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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지원 Oct 10. 2021

B디자인

실리콘밸리향 첨가

지난 일들을 생각하면서 7편까지 시간 순서에 따라 글을 써오다가

전원생활 이후 맞이한 B디자인 에서의 3년간의 일들을 다시 떠올리며 정리하는 것이 진도가 안 나가서 글 쓰는 일을 잠시 미뤄두었다.

그동안 이 글은 정말 안 쓰고 못 배기겠군! 하며 빙글빙글 웃으면서 글을 썼다면

이번에는 왜 자꾸 사회고발(?) 같은 느낌으로 글이 써지는 건지 잠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적당히 따스하게 기억되는 다른 일들과 달리

얼마 지나지 않은 일들이라 아직 질기게 직조된 형태로 불쾌한 감정이 걸러져 내려가지 않았나 보다.

그리고 B디자인에서 함께 했던 동료들이 빨리 글을 써달라고 나를 재촉해 댔다.

안 그래도 흐름이 끊겼는데

누군가가 기다린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글을 쓰게 되었고 의식이 묻어있는 글들은 의미가 남지 않을 것 같아 다 삭제했다.(나는 변태청개구리)

 

글을 쓰는 것에는 성장 포인트가 있는데

이번 글에서는 누군가의 나쁜 이야기를 썼다가 다시 그 독이 나에게 돌아오는 것을 알게 된 것에 포인트가 있다.

 

타인에게 들었던 나쁜 상황이나 독한말들이 내 귀에 앉아 오래 맴돌아서 글로 풀어내 놓고 보니

내가 한 시커먼 이야기는 나에게만 맴돌지 않지 어딘가에서 이렇게 다른 사람 귀에 앉아 맴돌고 있겠구나 알게 되어 거북해졌다.


나치 전범 아이히만에 대한,

순전한 무사유의 인간이 리더그룹에 속할 때 벌어졌던 것에 대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단지 효율성과 주어진 일을 시간 내에 열심히 하는 사람의 성실성 같은 것이 인간의 존엄성 우위에 있는 것을 생각하며 치가 떨렸다.


그러다 생각의 화살은 또 나 스스로에게 돌아왔다.

나 역시 극도의 효율성을 신봉하는 사람이라 100퍼센트 중 20퍼센트만 일한다는 파레토의 법칙에 늘 피해의식이 있는 듯 입이 대빨 나와있었고

잘하는 사람만 괴롭고 못하는 사람은 대접받는 디자인 조직에 늘 혀를 차는 축에 속했다

그러다 조금이라도 결승전에 늦게 다다르는 사람이 있으면 바로 사정없이 채찍질하는 어느 조직을 만났고 그런 채찍질을 구경 삼았고 약간의 희열을 느끼면서 (그러게… 누가 빨리 못하래?) 직장생활을 했던 나의 모습이 다른 시각으로 보이면서 순전한 무사유의 인간 축에 나도 끼는구나 싶어 글을 쓰기가 힘들었다.


생산성을 매출로 하는 조직이란 응당 그래야 한다는 통속적 이야기는 생략하고 심정적 측면에서 주로 바라본 관점으로 이야기를 하게 될 것이다.

그래도 길지 않은 시간 동안 글을 쓰면서 일상에서는 알 수가 없었던 나의 무사유함을 깨닫는 것도 하나의 성장 재료로 삼아 다시 연재를 시작할 수 있어 다행이다.

 



2년 자발적 경력단절 후

다시 건축 인력시장으로

양평에서 전원생활을 즐기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내 나이는 36세였다.


그동안 무슨 성과가 있었나.

스스로가 지속하고 반복할수록 몸에 근육이 붙거나,

사회를 이롭게 하거나, 지식이나 경험이 확장되는 것에만 관심을 갖는다는 것을 깨닫는 정도의 성과를 거뒀고


일상이란 여행하듯 손님처럼 잠시 들러 무엇을 시작해도 시간이 지나면 그것은 너무도 쫀쫀해지고 다른 틈을 내어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삶의 여백이 많았던 것 같은 양평에 살면서도 시간이 없어서 오늘 못 만난다는 소리를 자주 하던 것을 깨닫고 황당했다.


