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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대유감 Dec 26. 2019

5. 발차기 시작하다

물 밖에 걸터 앉아서 차는 발차기는 꽤나 재미있습니다. 첨벙거리는 물을 보며 내가 이제 하게 될 자유형을 상상하며, 중급반 상급반에 곧 가게 될 나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아주 쉬워 보이는 자유형 발차기에 대해 금방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과 여유도 생깁니다. 넘실거리는 물은 내가 물을 얼마나 잘 차고 있는지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발차기를 배우면 사람들은 보통 당황합니다. 발차기를 아무리 차도 앞으로 나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세게 차면 찰수록 더욱 앞으로 나가지 않습니다. 어느새 숨이 차오르고 나의 시선은 내가 온 거리를 측정합니다.

신기하지 않나요? 세게 차면 찰수록 앞으로 더 나가지 않는다니 말입니다. 발차기를 처음 배울 때는 물 밖에 앉아서 발차기를 찹니다. 무릎을 펴고, 일정한 속도로 발을 차야 한다는 강사의 말을 듣고 열심히 발을 찹니다. 


잠깐의 연습 후 이제 킥판을 잡고 본격적으로 발차기에 나서기로 합니다. 물안경을 고쳐 쓰고 엎드린 자세에서 힘 있게 발차기를 차기 시작합니다. 제 발차기에 반응하는 첨벙거리는 물이 느껴집니다. 이리저리 흔들리는 몸과 함께 힘찬 발차기는 물살을 일으킵니다. 배운 대로 무릎을 편 상태로 발차기를 이어갑니다. 하지만 계속된 신나는 발차기에 의문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이상하게 앞으로 몸이 나가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킥판을 잘못 잡은 줄 알고 잠깐 제 자리에 서서 킥판을 고쳐잡습니다. 다시 발차기를 시작합니다. 아까보다 더욱 강하게 발차기를 시작합니다. 무릎을 펴고 차라는 강사의 말은 어느새 잊힙니다. 무릎을 굽혀야 더 세게 차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더욱 세진 발차기에 반응하기라도 하는 듯 발등에 느껴지는 물의 세기도 세집니다.


그래도 몸은 앞으로 나가지 않습니다. 왜 나가지 않는지 알게 된 것은 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였습니다. 사실 그 이유를 알았어도 당시에는 할 수 없었을 겁니다. 정신이 없다는 표현이 제일 맞을 것 같네요. 그때는 그냥 정신이 없었으니까요. 수영장이라는 새로운 공간에 대한 이질감. 물이라는 이질감. 처음 하는 동작에 대한 이질감. 깊이는 가슴밖에 오지 않지만 이상하게 옥죄는 물에 대한 압박감 등등


가끔 초급에서 자유형 발차기를 하는 것을 보게 될 때가 있는데 그 분들을 보면 두 가지의 유형을 보입니다. 발을 너무 세게 차거나 물 속에서 발차기를 찹니다. 발을 너무 세게 찬다는 것은 반대로 말하면 상체도 똑같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고, 물 속에서 발차기를 찬다는 것은 다리의 힘이 물을 이용하지 못하고 물의 저항을 100%로 이겨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100M를 뛰는 선수의 상체를 상상해보면 답이 금방 나옵니다. 상체는 하체와 같은 속도로 반동을 일으킵니다. 물 속에서 달리기를 하는 사람도 상상해볼까요? 다리만 잠겨있는 사람과 상체까지 잠겨있는 사람 중에 누가 더 힘들까요? 당연히 상체까지 잠겨있는 사람이 물의 저항을 더 많이 받고 있기 때문에 더욱 힘들 수 밖에 없을 겁니다. 


그럼 어떻게 차야할까요? 무릎을 펴고, 일정한 속도로 발을 차면 됩니다. 물 밖에 걸터 앉아서 연습했던 그 자세입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잊어버릴 때가 많습니다. 잊어버린다기보다는 지름길을 찾았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 같습니다. 나도 모르게 지름길을 찾아간 것 같습니다. 기본보다 빠른 지름길은 없다는 간단한 사실을 까먹을 때가 많습니다. 물 밖에서 되지 않는 자세가 물 안에서 될리가 없을텐데 말입니다. 물 밖에서, 벽을 찹고, 킥판잡고, 킥판없이의 순서가 그래서 나온듯 합니다. 기초와 기본이 필요한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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