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더 이상 안 슬프다
기록을 마무리하면서 2년간의 이야기라고 했지만, 글을 쓴 연도대로 모아보자니 2021년의 글이 대부분이다. 2019년 하반기에 졸업을 한 나는 잠시 미국으로의 유학을 준비하다가 공채 시즌이 시작할 무렵 유학을 포기하고 서류를 돌렸다.
적성검사를 공부하고 자소서를 쓰면서 19년을 마무리했다. 그 당시 나는 취업에 대한 정보나 지식이 없었다. 학교 취업 상담센터에도 여기저기 기웃거리면서 영화과 태를 벗기는 데에 시간을 썼던 것 같다. 10월쯤엔 브런치 작가가 되어 글쓰기도 시작했다. 그 당시의 글을 읽어보자니 평소의 나보다 한 톤 띄워서 이것저것 재잘거리고 있는 어색한 내가 읽힌다. 도무지 못 보겠어서 몇 줄 지웠다.
그때는 천진함이 없으면 한없이 가라앉을 것 같은 위태로운 시기였나 싶다. 그래서인지 창작을 이어나가는 방법으로 글을 쓰겠다고 말해두고는 금세 시들해졌다.
생각보다는 괜찮은 현실에 적성만 조금 더 준비하면 되겠지 하고 2020년을 맞이했는데 코로나도 같이 덮쳐왔다. 위기감에 2020년엔 하고 싶은 것을 생각하지 말고 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해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허무맹랑한 생각들은 접어두자고.
사에는 '생각에게'라는 뜻이다. 생각할 사람 따로, 살아갈 사람 따로. 글을 끄적이는 일조차도 죄책감이 되던 시간, 그 시간에 사에라는 이름을 붙여주면 그나마 견딜만했다.
플랜을 F까지 세워 할 수 있는 것들은 다 해보기로 했다. 그 과정에서 참 획기적인 보기들까지도 나왔었다. 덕질을 잘 못하는 내가 엔터 시험을 본다고 했을 때 주변 사람들은 다들 놀랍다며 헛웃음을 지었다.
승무원과 외국계 회사 커뮤니케이션 부서, 스타트업 등등 정말 다양한 직군들을 돌아봤다. 2019에 시작한 글은 2020의 상반기를 건너뛰고 여름 즈음되어서야 다시 시작된다. 그 빈칸의 시간들은 내가 더 이상 창작을 이어나가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던 데에서 비롯한다.
2021은 F까지 모든 플랜이 무마되고 절망적으로 시작했다. 코로나도 나아지지 않았다. 기이한 2020을 벗어난 것에 다들 환호했지만 나는 2020이 쌓이고 찾아온 2021이 더욱더 두려웠다. 그 절망 속에서도 이 시리즈를 다시 잡기로 결심한 것은 뭔가를 만들고 싶어 하는 여전한 나를 발견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여전히 답이 없다. 하지만 더 이상 슬프지 않다.
이 글의 마지막을 은희경의 <새의 선물>에 수록된 해설에 담긴 글과 함께 닫고자 한다.
해설 3. 냉소하는 자도 속는다
악의 없는 무심함을 지닌 채 소설은 일러준다. 우리가 인생을 포기하지 않는 한 어떤 간계로도 고통과 슬픔을 피해 갈 수가 없다고.
만일 성장이 순수가 오욕이 되어 돌아오는 일들에 익숙해지고 어떤 일에도 상처 받지 않는 것이라고 믿는다면, 그 누구도 성장을 완료할 수 없다고. 살아 있는 한 어떤 비참함 뒤에도 또다시 찾아오는 희미한 희망으로부터 우리를 방어할 수 있는 전략은 없다고.
열심히 하는 것이 창피한 나는 모든 것을 냉소함으로써 나의 상처를 숨길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만드는 일을 좋아하지만 파생되어 돌아오는 상처가 더 빈번하기에 그 모든 과정을 냉소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 책의 해설을 빌려 나와 이 글을 읽을 누군가에 말하고자 한다.
우리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좋아하는 것을 냉소하는 것이 아니라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 뿐이라고. 그 단순한 일을 잊지 않고 해낼 수 있게 만드는 데에 이 기록들이 한 톨의 용기가 되어주길 간절히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