정하게 되었다. 대만식 햄버거는 처음엔 묘한 가벼움이 아쉬움이 있었지만 아침 식사로 먹기엔 적당한 것 같다. 오히려 호주 식이나 미국식 버거를 아침 식사로 먹기엔 부담이 되니까. 물론 아침 식사 가게들은 이런 대만식 버거를 판매하고, 볼륨 있는 버거를 판매하는 곳들도 많다. 그런 곳들은 주로 점심~저녁으로 운영.
이곳은 빵이 맛있네. 맛있는 번을 만나게 되면 맛있는 패티, 맛있는 소스를 만난 것만큼 기쁘다. 구운 정도도 딱 좋았고 일단 아침 식사와 점심 식사만 운영하는 가게이다 보니 맛도 자극적이지 않고 깔끔하고 부드러웠다. 괜히 구글 평점이 높은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근무지 중 한 곳이 이 근처에 있음에도 오후 5시부터 영업을 시작해 시간이 영 맞지 않아 가보기 힘들었던 이 곳을 드디어 다녀왔다. 일본인 정보 사이트에서 본 이후로 계속 가고 싶었는데 중심지에서 떨어진 곳이기도 하고 시간도 맞지 않았다. 일본인 정보 사이트의 소개글에는 '부추가 많이 들어있는 것이 특징'이라고 쓰여있었다. 위치는 101 타워 근처의 린쟝 야시장臨江夜市과 통화 야시장通化夜市으로 이 두 시장은 서로 붙어 있어 딱히 어디에 있다고 하기에 어려운 것 같다. 12호 포스팅에서 소개한 빙수집御品元冰火湯圓도 이 가게에서 30초 거리 정도로 가깝다.
일단 육즙에서 합격. 종종 지나친 기름 투입으로 느끼한 소롱포들을 만나는 경우가 꽤 있는데 여긴 딱 적당하다. 그리고 부추의 양이 많은 만큼 아삭아삭한 식감과 채소가 들어가 깔끔한 맛이 일품이다. 고기와 부추로 이루어진 속도 간이 딱 좋았다. 오픈 시간에 맞춰서 갔는데 손님은 일부러 찾아온 일본인 그룹 두 팀과 나, 우연히 들어왔거나 숙소 추천으로 들어온 것 같은 한국 관광객 그룹 한 팀 이렇게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저녁에 101 타워나 상산에서 야경을 본 후 한참 걷거나 버스 등을 이용해 통화 시장으로 이동해 가볍게 소롱포를 먹고 야시장에서 이것저것 먹어보고(린장도 통화도 규모가 작은 야시장이다) 후식으로 御品元의 빙수를 먹으면 딱 좋을 것 같다.
사랑 사랑 내 사랑. 대훈뚠탕과 함께 소울푸드. 담백한 맛이 마음에 든다. 101 아미치 호텔(101 Amichi Hotel 艾美琪旅店)이 같은 건물이라고 하기엔 애매하지만 같은 건물이라고 쳐도 무방할 조금 특이한 건물에 함께 있고, 여러 한인 숙박들도 같은 건물에 들어가 있는 걸로 안다. 쫑샤오푸싱 역 1번 출구 쪽에 숙소가 있는 분들에겐 추천한다. 저기 올라간 게 고수 같진 않은데(신경도 안 쓰고 먹는다) 걱정되는 분이라면 바로 고수(샹차이) 빼 달라고 하면 될 것 같다.
다시 찾은 금춘발. 일반 식사류의 메뉴는 모두 먹어볼까 하는 도전정신이 생겼다. 이번에는 생강구이. 일본에서 지낼 시절 일하던 가게에 메뉴가 있어 만들기만 했지(심지어 잘 만드는 메뉴 중 하나였다) 내가 먹어본 적은 거의 없었다. 만 서른둘에 생강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니, 나는 또 이렇게 어른이 되는구나. 한국에만 살았다면 여전히 먹지 못하는, 안 먹는 음식이 정말 많았을 거다.
이전 방문 때에도 적었지만, 이곳은 처음 먹으면 읭? 뭔 맛이여? 하는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모두 익숙한 메뉴 건만) 맛에 놀라고 처음 먹는 맛이라 다소 당황스럽지만 먹다 보면 의외로 익숙해진다. 독특한 가게다. 하지만 '대만 맛'에 거부감이 강한 분들에겐 비추천.
종종 가던 동네의 인기 조식점에서 처음으로 총좌삥을 주문해 먹어봤다. 만든 점원 분이 좀 지저분하게 담아주긴 했지만. 맛있어.
양이 많다는 소문은 들어 알고 있었지만 정말 정말 정말 정말 많았다. 건더기는 고를 수 있는데 모를 땐 일단 종합으로 시키는 나. 면의 종류도 다양해 고를 수 있는데 나는 세면으로 주문했다. 와. 소면이 두 다발은 들어있는 것 같다. 먹으면서 울고 싶어 진 것도 오랜만이었고, 도전도 아름답지만 가끔은 포기하는 것도 아름답다는 것을 느꼈다.
