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버터
벌떡 일어났다. 화장실이 너무 가고 싶었는데, 가고 싶으면 가면 될 것을. 해야 하는 것들과 하고 싶은 것들을 유예하고 화장실까지 유예한 채 어느새 늦은 오후가 되었다. 왜 그렇게 참고, 참고, 또 참았을까. 모든 것을, 왜 그렇게 참았을까.
계속 다른 사람들의 글을 읽고 생각을 하고 상상을 했다. 쉽게 일어날 수 없었다. 나는 어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자신의 미로에 갇혀 쉽게 빠져나오지 못한다. 그걸 편집증이라고 해야 할지, 강박증이라고 해야 할지. 폐쇄적인 고집인지, 창조적인 집념인지. 자신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기에 이름을 붙이지도 못했다.
그것은 어떤 대상의 구석구석까지 찾아보고 남김없이 느끼고 이해하고, 그러고 나서도 눈을 감고 잠시 음미하고, 그 모든 일들이 끝나면 비로소 발가락이나 콧구멍 따위를 꼬물락 거리다가 부스스 일어나기 시작하는 식의 형태로 드러난다. 이번에도 그런 기제에 갇혀 있었다. 오랫동안 무언가를 계속 찾고 끝까지 모으고 이해하고 수납하려 했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것은 강한 호기심 탓이다. 호기심이 있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집착이 되어 자신을 어떤 한계에 가두기도 하고 억압하기도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살아있다는 증거다. 호기심이 강한 것도, 그 호기심에 갇혀 스스로를 억압하고 자유롭지 못하게 되는 것도 살아있어서 가능한 일들이다. 살아있는 사람만 만들어낼 수 있는 무늬들이다. 모두 아름다운 삶의 빛깔들이다.
그냥. 바깥의 겨울 낮 햇빛이나 날씨의 기운이 너무 밝고 시원했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하고 웃고 책을 파헤치고 마시고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일어나 창을 보니 겨울 낮의 해가 따뜻하고 아름다웠다. 아주 밝지도 않고, 은근하고 고혹적인 빛이었다. 구름 벽을 통과하고, 또다시 풀 뭉치 무늬 글라스 창을 뚫고 들어와 작은 방을 비추는 겨울 햇빛은 너무도 그윽하게 아름다워, 차라리 여름 햇빛보다 눈부셨다. 글루미 그레이와 브라이트 블루가 포개어진 색깔이었다. 절망과 희망이 뒤섞인, 정말 적당한 겨울 햇빛이었다.
음울한 먹먹함과 밝은 꿈을 셰이크 해서 내미는 윈터 밀크셰이크 같았다. 창조주만 만들 수 있는 빛깔이었다. 사람이 만들 수 있는 것이라고 도무지 생각할 수가 없는. 강박적인 당위와 사소한 옳고 그름과 오해와 두려움에 일순간 사로잡혀 절망하고는 하는 나는. 그렇게 비좁고 알량한 상상력에 기대어 꿈꾸는 인간은. 영원히 그려낼 수도, 떠올릴 수도 없는.
일어나면서 창가에 비친 그 빛을 보았을 때 혼잣말이 불쑥 튀어나왔다. ‘일단 버터부터 굽자.’ <일단 프라이팬을 가열하고 버터를 두르고 식빵을 굽자>라고 해야 했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모든 것의 시작은 어쨌든 버터였다. 나에게는 버터와 올리브 식빵과 흰 우유와 달걀이 있었다. 다시 무언가 시작할 수 있는 힘이 나기 시작했다.
그래. 일단 버터부터 굽자. 다짜고짜 일단 버터 한 숟갈을 프라이팬에 패대기쳐 버리자. 빵을 굽자. 달걀 프라이를 하자. 입에 넣자. 올리브 식빵과 함께 차갑고 깨끗한 우유를 마시자. 겨울 햇빛처럼 차갑고 깨끗하게 살자. 그윽하고 고혹적인 겨울 빛처럼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