전원생활에서 직장생활을 하지 않는 경험은 새로움을 다했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질겨지며 누군가에게 틈을 내주지 않고 스스로의 방향으로만 수렴되는 시간을 보내고 있을 즈음

다시 또 시작하고 확장하고 쫀쫀하게 만들기 위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공간을 만드는 일을 하지 않는 나는 별것이 없다… 고 생각한 것을 자기소개서를 위한 글로 옮겼더니

일을 예찬하는 어떤 문장들이 완성되어 있었다.

(이런 뉘앙스의 자소서 이거 위험한 것ㅋㅋㅋ)

포트폴리오와 자기소개서를 가지고 몇 군데에 입사지원을 했다.




사이다

첫 번째로 연락 온 회사인 P건축사사무소에서

H건축의 동료이자 백수 동지였던 백씨와 동반입사지원을 하고

4명의 남자면접관들에게 각각 면접을 보았다.


4명의 면접관중 한 명이

최지원 씨는 다 마음에 드는데 나이가 딱 우리 회사에 입사한 다음 출산휴가를 쓸 것 같아 걱정입니다.라고 대놓고 여러 번 이야기했다.

80년대에 불임수술하면 아파트 청약 가점 같은 혜택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때 아파트 청약을 받으셨나 싶었다.   

그래서 나도

'이 회사는 다 마음에 드는데 그런 질문을 하는 면접관이 있는 것이 걱정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인생에서 몇 번 없었던 사이다를 뽑아낸 순간이었지.

그 외에는 내가 할 수 있는 한 성실하게 면접을 마치고 나왔기에 면접관 얼굴에 사이다를 뿌렸음에도 백씨와 나는 각각 1시간 정도씩 면접을 보고 둘 다 합격 통보를 들었다.

방이동에 있는 일식집에서 술을 마시면서 자축을 한 것이 떠오른다.




기습

며칠 뒤 합격을 해놓고 P건축의 면접분위기도 그렇고 출근거리등 몇 가지 탐탁지 않은 사항들을 생각하며 긴가민가한 기분으로 집에서 별 목적 없이 인터넷을 뒤적이고 있을 때

백씨가 나에게 vmspace에 게재된 B디자인의 입사 공고를 보내왔다.

역시… 나와 같은 직장에 다니기 싫은 거였군.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으며 링크를 눌러보았다.

백씨가 보내준 링크와 함께 나와 잘 맞을 것 같은 회사를 찾았다는 코멘트도 붙어있었다.


채용공고 링크를 훑어 내려가서

그 회사의 홈페이지를 눌렀다.

링크를 클릭하자마자 두꺼운 폰트로 화면을 꽉 채우고 있는 홈페이지 메인의 첫 문장

“숟가락부터 도시까지”라는 문장이 튀어나왔고

나는 완전히 그 문장에 기습을 당했다.

지금 생각해도 디자이너가 유혹당하기 너무도 좋은 문장이다.

왜냐면 그 문장을 보니 갑자기 피가 끓는 기분이 들더라니까.

근거 없는 디자인 욕심이 쓰나미처럼 밀려왔다.

그 회사의 홈페이지 내의 프로젝트와 관련 기사들 몇 개를 찾아보는 내내

디자인이 소멸해 가는 세상에서

디자인으로 세상을 이롭게 하기 위한,

그리고 젊은 디자이너의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주는

흙속의 진주처럼 빛나고 있는 디자인 집단을 찾은 느낌이었다.


그럴 때는 이력서를 내는 것이 순리다.

쉽게 ‘운명’이라는 말을 사용해 버리고

바로 이력서를 보냈다.


느낌상으로는 30초,

실제로는 약 30분 정도만에 연락이 왔다.


그 순간을 기억한다.

이력서를 보냈고

전화가 왔고

네? 벌써요? 방금 보냈는데?라고

말했던 나.


그리고 백 씨에게

P디자인 안 가련다.

B디자인 면접 보러 간다- 고 바로 말했었지.




B디자인 면접

면접 당시 B디자인은

대표 외 몇 명을 제외하고 20대가 주축인 15명 정도의 회사였다.

UX 디자이너, 건축-인테리어 디자이너가 섞여 있었고 수평적이고 혁신적인 조직을 표방했다.

B디자인 대표 B 씨는 건축팀의 팀장을 찾고 있었고

다양한 회사에서 다양한 용도를 경험한 내가 제격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B 씨와 1:1로 면접을 볼 때를 회상해 보면

내가 잃어버린 오빠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처음부터 하고 싶은 것 있으면 우리 회사 와서 해볼래? 분위기였다.

