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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지원 Aug 27. 2024

양수리 일층집 (2)

2018년, 숲 속의 집에 살면 만나게 되는 것들

습기

이 글을 읽는 사람 중 자연채광 자연환기에 대해 사무친 적이 없다면, 살고 있는 혹은 살았던 집에서 곰팡이를 아직 본 적이 없다면, 제습기 사양과 구매에 대해서 미간에 주름을 잡고 리뷰들을 살핀경험이 없다면 바짝 마른 콘크리트 박스 안에서 또는 채광과 환기가 적절한 호흡하는 건축물안의 쾌적한 환경에서 지내고 있던 삶일 것이다. 우선 그런 삶을 살았던 것 축하드린다. 나도 35년 동안 그런 삶을 살았으나 축하받을 일인지 몰랐기 때문에 상기시켜 드린다.

왜 남편이 가구를 배치할 때 뒷벽에 딱 안 붙이고 2센티 이상 여유를 두고 배치하는지, 비가 오는 여름 왜 보일러를 돌리는지 이해하지 못했었다. 습기가 흉폭을 부리던 경험이 있기 전에는 말이다. 2017년의 여름은 그저 이미 사랑했던 사람과도 마치 처음인 양 사랑에 빠질 것 같은 아름다운 여름 밤들을 보냈었다. 에어컨을 한 번도 켜지 않았다. 별을 보고 마당에서 곤충을 발견하며 그렇게 여름을 보냈다. 2018년 여름에는 한반도 대홍수와 폭염이 찾아왔다. 자연의 역습이 지금인가, 인류 놈들 이제 끝나는 건가 싶을 정도로 비를 퍼부었다.

남편의 작업실에서 차츰 곰팡이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용하다는 각종 곰팡이 약품으로 벽을 손수 닦아냈다. 이제 좀 없어졌다 싶을 정도로 닦아내면 다음날 좀비처럼 화학약품에 내성이 생겨 더 흉폭 해져버린 듯한 곰팡이균이 가동하여 다시 꽃을 피워댔다.

이럴 때 인간이 집에서 할 수 있는 것 은 별로 없다. 제습기를 돌리거나 곰팡이를 닦아내거나 아니면 그 위에 다른 재료를 덧붙이는 방법뿐이다. 아무튼 북측과 서측은 축축한 숲과 맞닿아 있었고 벽은 기밀하지 않아 결로가 생기고 습기가 유입되는 호흡이 딸리는 환자 같은 집이었다.

생각해 보면 이 집을 처음 보러 왔을 때 현관문을 열었을 때 코끝으로 느껴졌던 것이 습기 냄새였다. 그때는 그냥 시골집 냄새려니 했다.

남쪽의 거실전면에 넓은 데크가 있고 거실에는 차양이 깊지 않아 데크가 바짝바짝 마르는 반면 북측의 주방 벽은 축축한 산에 거의 붙어있었다.

곰팡이를 최대한 귀엽게 그려보았다.


현대건축 자체에 대한 회의

벽돌공사를 제대로 안 했거나 어딘가 단열이 끊겨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여름 내내 했다. 집에 누수를 한 번이라도 겪어본 사람들은 그 누수의 시작점을 찾는 일이 의사가 암의 발원지를 찾는 것, 소방관이 발화지점을 찾는 것만큼 어렵다는 것을 알 것이다. 제대로 된 학문도 없고 기술도 없으나 자주 발생되는 기후와 차단되지 못한 집에서 사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은 현대건축에 대한 회의감을 준다.

한번 지어진 집은 레고처럼 분리했다가 다시 만들 수도 없는 것이고 일부를 부셔서 확인해 볼 수도 없는 것이다. 물론 설비나 전기시설등은 점검구를 이용해서 교체와 수리가 가능하지만 벽체의 단열, 방수 등의 하자는 장님 코끼리 다리 만지듯 짚어가면서 그 위에 뭔가를 덧바르는 조치밖에 할 수 없지 않은 걸 보면 건축이라는 것은 너무도 불완전한데 콘크리트를 두꺼운 파운데이션처럼 바르고 뻔뻔한 얼굴을 하고 있는 듯하다.

인류가 개발해 낸 발명품 콘크리트는 아무리 생각해도 무식하고 폭력적인 (실제로 맨해튼은 건축물의 하중으로 일 년에 1미리씩 가라앉고 있다고 한다) 자재고, 단열재라는 물건은 우리를 외기로부터 차단하여 마치 텀블러처럼 인간을 보온 보냉 시켜주지만 처음 시공 시 완전하게 시공하지 못한 단열재에 대해서, 또는 4~50년의 노화와 하자에 대해서는 벽돌과 콘크리트벽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길이 없는 일이다.

