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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사비나 Apr 06. 2023

”선생님, 우리 아이는 ADHD 진단을 받았습니다. “

눈물겨운 나의 고백, 그날의 통화

  학교에서 일하는 난 수업에 자신 있는 교사다. 가르치는 일이 뿌듯하고 아이들의 열정을 영양분 삼아 내 열정을 다해 사는 사람이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즐겁게 아이들 발표 수업을 돕고 있었다.


휴대폰 진동이 지잉 울렸다.

세모의 담임선생님이시다.


3월에 상담을 했는데 전화가?

불길하다.


수업이 끝나고 바로 전화를 드렸다.

“어머님, 세모가 다른 친구들에게 위험한 행동을 했어요.”

“너무 죄송합니다. 선생님. 집에서 지도하겠습니다.”

“이런 일이 사실 예전에도 몇 번 있었는데 자제가 될 것 같은데 잘 되지 않아서요.”


‘아, 한 번이 아니구나.’


단번에 이해했다. 나 역시 우리 반 꾸러기가 실수를 해도 수화기를 들기까지 10번 정도는 직접 지도하고 내 선에서 해결해 왔기 때문이다. 교사가 학부모에게 전화를 하기까지 수많은 고뇌를 거친다.


‘아, 전화하면 상황을 이해하실까? 괜히 아이를 미워한다던지 자기 아이 편만 들어서 관계만 나빠지면 어쩌지?‘
“에잇, 그냥 전화하지 말자.”

하며 수화기를 내려놓은 적이 많다.


하지만 결국 전화를 하셨다는 건,

이미 선생님 선에서 많은 해결을 해오셨고,

세모에 대한 다른 아이들이나 학부모들의 민원을 직접 선생님 선에서 묻어두셨다는 의미다.

작년엔 이런 전화를 받아본 적이 없었다.

담임 선생님께서 직접 지도하시며 신입생이라는 이유로 많이 용인해 주셨던 것도 있고, 앞으로 잘해나갈 거라는 무한한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이 있으셨을 것이다.

그래, 1학년이니까.


그런데 이제 2학년이다. 중학생들을 만나는 내 입장에선 참 애기들인데도 내 자식은 의젓하길 기대한다. 항상 말하지만 나도 별 수 없는 학부모다.


또래들은 이미 우리 세모를 말썽꾸러기로 인식하고 있다. 아마도 선생님께 잘 보이고 싶은 아이들은 세모와 얘기도 나누지 않는 것 같았다.  초1 때에는 어찌어찌 친구들과 잘 어울렸는데 이제는 사고를 치니 친구들이 싫어하는 듯했다.


‘어쩌지?

이제 담임선생님마저 힘들어하시는구나.

약을 증량을 해야겠구나...’


부작용은 부작용대로 견디면서 약효는 없는 상황이니 아이는 부정적인 행동을 본인도 모르게 저지르고 자책하는 일이 잦아진 것이다. 아이의 사회생활을 위해서 이젠 증량을 해야 할 때가 온 것 같았다.


그런데 증량을 하면 아이가 예민해지거나 폭력성을 보일 수도 있다. 작년에 메디키넷 복용량을 증가했다가 분노가 폭발하는 세모를 보며 증량을 포기했었다. 아이가 이제 몸무게가 좀 늘었으니 증량을 해서 적응을 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교사로서 담임교사에게 말하지 못했던 이유는 브런치북에서도 털어놓은 적이 있다. 그런데 이제 담임선생님께 털어놓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맞는 약과 용량을 찾으려면 학교에서 어떤지 피드백을 받아야만 알 수 있는데... 내가 아이의 곁에 오전 내내 교실에 함께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증량 시 어떤 부작용이 있고, 효과가 만족스러운지 교실에서의 모습을 알려면 어쩔 수 없이 담임 선생님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했다.


남편에게 먼저 동의를 구하니 더 기다려보자고 한다. 담임교사가 아는 순간 이 동네 사람들이 다 알게 되는 거라고, 비밀은 기대도 하지 말라고 한다.


그렇다.

말하는 순간 비밀이 아닌 거라고...

신중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우리 세모 담임선생님.

전화 두 번만에 우리 아이의 성장을 도와주실 분이라는 것을 확실히 느꼈다. 내가 딱 그 한 문장만 말하면 우리 세모를 잘 이해해주실 것 같았다. 그 느낌만 믿고, 이젠 우리도 노력하고 있다고 그러니 선생님께 염치 불구하고 아이의 ADHD 극복기를 도와주시길 바란다고 말씀드리고 싶었다.


