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비아 Novi Sad 당일치기 여행 1
난 세르비아에서 가장 가보고 싶은 도시가
노비사드(Novi sad)였다.
노비사드는 19세기 오스만제국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지배를 받던,
식민 치하 세르비아에서
언어를 비롯한 전반적 민족 문화 진흥 센터였던
Matica srpska[마티차 스릅스카]
가 세워졌던 도시였고,
1954년 구 유고슬라비아의 인문학 지식인들,
즉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작가와 언어학자들이 모여,
당시 유고슬라비아의 공식어였던
세르보-크로아티아어의 규범을 합의했던 곳이라,
언어학 전공자인 나에게는
수도인 베오그라드보다 더 의미가 있는 곳이다.
그래서 자그레브 체류 6개월째 되던
2018년 7월 초
구 유고슬라비아 여행 계획을 짜면서,
자그레브에서 노비사드까지 가는
교통편을 검색해봤는데,
지도상으로는 자그레브-베오그라드보다
더 가까워보이는 자그레브-노비사드 간엔
교통편도 많지 않고,
또 시간도 더 오래 걸린다.
검색해보니 숙소도
세르비아 수도인 베오그라드에 더 많고,
여행 정보도 베오그라드가 더 많다.
그래서 계획을 바꿔서
베오그라드에서 짐을 풀고,
노비사드에는 당일치기로 잠깐 다녀오기로 했다.
novi[노비]는 거의 모든 슬라브어에서
'새로운'이라는 의미의 형용사고,
러시아어, 폴란드어, 체코어에서
sad[사드]는 '정원(garden)'이라,
노비사드(Novi sad)는
당연히
"새로운 정원"이라는 의미인 줄 알았는데 아니다.
그러고보니,
세르비아어로 sad[사드]는 "지금"이라는 뜻이고,
"정원"은 vrt[브르트]로,
세르비아어에서 sad는 "정원"이 아니다.
"노비사드"는 "새로운 식물"이라는 의미로,
라틴어로는 Neoplanta라 불렸다고 한다.
여러 슬라브어에서 "심다"라는 의미의 동사에
-sad-가 들어있고,
세르비아어에서도 posaditi이니까,
쌩뚱맞은 어원은 아니다.
예전에 노비사드가 불가리아어로는
Мала лоза(작은 포도나무)라 불렸다는데,
실제로 노비사드 와인은 중요한 특산품이다.
아마 이곳의 포도나무가 특별한 종이라서,
"새로운 식물"이란 뜻의 이름을 가지게 됐나보다.
노비사드는 아래 지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세르비아 북부
보이보디나(Vojvodina)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현재 보이보디나 지역은
서쪽으로 크로아티아,
동쪽으로 루마니아,
북쪽으로 헝가리와 접하고 있는데,
이런 지리적 위치 때문에,
11-12세기에는 헝가리 왕국의 일부였고,
세르비아 중부의 베오그라드가
약 300년간 터키의 지배하에 있던 반면,
북부의 노비사드는
다른 지역보다 좀 늦게 터키의 침략을 당하고,
약 150년의 터키 지배 후에
다시 합스부르그 및 헝가리의 일부가 되어,
세르비아의 다른 지역보다
오스만제국의 지배를 짧게 받았다.
그래서 노비사드는
베오그라드와는 좀 다른 느낌일거라 예상했는데,
역시나 좀 달랐다.
세르비아 근현대사에서
문화적으로 매우 중요한 도시인데도,
지리적, 역사적 이유로
여러 문화가 섞여 있어,
겉모습이 베오그라드보다 덜 세르비아적이다.
베오그라드(Beograd)에서 노비사드까지는
버스로 1시간 20분-1시간 40분 걸리고,
왕복 약 700디나르(약 7,000원)의 비용이 든다.
편도표 두 장보다 왕복표가 조금 더 싸다.
기차로는 1시간 30분 정도 걸리고,
비용은 편도 270-390 디나르다.
소요 시간도, 비용도 비슷하지만,
베오그라드 새 기차역이 시내에서 너무 멀어서,
난 기차 시간은 알아보지도 않고,
처음부터 버스터미널로 갔다.
그리고 베오그라드 체류 둘째날
아침 9시 15분 출발 버스를 탔는데,
10시 27분에 노비사드에 도착했다.
1시간 10분밖에 안 걸린거다.
난 왕복표를 예매했는데,
왕복표임에도 불구하고,
돌아오는 버스 시간은 미리 정할 수 없어서,
베오그라드 버스터미널 매표소 직원이
"노비사드-베오그라드" 버스는
노비사드에 가서 예약하라고 했다.