그저 처음 건축물을 지을 때 현장소장이나 작업자가 엄청나게 양심적이고 결벽에 가까운 꼼꼼하고 예민한 성정으로 그 현장을 대한 것이 아니라면 이런 하자의 수수께끼 출제자 같은 건물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작은 주택뿐만이 아니라 대형건설사의 아파트나 집합건물에서도 이런 것들을 자주 경험하다 보니 오히려 건축은 구구단이나 글쓰기처럼 모두가 교육받아 내 집은 직접 짓고 살아야 되는 것이 아닐까, 아니면 일부분만 갈아 끼울 수 있게 모두 모듈화를 해야 되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는 건축공법의 불완전 함과 공법의 획일성이 무지하게 느껴지는 시점이었다.


뱀 이 나왔다

어느 날 도로변으로 뭐가 샥 지나갔다. 시골에서 뭐가 샥- 지나가는 걸 보고 잠시 저릿할 때가 많은데 별똥별!이라고 쓰면 좋겠지만 이번엔 뱀이었다. 이 집에서 뱀이 자주 보였다. 집을 오르는 계단옆에 뱀의 굴이 있었다. 뱀 알도 있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뱀과도 더불어 살면 살 수 있었으려나.

옆집 아주머니가 백반을 뿌려보라고도 했다 남편은 뱀굴을 위치를 파헤치겠다면서 땅을 파다가 외부 경관 조명의 전선을 잘라서 온 집안이 정전이 되기도 했다.(대단해) 뱀굴에 백반 같은걸 찔끔찔끔 뿌려대-며 뱀이 없어졌다고 추정하고 살았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뱀은 사실 공격할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뱀은 풀숲에서 잠시 우리의 아킬레스건 뒤로 쓱 - 슉- 샥 - 지나다녔을 뿐이다.


지네

양수리 일층집은 박공지붕이었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의 그 박공집 - 집의 내부로 들어오면 박공지붕덕에 천장이 매우 높았다. 자만 천정 안의 석고보드 위 패널을 마감한 것이 아니라 그냥 목재패널을 이어 붙인 방식 같았다. 그 틈바구니 사이에서 지네가 나왔다. (요즘의 주택공사에서 석고보드 합판의 시공은 당연하고 중요하게 여겨지는데 왜 생략했어요 까먹었어요?)

상위포식자인 지네가 출몰하는 걸 보고 이 주변에는 곤충이 진짜 많은가 봐 생각했는데 나중에는 이렇게 지네만 계속 나오면 아마 이 주변의 생태계의 균형이 완전히 파괴되었다 싶을 정도였다.

자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다양성이라고 레이첼 카슨 선생님이 말씀하셨는데 지네를 생각하면 곤충의 다양성의 파괴된 현장 같았다. 아무튼 나는 여름에 출몰하는 지네를 보고 자주 놀랐고, 우리 집에서는 지네를 보고 놀란 가슴 검은색 플러스펜 보고도 놀란다는 속담까지 생겨났다.



싱크대 안의 쥐

싱크대 하수배관의 기밀성이 취약했다. 분리해서 보니 싱크대 배수구에서 내려가는 배관과 땅속으로 연결되는 배관의 사이즈가 같은 사이즈가 아니었다. 밑에서 받아주는 더 큰 파이프의 남는 잔여공간을 투명 테이프로 감아놨는데 시간이 흘러 서서히 부식되고 구멍이 뚫려 쥐가 올라온 것으로 추정된다.



차 범퍼 안에 고양이가 새끼를 숨겨 놓았다.

마당에 고양이가 자주 나타나 사료를 주고는 했다. 무슨 조화인지 은혜 갚은 고양이 스토리를 만들고 싶었던 건지 자주 출몰하는 노숙 고양이가 내 차 범퍼 안에 새끼를 보관하고 있었다. 이걸 모르고 포천시청 건축과에 허가 협의를 갔다가 논현동 사무실에서 퇴근하려고 차에 시동을 거는데 차밑에서 아기고양이 소리가 들렸다. 보닛도 열어보고 차 밑도 샅샅이 뒤졌는데 사무실에 남아있던 사람들 모두가 달려들어 알아보았지만 아무도 어느 부위에서 나는 고양이 소리인지 못 찾았다. 결국 종새가 어디선가 회식을 하다가 논현동의 우리 사무실로 와서 차의 범퍼를 분리해서 탯줄이 붙어있는 새끼고양이를 구출해 냈다. 80킬로미터를 상회하는 거리를 운전하는 동안 안정적으로 범퍼에 실려 다니던 고양이는 지금 강남의 부유한 어느 교수님 댁에서 뱅앤울룹슨 스피커를 스크래처 삼아 호의호식 하고 있다.



