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워 우리에게 와 줘서
누군가를 일방적으로 사랑해 본 적 있으신가요?
저는 지금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우리 가족은 아내, 아들, 그리고 저.
이렇게 셋입니다.
눈치 빠르신 분들은 서열을 이미
짐작하셨을 겁니다.
반려동물을 원했던 우리는 강아지와 고양이 사이에서 고민을 거듭하다 결국
그나마 손이 덜 가는 고양이로 마음을 모았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습니다.
가족 모두 비염을 달고 살았던 것이죠.
그렇다고 포기할 아내가 아니었습니다.
“가족 모두 이비인후과로 집합!” 명령이 떨어졌고, 고양이 알레르기 검사를 받은 끝에
다행히 모두 음성 판정을 받았습니다.
그 순간부터 새로운 인연을 기다리며
설렘 속에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렇게 며칠 후, 아내와 아들이 작은 아이를 데려온다는 얘기를 근무 중에 들었어요.
설렘에 일이 손에 안 잡혔고 시계만 뚫어지게 봤습니다.
그렇게 더딘 시간을 견딘 후 불이 나게 집으로 향했고 현관문을 열며 물었습니다.
“고양이 어딨노?”
두 사람이 동시에 가리킨 곳은 찬장 밑이었습니다.
몸을 낮춰 들여다보니, 얼굴의 반을 차지하는 눈망울이 제 시선을 붙잡았습니다.
그 순간, 가슴에 그 아이가 내려앉았습니다.
몇 시간의 적응시간을 거친 후,
아이가 조심스럽게 다가와 제 팔에 머리를 부딪쳤습니다.
“넌 내 거야.” 그렇게 첫인사를 건네는 듯.
그때는 몰랐습니다.
제가 루이를 이토록 깊이 사랑하게 될 줄은,
그리고 제 서열이 가족 안에서 4등으로 내려앉게 될 줄은.
루이라는 이름에는 이런 사연이 있습니다.
아내는 첫째를 데려온 후, 언젠가 둘째도 맞이할 그림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첫째는 ‘루이’, 둘째는 ‘비뚱’,
합치면 ‘루이비뚱’.
명품에 별 관심이 없는 그녀지만,
아이들이 명품 같은 삶을 살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었을까요.
그렇게 루이는, 루이가 되었습니다.
루이의 특징은 분명합니다.
“나는 되고, 너는 안 된다!!”
브리티시숏헤어 혈통 덕분인지 도도함은 남달랐습니다.
제가 살짝 쓰다듬으면 곧바로 경계의 신호가 시작됩니다.
꼬리부터 기분 나쁨을 표시하며 루이의 인내심은 3초를 넘기지 못하고 몸을 일으켜 자리를 뜹니다.
그러면서도 제가 침대에 누워있으면 가끔 먼저 다가와 머리와 등을 기대곤 합니다.
그러나 거기까지.
제가 좋아서 만지는 순간, 그 아인 다시 멀어집니다.
그래서 저는 팔다리가 저려 올 때까지 움직이지 않은 채, 잠시나마 머물러 주는 온기를 붙잡습니다.
그렇게 해야만 조금 더 오래, 그의 체온을 느낄 수 있으니까요.
다섯 해가 지났지만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루이는 되고, 우리는 안 됩니다.
이 일방적인 사랑 속에서 저는
관계와 인생을 봅니다.
루이는 제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저 역시 그의 언어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사람의 언어로 다가가고,
그 아이는 고양이의 방식으로 반응합니다.
닿을 듯 닿지 않는 평행선처럼 말이죠.
인간관계도 다르지 않습니다.
애초에 마음의 언어가 다른 사람들이 있습니다.
맞고 틀린 문제가 아니라,
그저 다를 뿐입니다.
저에게도 그런 친구가 두 명 있어요.
때로는 “이렇게 생각이 다를 수가 있나” 놀라기도 하지만, 이내 깨닫습니다.
나는 내 언어를, 친구는 그의 언어를 쓰고 있다는 것을.
지금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인정하고, 맞는 부분은 함께 즐기며 지냅니다.
그렇게 적당한 거리를 두며 오히려 더 깊은 우정을 나누게 되었습니다.
오늘도 저는 그 아이를 바라보며
말없이 미소 지어요.
사랑은 움켜쥐는 것이 아니라,
다름을 인정하고 적당한 거리에서
서로를 바라볼 때 피어난다는 것을.
루이가 제게 알려준 사랑입니다.
그렇게 또 삶을 배워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