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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지원 Jun 06. 2023

양수리 일층집

2018년, 숲 속의 집에 살면 만나게 되는 것들

이층 집처럼 보이지만 일층집입니다.


2018년에 양평에서 양평으로 한번 더 이사했다. 같은 양평군이긴 한데 서울과 조금 더 가까운 양수리였다. 양평 이층 집에서 2년 동안 지내면서 조금 더 자연으로 다가갈 자신이 생긴 뒤였다. 양수리 일층집은 그 자신감에 부합하는 아주 충분히 자연과 교류(?)하는 집이었다. 그림처럼 집의 뒤통수에는 짙은 초록이 쓰나미 치듯이 울창한 숲을 넘치도록 만들어 내고 있었다.

집의 실내와 실외의 생태계가 연결되어 있는 느낌을 종종 느끼곤 했다. 새소리와 곤충소리가 소나기처럼 쏟아져 내렸다. 처음엔 집 밖에서 나는 소리라고 생각했는데 집안에서 나는 소리일 때도 많은 것을 차츰 알게 되었다.

건축 설계를 하면서 공간을 설명할 때 '연결'과 '조화'라는 단어를 꽤 자주 사용한다. 자연과 도시와 인간과 기존건축물들과의 '연결', '조화'는 매일 강조해도 모자란 느낌이라 그럴 것이다.

양수리 일층집이야 말로 자연과 '연결'되고 '조화'를 이루는 집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래 내가 건축가였지. 건축가라면 월든의 오두막은 힘들더라도 이런 집에 건축가라면 살아봐야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라며 대차게 계약을 추진했다.


양평으로 처음 내려와 선택했던 양평 이 층집(이전 편을 읽어보시라)은 견고하고 생활감 없는 콘크리트 박스, 밀봉이 가능한 플라스틱 락앤락과 같았다면 양수리 일층집은 틈이 벌어져 안에 들어있는 내용물이 보이는 나무 사과 상자 같은 느낌이었다.

곤충들의 먹이 사슬 사이에 내가 어느 정도 생존 능력이 있는지 모르고 일단 합류했다. 인류의 시각으로 보자면 집주인에게 전세계약을 하고 세 들어 산 것이고 곤충들 시점에서는 연이은 인간의 무단침입, 우리가 얼마나 강한지 모르고 사람 또 들어오네? 어쩌면 군침 도는 장난감처럼 보였을 수도 있다.



실측도면을 계획도면처럼 깔끔하게 그려둔 남편덕에 기억이 더 생생하다.

양수리 일층집은 방세개에 화장실 두 개, 거실과 주방이 통합되어 있고 남측을 향해 가로로 긴 형태였다. 밖에서 보이는 박공지붕의 방향이 실제로 실내지붕형태에 반영되어있지 않아서 천정을 바라볼 때마다 갸웃했다. 천정에 뭔가 숨겨져 있을 것 같은 대저택의 비밀 같은 스릴러가 생각나 그 생각을 떨치려고 가끔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1층이지만 차도보다 훨씬 높은 위치였고 하루종일 조용히 틀어박혀 있고 싶은 거실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방 1은 침실이었고, 방 2는 남편의 작업실이었고, 방 3은 드레스룸이라 정작 내방은 없었는데 거실 식탁과 소파에서 책을 읽거나 테라스에 나가서 시간을 보내곤 해서 방이 없는 것을 자각하지 못했다. 요즘처럼 매일 집에서도 책상 앞에만 있는 시기를 생각하면 양수리 일층집에 살 때는 제대로 된 책상생활을 한 기억이 없다. 아무래도 거실공간에서 남향의 햇빛을 쪼이는 것으로 집생활을 만족했나 보다.