'이외에 나 자신에게 별거 없더라...'

이런 나의 자소서에 감복했던 것 같다.

나중에 함께 일하다 보니

B 씨는 잃어버린 오빠는 아니었고

주 7일 일을 하는 전형적인 일중독자 대표였고

혼자 일중독자면 좀 나은데

일중독자가 아닌 사람을 이해 못 해서 힘든 일중독자 부류였다.


그 외에도 B디자인은

웬만한 시리즈는 다 섭렵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내가 읽지 않은 책을 발견한 느낌이었다.

팀원들은 수평적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서로 이름을 부르고 업무는 그럴싸해 보이는 건축-인테리어 프로젝트들이 있었고 거기에 UX 디자인 팀의 역량도 있었고 매출에 치우치지 않으면서 뼛속까지 젊은 건축가처럼 ‘보이는’ 대표의 첫인상이 마음에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중간관리자에서 시니어 디자이너가 되는 계기였다.

그래서 그냥 평범한 건축사 사무소보다는 새롭고 확장되는 방향이라 생각하고

건축 컨설팅, UX 디자인을 적정하게 섞어

숟가락부터 도시까지 디자인하는 회사에 바로 출근하기로 하였다.

궁금한 새 책은 빨리 읽어볼 수밖에!




즐거웠던 일개미

주변을 자꾸 바꾸면서 살다 보니

어느 무리에서 나는 나이 많은 사람의 역할을 하고 어느 무리에서 나는 재간둥이 역할을 한다.

누군가는 나를 소심한 사람으로 규정하고 누군가는 나를 너무 대범하다고 한다.

나의 주변을 이루는 사람들의 상대평가 결과다.

나는 B디자인 팀원구성에 의해 실무자 중의 왕고가 되어 급 어르신의 위치가 되어버린 건 그다지 즐거운 일이 아니었지만 자기소개서에 일 말고 딱히 하고 싶은 게 없다(마치 장래희망 일개미)라고 쓴 사람과

그 사람을 간택한 회사의 조합은 잘 맞아 돌아갔다.


몇 군데 대형 설계사무소들을 다니면서 쌓여있던 나의 실무적 갈증 중 하나는 계획하는 부서와 인허가 및 실시설계를 하는 부서가 분리되어 있다는 점에 있었다.

건축설계는 계획안을 50점을 일단 맞아놓고 준공할 때쯤 80점이라고 생각하는 답안지를 제출하는 것인데 계획만 하다 보니 건축물 설계에서 준공까지 전 과정을 깊게 들여다보지 못하는 패턴의 연속성에서 무기력함을 느꼈었다.

그에 반해 B 디자인은 작고 기민한 조직이었다.

계획하기가 무섭게 건물이 지어졌고 스케치업으로 모델링만 해서 넘겨도 실시 도면으로 작업해 주는 외주파트너가 있었다. 조직이 가볍다 보니 별 다른 보고 체계 없이 프로젝트는 빠르게 진행되었고

인허가와 행정에 관련된 것을 전부 외주화 했다.

 

그러니까 건축물을 짓는 프로세스 중에 딱 재밌는 것만 했다.

"디자인컨셉잡고 시각화하고 디자인대로 시공되는지 확인하는 작업까지"

그러다 보니 업무시간 중 디자인하는데 쓸 시간이 많았다.

매일 전화받고 이래저래 업무처리 하다 보면 정작 디자인할 시간은 없었는데

이렇게 디자인에 많은 시간을 써도 되다니!

매일매일 벌어지는 겪어보지 않은 업무상황에 동공이 커지는 느낌을 자주 받았다.

이걸 이렇게도 할 수 있다고?

역시 여러 시리즈를 읽어봐야 된다.

생각해 보면 과거 어느 시점에 간절히 바라던 모습의 내가 이제 된 것 같기도 했다.

(팩트 : 20대로 구성된 조직은 인허가 및 실시설계, 행정처리를 진행하기 어렵다. 디자인은 할 수 있다.)


전반부 2년 정도는

덮어놓고 B디자인이 좋았다.

좋으니까 좋았고

프로젝트도 좋았다.

너무 주니어인 사람들이랑 일하는 것이 부담되겠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회사에서 주니어만 데리고 있는 자체가

어차피 고도의 퀄리티는 바라지 않는 거라 생각해서

그냥 내가 맡은 프로젝트만 완성도 있게 해 보자.라고 생각했다.

