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칼 호수에 닿으려 잠시 내린 이르쿠츠크
매일 밤 생각한다. 씻겨주는 기계가 있었으면. 장나라의 스윗 드림 속 기계는 왜 현실에 없는 걸까? 이런 생각을 늘 했던 내가 처음으로 샤워라는 행위를 감사하다 느낀 것은, 시베리아 횡단열차에서 내린 후 이르쿠츠크의 한 호스텔에서였다. 물을 맞는 게 이렇게 행복할 수 있을까? 샤워하면서 벅찬 감정을 느껴보고 싶다면 시베리아 횡단열차 타는 것을 적극 추천한다. 너무나 당연한 일상의 행위가 큰 행복이 될 수 있다.
덜컹거리지 않는 침대에 머리 붙이고 자는 것도 감격스러웠다. 흔들리지 않는 땅에 발을 붙이고 편안히 걸을 수 있다는 사실도 감격이었다. 시베리아 횡단열차는 이런 당연한 것들이 당연하지 않은 곳이었다. 목적지까지 가는 시간 동안 기차는 계속해서 흔들렸다. 횡단열차는 그저 수 십 명의 사람들이 긴 시간 동안 하나의 공간을 이용하는 기이한 경험을 제공하는 '이동수단'이니,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이 당연할 수밖에.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을 만끽하는 것도 잠시, 리스트 비얀카로 향하는 미니 버스에 몸을 실어야 했다. 우리의 목적은 단 하나, 바이칼 호수를 만나는 것. 횡단열차에서 찰나의 순간동안 마주했지만, 머나먼 곳에 있는 바이칼 호수의 진짜 모습이 어떠한 지 궁금했다. 아쉬웠던 것은 상상 속 겨울의 바이칼 호수를 볼 수 없다는 것. 행복했던 것은, 바다 같은 호수를 보고 진심으로 감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르쿠츠크로 돌아가는 버스, 내 옆에 자리하신 할아버지가 앙카라강, 스톰 샤먼을 설명해 주셨다. 바이칼 호수가 있는 리스트 비얀카가 앙카라강과 무슨 강이 만나는 곳이며 이곳이 실제로 바이칼 호수가 아니라는 설명을 '한 것 같다'. 절반도 알아듣지 못하는데, 열심히 설명하신다. 알아들을 수 없음에 아쉽고, 함께 떠들 수 없음에 아쉬웠다.
어느 나라의 시장에 가나 느껴지는 그 정신없는 기운은 정겹다. 이르쿠츠크 중앙시장이 유독 기억에 남은 이유는 상인들의 무자비한 러시아어 폭격과 그와 반대되는 해사로운 미소 때문이다. 가장 동네의 모습을 잘 나타내는 공간이 포근하니, 이곳에 대한 기억이 좋게 남을 수밖에.
러시아 사람들의 환대만 받은 겁도 없는 두 동양인 소녀는 아주 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호스텔로 돌아갔다. 호스텔 주인 할아버지께 혼이 났다. 짐짓 화난 표정으로 왜 이리 늦었냐고 말씀을 하시고, 끝까지 따라 나오시며 택시를 타는 것이 맞는지, 이것 저것 확인해주셨다. 먼 타지에서, 전혀 인종도 다른 이의 걱정 품에 한아름 안고, 두 번째 횡단열차를 타러 떠났다.
러시아에 오기 전에는, 한 겨울의 벌판처럼 차가운 사람들만 가득한 곳을 상상했다. 도시의 모습은 조금 삭막하고 차가울지 언정, 이곳의 사람들은 다채롭고, 따뜻하다. 운이 좋게도 우리가 만난 사람들이 좋은 사람 이었던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