테라스와 계단

깐깐함을 작동시키지 않고 이 집을 계약했던 이유는 집 앞의 테라스다. 거실에서 항상 테라스가 보였고 거실의 대형창을 통해 내외부 공간을 넘나들기 수월했다. 보면서 접근하지 못하는 공간과 접근이 용이한 공간의 질은 매우 다르다. 남향의 빛으로 바짝 마른 언덕 위에 바짝 말라있는 데크, 오일스테인이 다 벗겨져 있는 모습이 매력적인 데크를 거실과 수시로 오갈 수 있었다. 집 앞으로는 경사가 심해서 집에 오면 4~5미터 정도 계단을 올랐다. 경사면에는 무덤이 두 개 있었다. 사람들이 무덤이 있는데 안 무섭냐고 할 때마다 무덤이 있어서 누군가 당장 신축을 한다고 공사를 시작할 일은 없을듯해서 오히려 좋다고 했고 실제로 그렇다. 아침마다 데크에서 시작해서 계단으로 내려가는 영역의 빗자루 질을 했다. 주변 나무들에서 떨어진 낙엽을 쓸곤 했는데 마당의 낙엽을 쓸 때마다 주어진 인생을 꼼꼼하게 사는 느낌이 들었다. 마당을 빗자루질하는 일은 헬스장을 대체하는 활동이라고 생각해서 시간이 아깝지 않았다. 다만 계단 주변에 꽃나무들을 다듬는 일에 몰입해서 주말의 반나절이 순간 삭제되고는 해서 이게 무슨 일인가 싶을 때가 가끔은 있었지만 매일아침 '마당을 빗자루질하는 삶'은 '저녁이 있는 삶'처럼 생계를 위해 하는 일을 넘어선 여가행위 같은 느낌이라 빗질은 빙글빙글 웃으면서 치르는 노동이었다.



처마밑에 새는 둥지를 틀고 난간두겁 밑에 말벌은 벌집을 짓는다.

난간손잡이의 디테일이 과도하면 그 밑에 벌들은 꽤나 안정적으로 벌집을 만든다. 벌집을 갖고 싶은 의도라면 난간두겁을 넓게 디테일을 디자인하면 되지만 의도가 아니라면 난간 손잡이에 재료낭비는 최소화하는 것이 좋다.

갑자기 건축각론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건 아니고 양수리집 데크의 난간두겁이 매우 넓은 편이었는데 어느 날 허세 가득한 자세로 난간에 기대어 양팔을 벌리고 수순에 따라 양손으로 난간대를 잡는 포즈를 취하다가 난간손잡이도 잡고 벌집도 함께 잡은 경험 때문에 그렇다.

벌집에 있던 말벌들은 파괴되는 집에 분개하며 전투태세로 전환했고, 남편은 순식간에 어디선가 장총 같은 토치를 들고 나와서 순간적으로 말벌을 제압했다. 등골이 서늘한 순간이었다.

결과적으로 인간들 중 아무도 말벌에 쏘이지 않았지만 말벌의 입장에서는 집을 잃게 된 것, 말벌 미안하다. 말벌의 집과 공존 중인걸 모르고... 이게 다 허세스러운 자세 때문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처럼 그 이후로 나는 데크에서 손을 모으고 공손한 자세로 앉고는 했다.

난간 손잡이의 단면 - 난간대 밑으로 벌집이 매달려 있었다.



습기

이 글을 읽는 사람 중 자연채광 자연환기에 대해 사무친 적이 없다면, 살고 있는 혹은 살았던 집에서 곰팡이를 아직 본 적이 없다면, 제습기 사양과 구매에 대해서 미간에 주름을 잡고 리뷰들을 살핀경험이 없다면 바짝 마른 콘크리트 박스 안에서 또는 채광과 환기가 적절한 호흡하는 건축물안의 쾌적한 환경에서 지내고 있던 삶일 것이다. 우선 그런 삶을 살았던 것 축하드린다. 나도 35년 동안 그런 삶을 살았으나 축하받을 일인지 몰랐기 때문에 상기시켜 드린다.

왜 남편이 가구를 배치할 때 뒷벽에 딱 안 붙이고 2센티 이상 여유를 두고 배치하는지, 비가 오는 여름 왜 보일러를 돌리는지 이해하지 못했었다. 습기가 흉폭을 부리던 경험이 있기 전에는 말이다. 2017년의 여름은 그저 이미 사랑했던 사람과도 마치 처음인 양 사랑에 빠질 것 같은 아름다운 여름 밤들을 보냈었다. 에어컨을 한 번도 켜지 않았다. 별을 보고 마당에서 곤충을 발견하며 그렇게 여름을 보냈다. 2018년 여름에는 한반도 대홍수와 폭염이 찾아왔다. 자연의 역습이 지금인가, 인류 놈들 이제 끝나는 건가 싶을 정도로 비를 퍼부었다.

