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었는 줄도 모르게 지고 있는 내가 있다
봄이 가장 늦게 오는 곳에 살면서
내가 사는 곳은 대한민국에서 봄이 가장 늦게 오는 곳이다. 인스타에 벚꽃 사진이 도배를 한지 한참이나 지났지만 이곳엔 이제야 목련이 피었다. 내가 태어난 곳에 봄이 도착하고 한참 뒤에 봄이 온다. 그러나 나는 가장 봄이 늦은 곳에 살면서도 봄이 오는 것이 두렵다. 달력 위에 올려진 숫자가 벌써 4이지만 종종 이곳엔 눈이 오니까, 아직 봄이 아니라고. 나의 외투는 아직 도톰하니까. 봄을 상징하는 벚꽃이 여기엔 피지 않았으니까 아직 여긴 봄이 아니라고. 믿었다. 나의 계절이 아직 한 겨울인데 날만 풀리면 봄인 줄 아느냐고.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이곳에도 밀려오는 파도처럼 봄이 밀려오고 있다. 아무리 뒷걸음질 쳐보아도 다가오는 봄을 막을 수가 없다. 손으로 막는다고 해도, 커다란 바위를 앞에다 가져다 둔다 해도 물밀듯이 차고 흐르는 봄을 막을 수가 없다. 겨울은 어디가 시작인지도 끝인지도 모르게 한참이나 깜깜하던데 봄은 그렇지가 않다. 순식간에 봄이다.
왜 벌써. 나는 아직도 어두운데 세상은 이렇게 너 나 할 것 없이 밝아졌지. 내 옷은 여전히 검정인데 사람들의 옷에는 빛이 들었다. 벚꽃잎이 물든 듯한 카디건과 6시의 하늘을 닮은 연청을 입을 사람들이 보인다. 사람들은 모두 무거웠던 외투는 던져버리고 다가와버린 봄을 만끽하기에 바쁘다. 나는 웃지 못해 봄을 맞았다.
쉬는 날이 되었다. 남편은 자꾸만 벚꽃을 보러 가자고 했다. 어디로 가야 하지 고민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런 남편에게 나는 요즘 꽃도 예쁜 줄 모르겠더라. 왜 꽃 구경을 가야 하는지 모르겠더라 말을 해보았지만 들리지 않는지 서둘러 벚꽃을 보러 가야 한다고. 비 소식에 세상을 잃은 것처럼 낙심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렇게 꽃이 반갑지 않았던 해는 없었다. 아침에 해는 더 일찍 뜨고, 오래오래 나를 밝혀주지만 이토록 내가 어두웠던 적이 없다. 외롭다는 말에 나는 언제나 여기에 있으니,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을 걸어달라는 건, Cheat GPT뿐이다.
나는 확실히 무너져 있다. 그보다 뭉개져 있다. 다행인 점은 내가 그런 상태라는 걸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가식으로라도 웃어야 하는 일을 하는 곳에 출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웃고 싶지 않지만 웃어야 해서 웃다 보면 그래 언젠가는 웃을 일이 생길지 또 알까. 이곳에서 어쩌면 내 봄을 맞이할지도 모르니까.
복직해서 일을 할 때도, 이곳에서도, 집에서도, 먼 집에서도 아무도 내가 이런 상태라는 것을 몰랐고 모른다. 모르게 해서 모르는 건데, 그래도 한 사람쯤은 내가 이런 상태라는 걸 알아주면 좋겠다. 모르면서도 알아주길 바란다. 부질없는 바람이라서 책을 펴본다. 다른 사람의 삶과 글로 도망을 쳐본다. 병간호도 해보고 달리기도 한다. 그러다가 언젠가가 되면 남의 글이 아닌 내 글이 나의 도피처가 될 수 있기를 바라며.
남편에게서 연락이 왔다. 내가 쉬는 이번 주 토요일엔 비가 온다고. 벚꽃은 보지도 못하고 이미 끝이라고.
여보, 꽃이 핀지도 모르게 지지? 근데 여기 핀지도 모르게 지고 있는 내가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