내게 학부모가 아이의 ADHD를 고백했던 적이 있다. 이젠 알겠다. 학부모가 아이의 ADHD 진단을 고백했다면 그건 나에게 엄청난 신뢰감을 느꼈기 때문이란 것을. 쉽게 고백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그 정도로 우리 ADHD를 키우는 부모들에겐 아이의 진단명을 입 밖에 꺼낸다는 것이 참 어려운 것이었다.


“선생님,
세모는 ADHD 진단을 받았습니다.”


잠시동안 말씀이 없으셨다.

이 한 문장을 말하는데 내 마음 깊숙이 무거운 바위로 눌러뒀던 것을 들어내느라 그랬을까.

눈물에 목소리가 떨렸다.


아직도 눈물이 난다고?


진단받은 지 1년, 약물 복용 1년의 시간이다.

그런데 우리 아이의 진단명을 말할 때 또 울다니.

아직도 나올 눈물이 남았었나 보다.


담임선생님께 난 평생 고백하지 않을 계획이었다. 처음엔 아이를 날카롭고 따가운 선입견에서 지키기 위해서 말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젠 우리 아이의 매일의 삶을 생각해서 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선생님, 저도 교직에 있어요. 이런 아이들이 얼마나 힘든지 알지만 키워보니 ADHD라고 해서 다 TV에 나오는 아이들 같지도 않고, 약물이 만병통치약도 아니더라고요. 이렇게 노력하며 저희가 약을 먹여봐도 사건, 사고는 일어나더라고요. 저희가 이 과정까지 참 오기가 어려웠어요. 이해해 달라는 부탁의 전화는 아니에요. 교사로서 선생님이 이런 아이 한 명 데리고 있는 것이 1년이 얼마나 버거우실지 너무 잘 알거든요.


저희가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5월 초에 다음 진료가 있으니 증량을 시작하겠습니다. 증량을 하면 아이가 예민해져서 잘 울 수도 있고 친구한테도 선생님께도 짜증을 낼 수가 있습니다. 이때 부작용이 어떤지, 효과가 어떤지 피드백을 주시면 너무 감사하겠습니다. 저희가 세모에게 맞는 약을 찾는 데 도와주세요. 점점 더 잘 해내고 싶어요. 희망을 갖고 노력하고 싶어요. “


  준비한 것도 아닌데 우리 세모를 위해서, 세모가 부디 더 이상 마음 다치지 않도록 모든 말에 의미를 담아 모든 단어에 내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 선생님께 말씀드렸다.


“어머님, 잘 말하셨어요. 이제 세모의 행동이 이해가 되는 것들이 많네요. 제가 잘 지켜보겠습니다.”


“선생님, 저도 제 아이가 ADHD이기 전에는 선입견 있었어요. 이 선입견이 무서워서 제가 말씀을 못 드렸었습니다. 낙인찍히는 것도 제가 제일 두려운 것입니다. 세모의 모든 행동이 ADHD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말아 주세요. ADHD 때문인 것도 있고, 그냥 또래 아이의 행동인 것도 있어요. 부족한 아이를 맡기기만 하여 죄송합니다.“


그리고 염치 불구하고 꼭...
비밀 유지를 부탁드립니다.


선생님과의 통화가 끝났다.

마지막까지 나의 눈물은 멈출 생각이 없었다. 같은 교사에게 이런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내가 울보 학부모라니.

좀 전까지 신나게 우리 학생들과 내 카리스마를 펼치며 수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선생님과의 전화 한 통에 ADHD 학부모로 전락했다. 전락이라는 말이 참 미안하지만 말 그대로 그때의 느낌을 설명할 길이 없다.


통화가 끝나고 화장실에 들어 붉어진 눈을 정리하고 교무실로 돌아가 털썩 앉았다.



후련하다.

알 수 없는 후련함이었다.

이렇게 또 나에겐 한 명의 제일 든든한 지지자가 생겼다. 지금은 나와 남편이 없어도 세모의 특성을 제대로 알게 된 지지자가 매일 함께 해주신다는 마음으로... 그렇게 믿고 있다.


선생님,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말처럼
저에겐 세모의 ADHD 진단이
무력감만 가득했던 날들에
실낱같은 희망이었습니다.
아이를 알고 도와줄 방법을 알게 됐고
아주 큰 힘을 얻었거든요.

이제야
아이와 저의 비밀을 고백합니다.
부족한 아이를 이렇게 맡기기만 하는
부족한 부모입니다.
아이의 학교 생활을 위해 애써주심에
항상 감사드립니다.

저도 제 자리에서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을 도우며
덕을 쌓는 마음으로
교직에서 제 몫을 다 하겠습니다.


*사진 출처- 크라우드 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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