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이음 Aug 28. 2023

안정적인 삶 대신 내가 선택한 삶

경찰공무원 퇴사 후 깨달은 것 



평범 언저리의 삶



내가 안정적인 삶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단 하나였다. 너무나도 평범해서.


출신 대학교는? 지방대.

키는? 158cm.

외모는? 평범.

뚜렷하게 잘하는 것이 있는지? 없다.

돈 걱정 없는 집안인지? 전혀. 


특별히 좋아하는 것이 있는지? 없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안정적인 삶을 갈망했다. 잘하는 것도, 좋아하는 것도, 잘난 것도 없는 평범한 애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 그렇게 안정적인 삶의 궤도에 진입했고, 그곳에서 벗어날 일은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안정적인 삶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책은 계속 말했다. 더 넓은 세상이 있다고. 지금 네가 서 있는 길은 안정적인 궤도가 아니라고. 안정적으로 굴러가는 것처럼 보이는 톱니바퀴에 불과하다고. 그렇게 자꾸 새로운 말, 새로운 세계, 새로운 가치관을 심어주는 것들은 넘쳐났고,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오히려 내 삶은 불안정해졌다. 여러 권의 책을 읽으니 쓸 수도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덜컥 첫 책을 내게 되었다. 그때부터였을까.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계속 써야 할 것만 같았다. 난생처음 발견한 오로지 즐길 수 있는 것. 읽으면 읽을수록 내 무지함에 무너졌고, 쓰면 쓸수록 내 바닥은 여지없이 드러났다. 나는 이 반복이 좋았다. 새로운 걸 탐험하고, 무너지고, 다시 재건해 내는. 난생처음으로 '타이틀'이 아닌 '무얼' 하면서 살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돋아나버렸다. 정말 난데없이.


'아, 평생 읽고 쓰면서 살고 싶다.'


그럼 여기서 짚어봐야 할 것은 나의 재능적인 면모다. 그래서 글을 잘 쓰는가? 전혀. 재능과는 거리가 꽤나 멀다. 첫 책 이후로 글을 써달라는 제안은 일절 없다. 심지어 심장을 콕콕 찌르는 후기를 마주칠 때도 있다. 그러니까 첫 책은 오로지 희소가치가 있었기 때문에 출간할 수 있었던 거다. 그때까지만 해도 90년대생 여자 경찰이 쓴 이야기는 없었으니까. 그렇게 내가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음을 감출 수 있었던 직업덕택에 책까지 쓸 수 있었다. 수년간 평균 이하의 삶에서 허우적대다가 겨우 평균의 땅을 밟았건만, 그 정상에 깃발을 꽂기도 전에 다시 바다에서 허우적거리기를 기꺼이 선택했다. 누가 봐도 공무원 말고의 재능이 없는 내가 안정적인, 평균적인 삶을 살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진짜 중요한 것들



그렇게 안정적 궤도에서 이탈한 지 3개월째. 내 삶은 180도 바뀌었다. 타인의 시선으로 보면, 영락없는 백수수 같기도, 허무맹랑한 꿈을 좇는 이상주의자 같기도 하다. 매일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는다. 그렇게 카페인과 활자로 뇌가 깨어나면 글을 쓰기 위한 가닥을 잡는다. 모아둔 메모를 보다 멍 때리고, 다시 메모하다 멍 때린다. 무의식과 의식을 오가며 쌓인 조각들을 바탕으로 글을 쓴다. 그렇게 써낸 글로 영상도 만들고, 브런치에 연재도 한다.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읽고 쓰는 데 투자하는데 이것이 돈이 되느냐고? 전혀!


하지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건 이렇게 눈에 보이는 성과가 없다한들 경찰일 때보다 훨씬 행복하다는 거다. 경찰일 때는 무엇이든 눈에 보였다. 메신저로 떨어지는 업무를 처리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성과와 달리 내 만족감과는 철저하게 반비례했다. 또, 경찰일 때는 약속이 있을 때 먹을법한 맛있는 음식들을 매일같이 먹었다. 하지만 지금은, 배가 고프면 대충 때운다. 경찰일 때는 출근하면 사람과 이야기할 기회가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평소에 누군가의 얼굴을 보고 말하는 건 카페 직원뿐이다.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묵언수행. 누가 봐도 경찰일 때 삶이 더 사람다운 삶인 것처럼 보인다.


퇴사 이후 깨달은 것은 내가 채워지면 그 밖의 것들의 중요성이 떨어진다는 거다. 나한테 진짜 중요한 것 딱 한 가지만 찾으면 된다. 무얼 먹을지, 무얼 입을지, 누구를 만날지는 그다음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내 삶에서 진짜 중요한 질문을 해야 했다.


다른 걸 다 제쳐두고, 너에게 진짜 중요한 것이 뭐야?

아니, 어떤 삶을 살고 싶어?




마음을 쏟아붓는 것



진짜 안정적인 삶은 모두가 봤을 때 평균적인 삶이 절대 아니었다. 남들이 봤을 때 안정적인 삶은 내게 불안정이었고, 남들이 봤을 때 불안정한 삶이 내게 안정적인 삶이었던 것이다. 내 마음을 온전히 쏟아부어 하루를 끝냈을 때 비로소 내 삶이 느껴졌다. 마음을 온전히 쏟지 않은 일로도 평균적인 삶의 궤도에 진입할 수 있었다면, 마음을 온전히 쏟은 일은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제 남은 건 증명해 내는 것뿐이다. 내가 쌓아낸 것들이 남들에게도 가닿을 수 있는 가치 있는 것인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