그래서 노비사드에 도착하자마자,
저녁 6시 30분 쯤 출발하는,
베오그라드 행 버스를 예약했다.
베오그라드에서 왕복표 살 때
버스비는 이미 다 지불했는데,
돌아가는 표 예약할 때
예약비를 따로 또 지불해야 한다.
난 60디나르(약 600원)을 더 냈다.
큰 돈은 아니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시스템이 복잡하고,
그래서 좀 번거롭고 귀찮다.
예약비를 내면
또 뭔가 새로운 표를 하나 더 준다.
이미 베오그라드에서 산 왕복표가 있는데도 말이다.
크로아티아처럼 세르비아도
종이 쪽지 무지 좋아한다.
아마 이게 유고슬라비아의 전통인가보다.
저녁에 노비사드에서 베오그라드로 가는 버스는
거의 만석이었다.
내가 노비사드에서 따로 받은 표엔
좌석번호가 있었는데,
옆엣 사람들 표를 흘끗 보니 좌석번호가 없다.
그래서 아무데나 앉아서 간다.
내가 따로 냈던 예약비가
지정석 예약비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미리 예약하길 잘한 거 같다.
노비사드의 기차역과 버스터미널은
바로 옆에 붙어 있다.
아래 사진의 오른쪽은 기차역,
왼쪽은 버스터미널 입구다.
위에서 링크한
지지지난 포스트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세르비아에선 시외버스 표 살 때 주는
동전 크기만한 토큰 같은 걸
지하철 입구 같은 곳에 집어 넣어야
버스승강장에 입장할 수 있다.
하지만 승강장 내부는
여느 버스터미널과 다르지 않다.
노비사드 버스터미널과 기차역에서
중심가는 좀 떨어져 있다.
지나가는 행인에게
중심가까지 가는데 얼마나 걸리냐고 물으니,
20분 걸린다고 했는데,
난 두리번두리번 구경하며 가서 그런지
30분 좀 넘게 걸린 것 같다.
베오그라드는 아래 지도처럼 생겼는데,
지도 왼쪽 상단에 기차역과 버스터미널이 있고,
주요 관광지는 지도 중간에
다리 근처 번호 많이 붙어 있는 곳이다.
관광객이 노비사드의 관광지까지 갈려면,
남북으로 길게 뻗은
오슬로보데니야 대로(Bulevar oslobođenja),
즉 "광복로"를 따라 15-20분 걷다가
동쪽으로 좌회전해서
5-10분을 좀 더 걸어가면 된다.
오슬로보데니야 대로(Bulevar oslobođenja)를
걷다보면,
노비사드 시장이 나온다.
채소,과일, 식료품 뿐 아니라,
옷, 신발, 그릇 등도 파는 커다란 시장이다.
여기저기 주전부리 거리도 많이 팔고,
사람들이 북적북적거려 생기가 넘친다.
언뜻 보니 물건 값이 베오그라드보다 더 싼 것 같다.
베오그라드 물가도 저렴한 편인데 말이다.
이제 노비사드 구시가로 가기 위해선
예브레이스카 길(ulica jevrejska)에서
좌회전해야 한다.
빠른 속도로 차가 쌩쌩 달리는 대로인데도,
길 양옆으로 키큰 나무가 높이 서 있어서
걷기 기분 좋은 길이다.
Jevrejin[예브레인]이 "유대인"이라는 의미인데,
아니나 다를까,
이 길에 유대교 회당이 있다.
노비사드 유대교 회당(Novi Sad Synagogue, Novosadska sinagoga) [지도 12번] 자리에는
18세기부터 유대교 회당이 있었다는데,
지금 건물은 1909년에 지어져,
이제 100년이 조금 넘은 건축이다.
다른 유럽도시들과 마찬가지로
2차세계대전 중 많은 유대인이 수용소로 끌려가고,
또 그 후엔 이스라엘로 많이 이주해,
현재 노비사드엔 유대인들이 많지 않고,
따라서 이 건물은 본래의 종교적 용도보다,
콘서트 등 문화적 용도로 사용된다고 한다.
그래서 회당으로 들어가는 정원의 문은
열려 있었는데,
회당 자체는 닫혀 있었다.
이제 여기서 조금 더 동쪽으로 걸어가면,
본격적으로 구시가가 시작된다.
나는 구시가로 들어가기 전 우체국에 잠깐 들렀다.
그 전날 베오그라드 시내에서
언어학, 문학 관련 세르비아어 책 6-7권을 샀는데,
아직 8-9일은 남은 여행 중에
그걸 계속 들고다닐 수 없으니,
한국에 국제우편으로 부칠려고,
근데 이날 아침 베오그라드 우체국 갈 시간이 없어,
그 책을 모두 노비사드로 들고 갔다.