그냥 이런저런 문제들이 있어도 팀원들의 활력을 힘입고 있어서 룰루랄라 괜찮았다.




나의 ‘가급적 건축’의 시작은 B디자인

건축설계사무소에서는 하나의 프로젝트를 하기 위해 일반적으로 데스크 리서치, 사이트 답사 정도를 한다.

그리고 현황측량 자료를 가지고 도시맥락적, 물리적, 법적 전개를 해 나간다면 이 회사는 여러 사용자 기법을 동원해서 사용자를 분석했다.

사이트에 인근에 며칠 머무르면서 사람과 도시를 관찰하거나 사용자들을 직접 인터뷰한다거나 사용자 다수의 동선을 추적해서 얻는 데이터를 가지고 공간의 논리를 만들어갔다.

사실 데이터는 ‘1인 가구는 라면을 많이 먹는다’ 같이 뻔한 결과를 말해줄 때가 많아서 조사 왜 했지? 느낌으로 끝날 때가 많았지만 가설을 세우는 능력도 좀 키웠고 늘 건축가들이나 엔지니어와 협업만 하는 나에게는 참신한 만남과 경험의 연속이었다.


UX와 결합하여 어느 제품 매장의 프로토타입을 연구하는 프로젝트를 경험하기도 했는데

새로운 공간을 찾아다니는 것을 즐기는 나에게 관공서나 폐쇄된 시설을 만드는 일보다 보다 다중이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점은 설레는 일이었다.


그리고 위에서 언급한 딱 재미있는 부분 - 건축설계사가 정해진 와중에 디자인만 따로 디벨롭시키는 포지션-의 프로젝트가 있었고

한 클라이언트와 연속적으로 리모델링, 신축, 증축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경험도 새로웠고

건축설계에서 건축물의 뼈대와 외관에 주력하고, 약간의 실내 마감재 정도를 결정했다면

B 디자인은 외피, 인테리어, 사이니지, 가구, 신발장, 이참에 신발주머니... 까지 해볼까...? 느낌이었기 때문에 개인으로서의 경험은 풍부해졌다.

(그러나 내가 건축주라면 모든 분야는 각 분야의 전문가에게 맡겨야겠다는 생각은 들었다.)


모두 공간을 만드는 일에 포함되지만

건축설계사무소에서 일을 하는 것과는 프로세스, 업무시간을 배분하는 기준의 많은 부분이 기존의 관성을 파괴하고 있어서 약간의 적응기가 필요했다.

물리적인 디테일이나 비주얼에서는 깊게 들여다보기보다는 얇고 분야를 확장하는 성향이 강하였다.

이런 B디자인의 성향으로 인해 여긴 건축설계사무소가 아니여~라며 반감을 가지고 떠나는 팀원들도 있었으나

나의 경우에는 ‘가급적’ 건축과 관련한 다양한 연구와 디자인을 하고 어느 정도 구현이 되는 것에 충족이 되었기 때문에 지속할 수 있었다.

꼭 구현의 문제가 아니더라도 건축가들이 이야기하는 깊이…? 보다는 덜 강요스럽게 대중적인 주제를 다루며 프로세스가 정형화되지 않은 점이 매력적으로 생각되었다.




이렇게 까지 퇴사?

어느 시점부터 인지는 어렴풋하다.

그러니까…

내 기준으로 3년간의 B디자인 생활에서

마지막 1년 동안

한 달에 약 2~3명, 어쩔 때는 그 이상으로 퇴사를 했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다시 새로운 2~3명이 입사를 하는 것으로 이게 사무실인지 점심시간 구내식당 인지 모를 회전율을 경험하며 1년을 보냈다.

 

주기적으로 뽑아대는 대학생 인턴과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처럼 퇴사하는 직원들과 송별회,

다시 새로운 사람과 통성명,

퇴사자의 업무 인수인계,

입사자에게 프로젝트 설명을 너무 자주 해서

프로젝트마다 유튜브로 영상이라도 하나 따놓고 싶어질 정도로

급속도로 나의 직장생활은 오염되어 갔다.

나는 경영관리 직원을 제외하고 회사에 제일 오래 다닌 사람이 되었다.

나 원래 이런컨셉아닌데.

나 엉덩이 엄청 가벼운데?