자연 속으로 너무 비집고 들어간 건가

양수리 일층집에서 겪은 일들은 지금 생각해 봐도 도시에서만, 아파트유닛에서만 살아봤다면 견딜 수 없는 종류의 일들이 많았다. 나중에 알게 된 이야기지만 이전 세입자들은 계약 기간을 다 못 채우고 이사를 했다고 한다. 그나마 우리 집에는 인간 모글리가 있었다. 시골의 야생환경에서 나고 자라 조금 더 원시적인 환경이 익숙한 남편이 기후가 집 내부로 침투하여 벌어지는 일들에 맞섰고 집에 관한 사건(?)이 발생하면 우리 둘 다 건축설계를 하는 사람들이어서인지 ‘주택이라는 건 이런 문제가 있구나.’로 고민이 잠시 전가되어 내가 느끼는 고충에 대해 몰입하지 않았던 것 같다.


물이 오른 호스트 생활, 주유비와 식비과잉지출의 삶

양평 이층 집부터 이어져오던 호스트 생활은 양수리 일층집에서 절정에 올랐다. 거의 매주말 데크에서 캠핑이었다. 평일에도 마당에서 새우를 구워 먹기도 하며 펜션놀이를 했다. 그러면서 매일 논현동에서 양수리까지 차를 몰아 맹렬하게 출퇴근했다. 휘발유를 길에 뿌리고 사는 기분, 주말마다 파티비용이 과했고 잦은 음주가무로 체력도 축나는 기분이 자주 들었다.


작은 텃밭

텃밭의 식물들은 퇴비를 좀 준다고 물을 잘 준다고 자라지 않는다. 우리가 마트에서 파는 것 같은 작물들은 다 유전자 변형이다. 순진하게 시장에서 모종을 사서 배양토와 비료를 뿌려대도 시장에서 파는 모양의 작물은 열리지 않는다.


샤오미 아이오티

뜻밖의 아이오티를 많이 활용했다. 퇴근 후 마당에 도착해서 어두운 숲을 헤치고 들어가는 느낌을 느끼지 않으려면 외부조명을 계속 켜두거나 타이머를 설치해야 하는데 샤오미 전구를 휴대폰과 연동시켜서 집에 도착하기 전 휴대폰으로 미리 불을 켰다. 아이오티는 시골에서 더 필요한 기술이었다.


꽤 쾌적했던 격리생활

정말 집에 있는 게 그렇게 답답해?라는 말을 했었다. 카페도 갈 수 없고, 책방도 갈 수 없고 아크 앤 북의 의자들 교보문고의 책을 읽을 수 있는 의자들이 사건현장처럼 플라스틱 선으로 바리케이드가 쳐있던 시절이었다. 집에 있는 것이 그렇게 고립된 느낌인 걸까 공감이 안될 정도로 집에 있을 때면 마당에서 책도 읽고 차도 마시고 격리가 그렇게 어렵지 않은 시절을 보냈다.

이렇게 나열하고 보니 아무 일도 안 하면 아무 일도 안 일어났겠는데 여러 일을 해서 별기억이 다 남아있구나 싶다. 집을 상대(?)하면서 가장 많은 시간과 활동을 벌인 2년이었다. 결국 지네의 잦은 출몰과 결국 서울에서 밖에 할 수 없는 직장으로 인해 자연 속의 집에 완패한 기분으로 서울행을 결정했다. 이사를 결심하던 시기 가장 많이 하던 생각이 서울의 신축 원룸에서 살고 싶다. 였으니 정장 입고 괜찮다며 등산에 따라나섰다가 스타킹에 빵 꾸나고 구두굽은 다 부러져서 호되게 당하고 집에 돌아오는 모양새와 비슷했다.

우리는 서울행을 준비했다.


각종 곤충과 새와 동물들을 성가시고 불편하게 만드는 생물들로 치부해 버리면서 정작 그것들과 격리하지  못하는 기술로 어줍지 않은 집을 지어서 살겠다고 설쳤으니 인간이 만들어낸 기술들이 얼마나 불완전 한지 연속적으로 체험하던 시절이었다.


이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자주 카톡을 주고받던 집주인분은 아내에게 이혼을 당했고 집을 빼앗겼다는 속사정까지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것저것 집에 대한 조언을 주던 집주인분의 장모님께서 우리의 이사와 집정리를 도와주셨는데 그 구역의 엄청난 집장사였다. 이 분을 표현할 수 있는 말이 집장사 밖에 없다는 것이 안타까운데 땅을 가지고 집을 지어서 세를 주는 그 일대의 전원주택들의 원작자(?)였고 그분은 말씀만 하고 별다른 행동은 안 하시지만 많은 일을 이뤄내는 분이었다.


여러 집 중의 한집이라 그동안 사위가 관리해서 신경을 못썼다며 세입자들이 자꾸 바뀌어서 관리가 더 안되었다며 집과 데크를 수리해 주고 주변 조경을 정리해 주며 우리를 아쉬워하셨는데 우리는 이미 시동을 걸고 서울로 향하고 있었다.

잘살아라 지네들, 최대한 혐오스럽지 않게 그려보았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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