1)
한국어 과외를 구해볼까 하다가 때려치웠다. 한국-대만의 언어 교환, 과외 선생, 학생을 구하는 페이스북 페이지에 글을 올려 여러 사람들에게서 연락이 오기는 했지만 내가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고 접었다. 단순히 '한국인'이라고 모두가 한국어를 가르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한국에서 과외는 아니지만 비슷한 걸(?) 일여 년 동안 하긴 했지만 역시 돈 받고 가르치는 일은 돈 받는 만큼 제대로 해야 하지 않은가. 가르치는 일은 시간당 벌 수 있는 돈이 높지만 그만큼 내 개인 시간을 수업 준비 시간에 써야 한다는 점이 단순하게 '내 시간을 쓰고 싶지 않다'는 배부르고 정신 나간 내 안의 꼬장꼬장한 영감님이 과외를 반대하더라.
2)
시정부 역의 성품 서점에 들러 한국어 학습서를 구경했다. 바로 옆 책장들은 일본어였는데 그 양이 너무나도 차이가 났다. 한국어는 어학 시험 수험서 포함 7단의 책장 1개인데, 일본어는 어학 시험 수험서만 4단 책장 5개, 학습서는 7단 책장 5개, 교육서가 7단 책장 2개, 사전이 4단 책장 1개. 총 73개의 단을 사용하고 있었다. 한국어와 비교하면 일본어의 규모는 10배였다. 한국어 과외가 아니라 일본어 과외를 구해야 하는 건가 싶었다. 전 세계 공통의 공인 어학 시험인 일본어 능력 시험(JLPT) 수험서만 20개의 선반에 꽂혀있었는데 나는 이제 더 이상 저 책들을 살 일이 없다고 생각하니 괜히 돈 번 듯한 기분이 들어 뿌듯해졌다.
한류의 인기로 대만에서도 한국어 수요가 늘어났다고는 해도 일본어의 인기와 비교하는 것은 아직은 무리인가 싶어 진다. 대만인들의 일본에 대한 호감도가 높고 대만에 거주하는 일본인들도 워낙 많고 그 역사도 또한 길다 보니 단순한 문화적 요소의 인기로 따라잡을 수 있는 수준은 아닌 것 같다. 그래도 책장이 하나 더 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3)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것인지, 사람이 필연적으로 자리에 끌려가 그것이 '제 자리'가 되는 것인지.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면 나는 아직 무형이고 어쩌면 무형에 자유자재 변형 가능한 게 내 자리일 수도 있겠고. 하지만 이 형태 없는 무형의 자리가 '이런 나'를 만든 것인지, 아니면 내가 형태가 없는 사람이라 이런 자리에 이끌려 오게 된 것인지. 나는 어떤 자리에 있기에, 나의 자리는 무엇이길래 나는 이런 사람이 된 걸까. 정확히 말하면 왜 내 자리는 어디에도 없는 걸까. 이건 하고 싶은 것이 없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하려 하지 않는 내가 문제인 거겠지. 쓰고 보니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와 비스무리한 의미 없는 헛소리네.
좀 더 헛소리를 쓰자면 동시에 어쩌면 나는ㅡ 나야말로 세상과 동 떨어진 '갈라파고스 인간'이 되어가는 건 아닐까 하고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아직까진 내가 바라는 이상을 잃지 않고 중심을 잡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세상은 나의 이상으로부터 너무 다른 방향으로 가버리는 것만 같다. 나는 이대로 괜찮은 걸까.
4)
누드 프레지던트라는 걸 해봤다. https://nudepresident.com
선택지 중 지지하고 싶은 공약이 아예 없는 것들이 많아 중간부터 '해당 없음' 버튼이 절실해지긴 했지만 결과는 납득이 간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차이가 없을 줄은 몰랐다. 특히 최대 관심사 '노동, 교육, 복지'는 내가 바라는 것과 비슷한 공약을 제시한 후보가 한 명도 없다는 점이 조금 슬펐다.
5)
할 일이 많았음에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보내는 시간들이었다.(그렇게 브런치 업로드는 밀리고 밀리고 밀리고...) 유튜브로 10~20대 때 좋아했던 일본 음악들을 찾아 들으며(몇 년만에 듣는 건지..) 따라 부르기도 하고. 3월 내내 나를 괴롭혔던 무기력은 4월로 달력이 바뀌어도 여전히 나를 떠나지 않는다. 이건 게으름이 아니라 무기력이다. 난 정말 게으른 인간이라서 이것이 일반적인 게으름과는 다르다는 것을 안다. 대만으로 여행 온 친구와 지내다 보면 이 무기력이 사라질 것이라며 터닝포인트로 삼으려 했지만 실패했다. 이 무기력이 어디서 오는 지도 알고 있지만 그저 속앓이만 할 뿐이다.