우체국에서 한국으로 책을 보내고 싶다며,
가장 싼 걸 물으니,
배편으로 한달 걸린다고 해서,
급하지 않으니 그걸로 해달라고 하고,
신용카드로 3000디나르(약 3만원)정도 결제했다.
발송인 주소를 크로아티아로 하면 안된다고 해서,
베오그라드 숙소 주소로 썼는데,
나중에 반송되면 어떡하냐며 투덜대던
우체국 직원의 짜증 섞인 우려와 달리,
다행히 3주 후, 나보다 이틀 늦게
무사히 책이 한국에 도착했다.
세르비아 우체국의 일처리는 빠르고,
제대로 잘 도착한 걸 보면 정확하기도 한 것 같다.
내가 배편을 선택해서인지도 모르지만,
비용도 저렴한 편이다.
구시가 입구에서 가장 처음 만나는 건물은
세르비아 국립극장(Srpsko narodno pozorište, Serbian National Theatre)[지도 23번]이다.
비록 현재 건물 자체는
1981년에 건설된 현대적 건축이지만,
노비사드는 합스부르그와 헝가리의 영향 하에서
다른 세르비아 지역보다 일찍
서구 문물을 받아들였던 탓에,
1861년 세르비아에서 가장 먼저
노비사드에 국립극장이 생겼고,
그래서 노비사드 국립극장일 뿐 아니라,
세르비아 극장과 공연계의 살아있는 역사다.
매년 5월말 스테리야 연극제(Sterijino pozorje)를
한다고 하는데,
아쉽게도 연극제를 보기엔 난 너무 늦게 갔다.
그리고 2018년 7월 둘째주엔 Exit라는
대중음악 페스티벌이 있었는데,
아쉽게도 그걸 보기엔 또 너무 일찍 갔다.
Exit는 2000년 반정부시위에서 시작됐는데,
당시 시위에 세르비아 뮤지션들이 참여하면서
뮤직 페스티벌처럼 됐고,
그 이후 매해 계속하게 된 행사에
외국 뮤지션들도 참여하면서
현재는 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페스티벌 중
하나로 성장했다.
내가 노비사드에 갔던 2018년 7월 초엔
도시 곳곳에 Exit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노비사드 구시가에 가장 눈에 띄는 건축은
아무래도 성 마리아 성당(Crkva imena Marijinog, Name of Mary Church)[지도 2번]일 것이다.
성 마리아 성당은 슬로보다 광장(Trg Slobode),
즉 "자유 광장" 동쪽에 자리잡고 있는데,
외관은 전형적인 가톨릭 고딕성당처럼 생겼지만,
난 그냥 세르비아 정교회성당이거니 했다.
세르비아는 정교도가 대다수인데다가,
그 전날 본 베오그라드 구시가의
미카엘 대성당도 뾰족뾰족 첨탑이
가톨릭 성당같이 생겼지만,
세르비아 정교회 대성당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성 마리아 성당에 들어가서 보니
가톨릭 성당이었다.
16세기 초부터 17세기 후반까지
오스만제국의 일부이던 노비사드는
터키와의 전투에서 오스트리아가 승리하면서
17세기 말 합스부르그 제국의 일부가 되는데,
18세기 초 그 "그리스도교의 승리"를 기념하며
이 성당을 건축했다.
하지만 그후 역사적 소용돌이 속에서
이 성당이 크게 손상되자,
1894년 헝가리 건축가가
지금의 신고딕 양식으로 새로 건축했다.
사실 노비사드엔
가톨릭 대성당(cathedral)이 없고,
이건 그냥 일반 성당인데도,
노비사드 사람들은 흔히
katedrala[카테드랄라]라 부른단다.
그 규모가 어마어마해서
웬지 그렇게 불러야 할 것 같이 생겼고,
사실 나도 당연히 "대성당"이겠거니 생각했었다.
세르비아는 정교도가 대다수인 나라인데도,
노비사드 중심부에 있는 가장 큰 종교건축이
가톨릭 성당인 게 좀 의아했는데,
합스부르그 제국 지배 초기엔
두나브 강 건너 노비사드 성 안에서는
정교도의 거주를 금지할 정도로
엄격한 종교적 제약을 가했다고 한다.
