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이 정도야 신입 사원인 내가 해드릴 수 있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요구가 매일 이어지다 보니 대리님의 목소리만 들어도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일명 모니카 하. 우리 팀의 팀장님이시며, 우리끼리는 ‘하모니카’라 부른다. 나에게 업무를 배정해주실 때까지만 해도 천사 같은 분이셨다. 실제로 천주교를 다니시는 팀장님은 세례 명 또한 ‘미카엘’이었다.
어설픈 영어 실력으로 외국 고객들을 상대해야 하고, 매출과 직결된 업무를 배정받게 된 나에게 유학파 하모니카 팀장님은 내 어두운 회사 생활에 한줄기 빛 같은 존재였다.
내가 영어 이메일, 참조 넣는 방법, 파일 공유 방법 등을 물어보면 그녀는 환한 미소와 함께 친절히 알려주었다. 하지만, 팀장님도 나만큼 많은 질문들을 나에게 쏟아부었다. 회사 앞 한의원/치과 점심시간이 언제인지, 홍대 쪽에 미술관이 있냐라든지, 회사 앞 꽃 집 2군데 가운데 더 좋은 곳이 어딘지, 기름 값이 더 싼 곳이 어디인지, 편의점에서 복사해주는지, 유명한 레스토랑의 예약 방법이라든지, 유럽여행을 갈 건데 괜찮은 항공사가 어디인지…
이런 질문에 성심성의껏 대답하는 나도 이상하다. 열심히 답변을 찾아서 알려주면 어김없이 이런 인사가 돌아온다.
“감사요.”
이런 의미 없는 인사가 거슬리는 것이, 그렇게 받아들이는 내가 나도 모르는 새 ‘젊은 꼰대’가 되어가는가 싶기도 하다.
팀 회식 일정이 정해진 날이었다. 팀원들이 사는 동네가 각자 다르기에 공평하게 중간 지점에서 회식을 하기로 했다. 그렇게 정해진 회식 장소인 이태원은 공교롭게도 하모니카 팀장님의 동네였다. 팀장님은 자신이 태어나 쭉 살아온 동네라 호들갑을 떨며 본인이 회식 장소를 정하겠다고 말했다. 내 두 귀로 똑똑히 들었다. 그런데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연우씨~’
이번에는 사내 메신저로 내 이름을 불렀다.
‘네, 팀장님’
그녀는 5시 45분에 내 이름을 불렀다.
‘이태원 회식 장소 7군데만 서치 해서 인기순으로 정렬해서 메일로 보내주세요~ 대표 메뉴, 가격 포함해서요.’
그녀의 당황스러운 행동에 잠깐 넋을 놓았다…. 이제 와서 나한테 회식 장소를 알아보라고…
‘네…’
단답으로 대답했다.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반항이었다…
“감사요.”
어김없이 영혼 없는 감사 인사만이 돌아왔다.
아니다 다를까 하모니카 팀장님은 오후 6시가 되자마자 팀 메신저에 자기가 열심히 정리한 듯 내가 정리한 리스트를 올렸다. 팀원들은 너무 마음에 든다며 칭찬을 했고, 그녀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해맑게 웃으며 좋아했다.
"역시… 팀장님 한 수 배웁니다."
나는 먼발치에서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기만 했다.
[사진 & 이미지 출처] MinUK, HA @ha_r_u_247 / 김유인, @studio_yooso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