쓰리잡을 해야 하나 싶더라. 포잡도 해봤는데 쓰리가 대수인가. 일본 유학 생활 끝낼 때는 더 이상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았는데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야 하나보다. 내가 원하는 대로 살기엔 아시아 지역은 다소 맞지 않는다. 같은 일을 해도 아시아에선 나의 삶의 질이 낮아지는 것 같다. 물론 돈만 있으면 살기 좋다고는 하지만 그건 어디나 마찬가지일 테고, 무엇보다도 당장 내가 돈이 없다. 돈이 없어도 살기 나쁘지 않은 곳에서 살고 싶다. 살기 좋은 건 바라지도 않으니.
돈은 늘 일함에 있어 최고의 동기부여 수단임과 동시에 내 우울의 근원이자 이유다. 정확히 말하면 '돈'이 아니라 '급여'와 '근무 시간'. 그것들이 내가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증거이기 때문이다. 잘 한다 잘 한다 말이야 누가 못 하나.
6)
나이 먹는 게 점점 두려워진다. 지친다. 남들이 멀리서 보기엔 하고 싶은 거 하며 자유롭게 즐겁게 사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나는 하고 싶은 것이 없고 자유는 금전적 여유를 맞바꾸었고, 심지어 즐겁지도 않다.
종종 사람들은 내게 용기 있다고 한다. 해외에서 떠돌며 살기로 결정하고 실행한 용기가 대단하다고. 하지만 정작 나는 용기가 아닌 한국에 살기 싫어 밖에서 버티는 것뿐이라, 용기보단 지구력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내게 필요한 것은 언제나 용기가 아닌 지구력. 그리고 고등학교 등의 성장 환경상 해외에서 사는 일이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질 않았던 것 같다. 지금도 나가고 싶으면 나가는 건데 그것이 용기가 필요한 일인가 싶다. 무엇이든 선택을 앞두고 포기해야 하는 것이 많아지면 그만큼 결정에 필요로 하는 용기의 크기는 커진다.
늘 말하지만 내 경우엔 애초에 가진 게 없어 포기할 것이 없다 보니 그만큼 용기도 필요하지 않았던 것 같다. 난 오히려 '참으며' 가족을 위해, 타인을 위해, 혹은 어떠한 요소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들이 더 대단해 보인다. 나는 나 자신이 그 무엇보다 제일인 사람이라 그렇게 하지 못한다. 그럴 배짱도 용기도 없다.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생각이 많아지는 것 같다. 2주 연속 비슷한 이야기를 쓰는 것 보면.
7)
한국에선 인터넷만 안 한다면 스트레스를 반으로 줄여 살 수 있을 것 같다. 한국인의 생활 스트레스의 반은 인터넷 스트레스일 것 같다. 하지만 인터넷을 안 한다면 삶의 재미도 사라지겠지. 인터넷을 안 하는 대신 그 스테르스를 다른 곳에서 받을 것이다. 아마도 스트레스 질량 보존의 법칙?
독일에서의 컴퓨터 없는 생활은 집에 들어가자마자 일단 컴퓨터부터 켜 온 십 수년 동안의 컴퓨터 중독을 고쳐주었다. 심지어 이젠 할 일이 있어도 컴퓨터를 켜지 않는 경지에 이르렀다. 컴퓨터로 할 수 있는 일의 대부분을 스마트폰으로 대체시키고 컴퓨터로 해야 효율적인 일들만 컴퓨터로 하고 있다. 덕분에 엄지손가락은 스마트폰 증후군이 되었나 보다, 늘 엄지 윗부분이 늘어나 있는 기분이다.
8)
김영애 선생님께서 영면하셨다. 아프시다는 이야기는 접해서 알고 있었고 얼마 전에도 근황이 궁금해 검색해 봤는데 돌아가셨다는 소식에 놀랐다. 내 세대라면 무섭지만 카리스마 있는 능력 있는 중년 여성을 연기한 배우로 기억할 텐데. 황진이, 로열패밀리, 킬미힐미, 해품달 등등이 그런 캐릭터였다. 거기다 한때 성공했던 기업인(이영돈 피디....). 나는 시트콤 서승현 씨, 이보희 씨와 함께 한 '달려라 울 엄마'가 제일 기억에 남는다. 정말 열심히 봤던 프로그램이었다.
http://www.kbs.co.kr/2tv/enter/mymother/
9)
일본 음식점 한 곳에 이력서를 냈고 면접을 보았고 합격했다. 결국 '제 자리'로 돌아가는구나. 독일에서 함께 일했던 T는 내게 '제일 잘 어울린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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