남편의 작업실에서 차츰 곰팡이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용하다는 각종 곰팡이 약품으로 벽을 손수 닦아냈다. 이제 좀 없어졌다 싶을 정도로 닦아내면 다음날 좀비처럼 화학약품에 내성이 생겨 더 흉폭 해져버린 듯한 곰팡이균이 가동하여 다시 꽃을 피워댔다.

이럴 때 인간이 집에서 할 수 있는 것 은 별로 없다. 제습기를 돌리거나 곰팡이를 닦아내거나 아니면 그 위에 다른 재료를 덧붙이는 방법뿐이다. 아무튼 북측과 서측은 축축한 숲과 맞닿아 있었고 벽은 기밀하지 않아 결로가 생기고 습기가 유입되는 호흡이 딸리는 환자 같은 집이었다.

생각해 보면 이 집을 처음 보러 왔을 때 현관문을 열었을 때 코끝으로 느껴졌던 것이 습기 냄새였다. 그때는 그냥 시골집 냄새려니 했다.

남쪽의 거실전면에 넓은 데크가 있고 거실에는 차양이 깊지 않아 데크가 바짝바짝 마르는 반면 북측의 주방 벽은 축축한 산에 거의 붙어있었다.

곰팡이를 최대한 귀엽게 그려보았다.


현대건축 자체에 대한 회의

벽돌공사를 제대로 안 했거나 어딘가 단열이 끊겨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여름 내내 했다. 집에 누수를 한 번이라도 겪어본 사람들은 그 누수의 시작점을 찾는 일이 의사가 암의 발원지를 찾는 것, 소방관이 발화지점을 찾는 것만큼 어렵다는 것을 알 것이다. 제대로 된 학문도 없고 기술도 없으나 자주 발생되는 기후와 차단되지 못한 집에서 사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은 현대건축에 대한 회의감을 준다.

한번 지어진 집은 레고처럼 분리했다가 다시 만들 수도 없는 것이고 일부를 부셔서 확인해 볼 수도 없는 것이다. 물론 설비나 전기시설등은 점검구를 이용해서 교체와 수리가 가능하지만 벽체의 단열, 방수 등의 하자는 장님 코끼리 다리 만지듯 짚어가면서 그 위에 뭔가를 덧바르는 조치밖에 할 수 없지 않은 걸 보면 건축이라는 것은 너무도 불완전한데 콘크리트를 두꺼운 파운데이션처럼 바르고 뻔뻔한 얼굴을 하고 있는 듯하다.

인류가 개발해 낸 발명품 콘크리트는 아무리 생각해도 무식하고 폭력적인 (실제로 맨해튼은 건축물의 하중으로 일 년에 1미리씩 가라앉고 있다고 한다) 자재고, 단열재라는 물건은 우리를 외기로부터 차단하여 마치 텀블러처럼 인간을 보온 보냉 시켜주지만 처음 시공 시 완전하게 시공하지 못한 단열재에 대해서, 또는 4~50년의 노화와 하자에 대해서는 벽돌과 콘크리트벽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길이 없는 일이다.

그저 처음 건축물을 지을 때 현장소장이나 작업자가 엄청나게 양심적이고 결벽에 가까운 꼼꼼하고 예민한 성정으로 그 현장을 대한 것이 아니라면 이런 하자의 수수께끼 출제자 같은 건물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작은 주택뿐만이 아니라 대형건설사의 아파트나 집합건물에서도 이런 것들을 자주 경험하다 보니 오히려 건축은 구구단이나 글쓰기처럼 모두가 교육받아 내 집은 직접 짓고 살아야 되는 것이 아닐까, 아니면 일부분만 갈아 끼울 수 있게 모두 모듈화를 해야 되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는 건축공법의 불완전 함과 공법의 획일성이 무지하게 느껴지는 시점이었다.


뱀 이 나왔다

어느 날 도로변으로 뭐가 샥 지나갔다. 시골에서 뭐가 샥- 지나가는 걸 보고 잠시 저릿할 때가 많은데 별똥별!이라고 쓰면 좋겠지만 이번엔 뱀이었다. 이 집에서 뱀이 자주 보였다. 집을 오르는 계단옆에 뱀의 굴이 있었다. 뱀 알도 있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뱀과도 더불어 살면 살 수 있었으려나.