이럴 줄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이럴 줄은 몰랐던 것들

어느 회사나 퇴사 포인트가 있지만

쓰나미처럼 벌어지는 퇴사의 당사자이면서도 관찰자로서  

이렇게까지 이럴 줄은 몰랐던

B디자인과 B씨의 특징들을 좀 정리해 보았다.


1. 모순적인 선전문구

세후 수령액이 최저시급을 밑도는 디자이너들에게

애자일, 오케이알 같은 실리콘밸리의 성공신화에서 빌려온 말들을 주 단위로 바꿔가면서 월요일마다 히스테릭하게 강요하였다.

팀원 간의 성향을 알아야 한다며 마구 mbti를 하고

유난스럽게 타인의 적성을 까내렸다.

이런 선전문구를 살포하는 어느 혁신가에 의해

불안하고 비참 해지는 건 개개인의 노동자들이었다.

모순적인 선전문구들은 그것이 가진 이상적인 성격으로 인해 사이비종교의 어느 사상처럼 어느 순간에 맞는 말이네... 하고 먹혀들어갔다.

그러다가 한 두 명이 콧방귀를 뀌기 시작하니 빠른 속도로... 왜 저래? (속닥속닥)으로 바뀌게 되었다.

디자인 작업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보다 모순적 선전문구를 기반으로 한 강요의 순간들이 잦고 길어질수록 사직서와 랜선 퇴사가 난무했다.

대표 B 씨는 그 나름대로 요즘 디자이너들 고작 이게 어려워서 못하나? 하며 속이 끓었고

직원들은 밤을 새우고 앞뒤 구르기를 해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을 것 같다. 고 생각하며 서로 상처받는 분위기였다.


2. 텀블러나 고양이보다 못한

늘 폭언을 일삼는 사람에게 듣는 폭언은 극복 포인트가 있기는 하다.

저 사람 원래 이상한 사람이라 저래라고 스스로를 더 나은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환경을 생각해서 직원이 종이컵을 쓰는 모습에 바들바들 떨고, 고양이와 강아지를 사랑하고, 남녀노소의 평등, 애국과 배려 등을 강조하는 사람에게 폭언을 들으면

저 사람에게 나는 환경을 오염시키는 투명 플라스틱보다 못한 존재인가 생각하게 되면서

나의 가장 중요한 어느 부분이 훼손되는 느낌을 받는다.


나는 사실 이런 취급을 당하는 입장이 아니었으나

누군가 그런 취급을 당하는 것을 연속적으로 보는 것 또한 매우 정신적으로 해롭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타인의 밭에 누군가 하이힐을 신고 들어와서 마구 밟아놓는 다면 그 사람도 가만히 있지 않는 것이 인지상정이라며 회사를 위해서라도 여러 번 그러지 말아 달라고 건의했다. 그 정도 이야기하는 게 어려울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러게요. 죄송해요? 식의 B 씨의 무책임한 답변을 몇 차례 듣고는 그냥 그 사람의 밭에 아스팔트를 부어버리자 생각했다.

야. 레미콘 불러.


3. 관행을 바꾼다는 취지로 만들어낸 악행

기존의 조직문화를 바꾸기 위해

이름을 부르고 수평적인 문화를 만든다는 취지,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의 일환은 조금씩 변질되어

B 씨가 개방된 공간에서 팀원에게 큰소리로 비난을 하는 것이 공공연해졌고 나를 포함한 팀들의 팀장들도 비슷한 경향을 보였다.


꼭 유교사상까지 들먹이지 않아도 인간계에서 디자이너의 레벨이 다른 상황에 수평적 커뮤니케이션은 사실 이뤄지기가 어렵다.


기본 검은띠 이상의 아가리파이터 상사에게 수평적으로 자기 의견을 원활하게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 사람은 소수다.


내가 열거한 몇 가지 이야기들은

열정 주의를 기반으로

우리는 다르다! 달라야 한다! 고 이야기하는 혁신적 대표들에게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해지도록 스타트업을 겪은 여러 사람들의 경험과 비슷할 것이다.

그런데 B 디자인은 혁신적 포맷의 갓 시작한 스타트업도 아니었는데 10년간 계속 그 스타트업 텐션이라는 거가…

진보한 듯 하지만 퇴보한 조직이었다.


서두에 이야기한 아이히만은 너무 내지른 등장인물이라 생각하지만 나는 한동안

모순적 선전문구와

인간을 텀블러보다 못하게 보거나

관행을 바꾼다고 만들어낸 악행에

좀 취해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B 디자인의 공기에서는 뭔가 다른 맛이 낫기 때문이다.


