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나의 계절은 봄
비 예보가 있었다. 분명 오늘은 우리가 가려고 했던 공원에 벚꽃이 만발할 텐데. 어제저녁 남편은 감기가 왔는지 목이 아프다고 했고 나와 아이들도 아직 감기약을 끊지 못했다. 우리는 식사 후 내가 쉬는 내일의 일정 이야기를 나누었다. 미술관에 예약을 해두었는데, 벚꽃이 필 예정이니까 취소하고 꽃을 보러 가야 하나? 그런데 비가 온다고 했는데. 나는 그에게 말했다. 내일 아침에 하다가 콧물이 나면 바로 병원에 가는 거야. 그리고 비가 오지 않으면 벚꽃을 보러 가고, 비가 오면 미술관에 가자.
하다가 잠든 내 곁을 파고들었다. 엄마, 엄마랑 있고 싶어. 엄마 좋아, 하며. 우주는 어젯밤 부서진 장난감을 들고 왔다. 고쳐달라며. 잠이 덜 깬 내가 ‘내일 아침’에 ‘조금’을 덧붙였더니, 오늘 아침에 해주기로 했는데, 하며 울음을 보였다. 우주의 눈앞이 흐려지자 밝았던 아침의 하늘도 차츰 어두워졌다. 나는 일어나 부서진 장난감을 고쳐주고 아침을 만들러 부엌으로 갔다. 간단하게 간장 계란밥을 먹자고 했는데, 양배추 간장 계란밥을 먹고 싶다는 말에 양배추 손질을 하기 시작했다. 오이 샐러드까지 만들면서 조금 늦은 아침 식사를 했다. 우주의 눈물은 걷혔지만, 하늘은 더 어두워졌다. 하다는 콧물이 났고 우주는 기침을 했다. 남편은 목이 칼칼하다고 했다. 병원 진료를 기다리며 남편은 미술관을 취소하고 우리는 곧바로 벚꽃이 피었을 공원으로 향했다.
후득 후드득. 빗방울이 차창을 두드렸다. 어떻게 할래. 내가 오는데 기어이 꽃구경을 갈 테야?라고 묻는 것처럼. 아무 말 없이 운전을 계속하는 우리를 계속 두드렸다. 점점 세차게. 주차장에 차를 세우니, 사람들은 공원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었고 마침 만 차였던 주차장에 첫 번째 빈자리가 생겼다. 그 빈자리는 우리의 차지가 되었다.
얼마 전, 당근에서 새로 장만한 유모차에 잠이 든 하다를 태우고, 우산 세 개만 챙겼다. 남편은 유모차를 밀고 모자를 뒤집어썼고 나와 우주도 모자를 뒤집어쓰고 우산을 들었다. 지하철역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공원에서는 서둘러 꽃구경을 마친 위너들이, 그리고 역과 주차장에서는 쏟아지는 비를 어찌할 바 없이 길을 나서는 우리와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슬픈 사람이지만, 우주 손을 잡고 있으면 마음이 말랑해지고 또 따뜻해진다. 나는, 꽃이 예뻐 보이지 않지만 너에게 올해의 꽃구경을 뺐고 싶지 않아서 마음먹고 나온 날에, 비가 쏟아진다. 얄궂은 하늘을 한 번 째려보려다 빗방울만 맞았다. 우주는 속상해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뭐라도 달래주고 싶어서 우주가 좋아하는 핫도그를 하나 샀다. 내가 먹을 옥수수도 하나 샀다. 우리는 우산 세 개와 핫도그 한 개와 구운 옥수수 한 개를 들고 걸었다.