옆집 아주머니가 백반을 뿌려보라고도 했다 남편은 뱀굴을 위치를 파헤치겠다면서 땅을 파다가 외부 경관 조명의 전선을 잘라서 온 집안이 정전이 되기도 했다.(대단해) 뱀굴에 백반 같은걸 찔끔찔끔 뿌려대-며 뱀이 없어졌다고 추정하고 살았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뱀은 사실 공격할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뱀은 풀숲에서 잠시 우리의 아킬레스건 뒤로 쓱 - 슉- 샥 - 지나다녔을 뿐이다.


지네

양수리 일층집은 박공지붕이었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의 그 박공집 - 집의 내부로 들어오면 박공지붕덕에 천장이 매우 높았다. 자만 천정 안의 석고보드 위 패널을 마감한 것이 아니라 그냥 목재패널을 이어 붙인 방식 같았다. 그 틈바구니 사이에서 지네가 나왔다. (요즘의 주택공사에서 석고보드 합판의 시공은 당연하고 중요하게 여겨지는데 왜 생략했어요 까먹었어요?)

상위포식자인 지네가 출몰하는 걸 보고 이 주변에는 곤충이 진짜 많은가 봐 생각했는데 나중에는 이렇게 지네만 계속 나오면 아마 이 주변의 생태계의 균형이 완전히 파괴되었다 싶을 정도였다.

자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다양성이라고 레이첼 카슨 선생님이 말씀하셨는데 지네를 생각하면 곤충의 다양성의 파괴된 현장 같았다. 아무튼 나는 여름에 출몰하는 지네를 보고 자주 놀랐고, 우리 집에서는 지네를 보고 놀란 가슴 검은색 플러스펜 보고도 놀란다는 속담까지 생겨났다.



싱크대 안의 쥐

싱크대 하수배관의 기밀성이 취약했다. 분리해서 보니 싱크대 배수구에서 내려가는 배관과 땅속으로 연결되는 배관의 사이즈가 같은 사이즈가 아니었다. 밑에서 받아주는 더 큰 파이프의 남는 잔여공간을 투명 테이프로 감아놨는데 시간이 흘러 서서히 부식되고 구멍이 뚫려 쥐가 올라온 것으로 추정된다.



차 범퍼 안에 고양이가 새끼를 숨겨 놓았다.

마당에 고양이가 자주 나타나 사료를 주고는 했다. 무슨 조화인지 은혜 갚은 고양이 스토리를 만들고 싶었던 건지 자주 출몰하는 노숙 고양이가 내 차 범퍼 안에 새끼를 보관하고 있었다. 이걸 모르고 포천시청 건축과에 허가 협의를 갔다가 논현동 사무실에서 퇴근하려고 차에 시동을 거는데 차밑에서 아기고양이 소리가 들렸다. 보닛도 열어보고 차 밑도 샅샅이 뒤졌는데 사무실에 남아있던 사람들 모두가 달려들어 알아보았지만 아무도 어느 부위에서 나는 고양이 소리인지 못 찾았다. 결국 종새가 어디선가 회식을 하다가 논현동의 우리 사무실로 와서 차의 범퍼를 분리해서 탯줄이 붙어있는 새끼고양이를 구출해 냈다. 80킬로미터를 상회하는 거리를 운전하는 동안 안정적으로 범퍼에 실려 다니던 고양이는 지금 강남의 부유한 어느 교수님 댁에서 뱅앤울룹슨 스피커를 스크래처 삼아 호의호식 하고 있다.



자연 속으로 너무 비집고 들어간 건가

양수리 일층집에서 겪은 일들은 지금 생각해 봐도 도시에서만, 아파트유닛에서만 살아봤다면 견딜 수 없는 종류의 일들이 많았다. 나중에 알게 된 이야기지만 이전 세입자들은 계약 기간을 다 못 채우고 이사를 했다고 한다. 그나마 우리 집에는 인간 모글리가 있었다. 시골의 야생환경에서 나고 자라 조금 더 원시적인 환경이 익숙한 남편이 기후가 집 내부로 침투하여 벌어지는 일들에 맞섰고 집에 관한 사건(?)이 발생하면 우리 둘 다 건축설계를 하는 사람들이어서인지 ‘주택이라는 건 이런 문제가 있구나.’로 고민이 잠시 전가되어 내가 느끼는 고충에 대해 몰입하지 않았던 것 같다.