파국이 이어지는 와중에도 당장에 맡은 일이 있으면 나는 어느 정도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나는 나만의 업무세계에서 집중하고 있었고 주니어 디자이너들에게 일을 분배하고, 출근한 지 며칠 안 되는 직원에게 프로젝트를 설명하는 날들을 보냈다.


파국과 나 사이의 문을 반쯤 열어둔 틈새로 이 파국을 감당하고 개선하라는 무언의 압박은 끊임없이 새어들어왔다.



99퍼센트

동료라고 생각했던 팀원들이 모두 다 떠나고

일장춘몽에서 깨어나서 사유의 필터를 장착하게 되니 오염의 원인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드러나 있었고

어느 이혼 후기에서 들었던 것처럼 계기하나 만 마련되면 끝날 결혼생활과도 같았다.


어느 날 저녁 약속을 마치고 온 B 씨가 자정이 다된 시간에 직원들을 메신저로 다 호출하는 장면을 보았고, 다음날 아침부터 두 시간 동안 성에 안 차게 디자인을 해온 어느 디자이너 한 명을 붙잡고 업무적 디렉션이 아닌 ‘인간이 왜 그러니’ 식의 훈계하는 소리를 계속 듣고, 점심시간에 밥 먹으러 간 직원을 다시 불러서 소스라치게 놀랜직원이 8차선 도로를 질주해서 달려오는 것을 보고 띵! 99퍼센트가 채워졌다.


이런 분위기는 더 이상 버티기가 힘들어 사직서를 쓰는 것이 심정적으로는 적절한 조치였지만 나의 경력상으로는 비극이었다.


프로젝트 형태, 나의 포지션과 연봉, 경력관리, 협력사와의 관계, 잡코리아에 들어가지 않아도 됨 같은 좋은걸 다 합쳐도 ‘이 회사에 있는 내가 싫다’가 99퍼센트 여서 더 다닐 이유 1은 호소력이 약했다.


그 시절 입에서 자주 시.. 바? 가 나오더라.

친구들이랑 이야기하다가 웃기려고 하는 욕 말고

레알 욕 말이다.

마치 입에서 갈색 연기가 함께 나올 것 같은 쓰고 오염된 공기의 욕이었다.




피보팅

짧지 않은 기간에 걸쳐 퇴사를 한 과정은 생략하겠다.  

공들여 다닌 직장을 두고 또 직장을 알아봐야 하는 점이 진짜 분노 포인트였다.

후…

여러 경험을 통해

어쨌든 건축을 꼭 설계의 포맷이 아니더라도

더 고도화된 시각과 포지션에서 다루는 일은 계속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전 과정을 관리하는 일이 한과정을 깊게 들여다보는 것보다 내가 더 원하는 것임이 확실해졌다.   

거침없이 피보팅이라는 말이 어느 트렌드 교과서에 나오지 않았던가.

(아직도 나의 카톡프로필 문구는 ‘피보팅’)

이제 시리즈의 마지막 안 읽었던 책을

다 읽은 셈이라 치고 진짜 진짜 다음 시리즈를 펼쳐본다고 스스로를 북돋웠다.


나의 잦은 이직은

정성을 다하는 성격이라 충전이 자주 필요하다고 하다는 의견과

쉽게 질리고 지구력이 부족하다는 의견이 있다.

둘 다 맞는 말이다.

첫 번째는 칭찬처럼 들려서 뭐 에이 왜 그래.. 하고 쑥스러워 할 수도 있지만 두 번째 특성을 고려해봤을 때 앞으로 장기전을 하고 싶다면 스스로 완급조절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지하게 한다.


인간이 크게 변하기는 힘들다.

나는 또 시행착오를 할 거고

약간 새로운 일을 찾아서 호들갑 떨다가

금방 능숙해지고

다시 쫀쫀하게 직조되어 틈이 없어지고

그 틈 없음에서 파국이 생기고

탈출하는 패턴 일거다.

(써놓고 보니 이게 결혼 패턴이 아닌 직장 패턴이어서 다행이다)


이것의 속도를 늦추고 더 즐길 수 있는 것은 연륜의 쌓임도 있겠지만 피보팅을 통해 약간의 변화가 아닌 큰 변화를 맞이하는 것으로 주장한다.

몸과 마음이 무겁지 않아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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