우주는 옥수수 맛을 보더니, 자기도 옥수수를 살걸, 하고 말했다. 다음번엔 옥수수 세 개를 사서 지금은 잠이 든 하나와 같이 먹고 싶다고. 우리는 넷이지만 셋처럼 비 오는 꽃구경을 했다. 핫도그에 집중하느라 꽃은 보지도 못하는 줄 알았던 우주가 엄마 너무 아름다워요, 하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을 하는 벚꽃잎처럼 물든 우주의 입술이 더 아름답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비가 점점 거세지고 하얀 운동화가 까만 바짓단에서 흐른 검정 염료에 겨울빛으로 젖어갔다. 다리도 무겁고 운동화도 무거웠다. 비 오는 날에 꽃구경이라니, 정말 하기 힘든 경험이다,라고 남편이 말했다. 나는 그를 돌아보며, 아마도 올해 벚꽃은 절대로 잊을 수 없을 거야, 하고 말했다. 그는 비 오는 날에 벚꽃을 보러 와서?,라고 물었고 나는 응.이라고 답했다.
평소에는 작은 얼룩 예민한 그와 비라면 질색하는 내가 새 운동화 세 개가 젖어가도 울상을 짓지 않았다. 세찬 비 끝에 매점을 발견하고 들어가는데, 우주는 우산을 접더니 말했다.
“어묵 주세요.”
남편은 비어있는 파라솔을 찾아 자리를 잡았다. 그 축축한 몇 뼘의 천막이 만들어주는 그늘 아래 비를 피해 섰다. 우리는 비를 잔뜩 맞은 의자에 내내 비를 막아준 우산 세 개를 뉘어 놓고 어묵을 나누어 먹었다. 3천 원이 3명의 몸에 골고루 퍼졌다. 덜도 아니고 더도 아닌 딱 적당하게 퍼진 어묵을 후후 베어 물며 달아나 버리는 겨울의 끝자락을 왕 하고 베어 물었다.
온몸에 퍼진 어묵 국물의 온기 덕일까. 힘껏 깨물어 달아나 버린 겨울의 시기심의 난 자리 덕일까. 날은 퍽 온화해졌고 비도 오락가락하며 세기를 줄여나갔다. 이윽고 깨어난 하다가 유모차의 방수 덮개의 구멍에 빼꼼 고개를 내밀어 나를 찾았다. 바지가 젖었다고. 이 녀석만큼은 온전한 줄 알았더니. 우린 모두 젖어버렸다. 우산 아래서도, 유모차의 방수커버 안에서도.
어릴 땐, 세상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줄 알았고, 조금 더 크니 마음대로는 못하지만 비 정도는 피할 수 있는 건 줄 알았다. 지금은 세상은 원래 이런 모양이라 피할 수도 달아날 수도 없다는 걸 안다. 비가 오면 때로는 젖게 된다는 것을 안다. 결국 맞아야 끝이 난다. 비가 오는 날에 우리 가족은 우산 세 개와 유모차 방수커버 하나로 벚꽃 구경을 했다. 길을 가는 누구 하나 성을 내지 않고 대신에 누군가가 ‘운치’ 있다며 말했다. 사는 건, 이렇게 운치 있는 것이었다.
엄마의 세상에 비가 오고 천둥 번개가 치면 아이의 세상에도 같은 일이 벌어진다. 아이들의 세상에 내 세상이 들이칠까 겁이 났다. 나는 비가 내려도 너는 꽃피우는 세상이기를. 너의 계절을 지켜주고 싶었다. 그렇면 피할 수 없다면 이 또한 즐기는 모습이라도 보여주자는 마음으로 나서봤다. 그랬더니, 세상이 주는 대로 주어진 대로 받았더니 뜻밖의 것들을 느끼게 된다.
나는 한 겨울이어도 너는 봄이어라 봄이어라 했다. 벚꽃 잎을 묻으면 벚꽃 잎이 더 많이 나냐, 하는 벚꽃 잎 같은 물음에 꽃잎을 쥔 하얀 손가락에 나는 어찌할 바 없이 봄이 되었다. 비가 와도 바람이 불어도 나는 이미 봄인 것을. 나는 이제야 알았다. 그래서 너의 눈에, 가슴이 봄이 들어찼다는 것을 알았다.
비가 왔다. 우리의 젖은 봄이었다.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젖은 벚꽃 놀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