물이 오른 호스트 생활, 주유비와 식비과잉지출의 삶

양평 이층 집부터 이어져오던 호스트 생활은 양수리 일층집에서 절정에 올랐다. 거의 매주말 데크에서 캠핑이었다. 평일에도 마당에서 새우를 구워 먹기도 하며 펜션놀이를 했다. 그러면서 매일 논현동에서 양수리까지 차를 몰아 맹렬하게 출퇴근했다. 휘발유를 길에 뿌리고 사는 기분, 주말마다 파티비용이 과했고 잦은 음주가무로 체력도 축나는 기분이 자주 들었다.


작은 텃밭

텃밭의 식물들은 퇴비를 좀 준다고 물을 잘 준다고 자라지 않는다. 우리가 마트에서 파는 것 같은 작물들은 다 유전자 변형이다. 순진하게 시장에서 모종을 사서 배양토와 비료를 뿌려대도 시장에서 파는 모양의 작물은 열리지 않는다.


샤오미 아이오티

뜻밖의 아이오티를 많이 활용했다. 퇴근 후 마당에 도착해서 어두운 숲을 헤치고 들어가는 느낌을 느끼지 않으려면 외부조명을 계속 켜두거나 타이머를 설치해야 하는데 샤오미 전구를 휴대폰과 연동시켜서 집에 도착하기 전 휴대폰으로 미리 불을 켰다. 아이오티는 시골에서 더 필요한 기술이었다.


꽤 쾌적했던 격리생활

정말 집에 있는 게 그렇게 답답해?라는 말을 했었다. 카페도 갈 수 없고, 책방도 갈 수 없고 아크 앤 북의 의자들 교보문고의 책을 읽을 수 있는 의자들이 사건현장처럼 플라스틱 선으로 바리케이드가 쳐있던 시절이었다. 집에 있는 것이 그렇게 고립된 느낌인 걸까 공감이 안될 정도로 집에 있을 때면 마당에서 책도 읽고 차도 마시고 격리가 그렇게 어렵지 않은 시절을 보냈다.

이렇게 나열하고 보니 아무 일도 안 하면 아무 일도 안 일어났겠는데 여러 일을 해서 별기억이 다 남아있구나 싶다. 집을 상대(?)하면서 가장 많은 시간과 활동을 벌인 2년이었다. 결국 지네의 잦은 출몰과 결국 서울에서 밖에 할 수 없는 직장으로 인해 자연 속의 집에 완패한 기분으로 서울행을 결정했다. 이사를 결심하던 시기 가장 많이 하던 생각이 서울의 신축 원룸에서 살고 싶다. 였으니 정장 입고 괜찮다며 등산에 따라나섰다가 스타킹에 빵 꾸나고 구두굽은 다 부러져서 호되게 당하고 집에 돌아오는 모양새와 비슷했다.

우리는 서울행을 준비했다.


각종 곤충과 새와 동물들을 성가시고 불편하게 만드는 생물들로 치부해 버리면서 정작 그것들과 격리하지  못하는 기술로 어줍지 않은 집을 지어서 살겠다고 설쳤으니 인간이 만들어낸 기술들이 얼마나 불완전 한지 연속적으로 체험하던 시절이었다.


이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자주 카톡을 주고받던 집주인분은 아내에게 이혼을 당했고 집을 빼앗겼다는 속사정까지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것저것 집에 대한 조언을 주던 집주인분의 장모님께서 우리의 이사와 집정리를 도와주셨는데 그 구역의 엄청난 집장사였다. 이 분을 표현할 수 있는 말이 집장사 밖에 없다는 것이 안타까운데 땅을 가지고 집을 지어서 세를 주는 그 일대의 전원주택들의 원작자(?)였고 그분은 말씀만 하고 별다른 행동은 안 하시지만 많은 일을 이뤄내는 분이었다.


여러 집 중의 한집이라 그동안 사위가 관리해서 신경을 못썼다며 세입자들이 자꾸 바뀌어서 관리가 더 안되었다며 집과 데크를 수리해 주고 주변 조경을 정리해 주며 우리를 아쉬워하셨는데 우리는 이미 시동을 걸고 서울로 향하고 있었다.

잘살아라 지네들, 최대한 혐오스럽지 않게 그려보았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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