그런 역사를 알고 보면
노비사드 구시가에 오래된 정교회 성당이 있는 게
오히려 더 이상한 건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이렇게 구시가 가장 중심부에 있는
도시의 이정표가 되는 건축이
종교적으로 그리고 건축적으로도,
세르비아적이지 않은 걸 보니,
세르비아 민족주의의 중심이었던,
그래서 가장 세르비아적일 것이라 생각했던
노비사드가
이상하게도 세르비아적이지 않은 느낌이다.
성 마리아 성당 앞에는
널따란 슬로보다 광장이 있고,
그 광장을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둘러싸고 있다.
이 광장의 건축들은 거의 다
합스부르그 및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지배 시절
건설된 것으로 보이는데,
강철 인간 궁전 혹은
아이언맨 궁전(Palata "gvozdeni čovek")도
1908-1909년 오스트리아 분리파 양식으로 건설된
당시 건축으로,
건물 위의 갑옷을 입은 기사는
20세기 초 노비사드의 중요한 상징이었다고 한다.
슬로보다 광장 서쪽의
보이보디나 호텔과 다른 낮은 건물들도 고풍스럽다.
성 마리아 성당 맞은 편,
슬로보다 광장 서쪽에는
시청(City hall, Градска кућа)[지도1번]이 있다.
1895년 역시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지배 시절 건설된
신 르네상스 양식 건물로
건물 곳곳에 작고 섬세한 장식이 많이 있다.
시청 앞엔 노비사드 출신 정치인이자,
노비사드 시장이었던 이반 메슈트로비치(Иван Мештровић)의 동상이 서 있다.
성 마리아 성당 북쪽으로 가면
아담하고 깔끔한 광장이 숨어 있고,
그 옆엔 카페와 레스토랑이,
그 뒤쪽엔 구시가 다른 쪽으로 통하는
미로같은 좁은 길이 연결되어 있다.
성 마리아 성당 동쪽으로는
고풍스러운 유럽식 건물들이 줄지어선
즈마이 요비나(Zmaj Jovina) 길이 있다.
요반 즈마이(Jovan Zmaj)는
노비사드 출신의 19세기 세르비아 시인으로,
이 길에 그의 생가가 있어 그의 이름이 붙었으며,
이 길 동쪽 끝엔 그의 동상도 서 있다.
하지만 즈마이 요비나 길은
시적인 것과 좀 많이 거리가 멀어보이는,
카페, 레스토랑, 상점이 늘어선
매우 상업적인 길이다.
내가 갔을 땐 Exit 축제 전주라,
그걸 광고하는 플래카드 때문에
하늘이 잘 안 보일 지경이었다.
이건 그 길에 있는 어떤 건물 지붕 위에 새겨진
정교회 성인인 게오르기의 성화다.
노비사드엔
곳곳에 이런 아기자기한 디테일이 있어서,
구석구석 찬찬히 잘 둘러보면 더 재미있다.
그리고 그 길의 끝에선
세르비아 정교회 주교 궁(Vladičanski dvor)[지도 6번]이 나온다.
원래 있던 주교궁이 폭탄을 맞아,
1901년 새로 건축했다고 한다.
주교궁 옆으로는
성 게오르기 정교 대성당(Saborni hram Svetog velikomučenika Georgija, Saint George's Cathedral)[지도 7번]이 있다.
18세기 바로크 양식으로 처음 지었다가,
폭탄을 맞아 붕괴되어,
1905년에 다시 건설된 이 정교 성당은
베오그라드에 있는
미카엘 정교 대성당과 매우 흡사하다.
독특한 지붕과 시계탑 때문에,
이 근방에서는 어디에서나 눈에 띤다.
게오르기 성당에서 서쪽으로 계속 걸어가면,
러시아 정교회 성당인
성 니콜라이 성당(Nikolajevska crkva, Church of St. Nicholas)[지도 8번]이 나타난다.
러시아 정교회 성당 특유의
작은 금빛 쿠폴이 성당 한쪽에서 반짝인다.
세르비아 정교회 성당은 아니지만,
1730년에 건설된,
노비사드에서 가장 오래된 정교 성당이다.
그리고 알버트 아인슈타인과
세르비아인 부인인 밀레바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가
이 성당에서 세례를 받았다고 한다.
니콜라이 성당 건너편엔 세르비아 마티차(Matica Srpska)[지도 4번]가 있다.
마티차(matica)는 세르보-크로아티아어로
원래 "여왕벌"이나 "여왕개미"라는 뜻인데,
"고향"이나 "근원",
또는 "중심"을 의미하기도 한다.
19세기 여러 제국들의 지배 하의
중부유럽의 슬라브국가에서 민족주의가 싹틀 때,
자신들의 고유한 언어와 문화를 진흥하는,
특히 언어의 표준 규범을 연구하는 기관을
[마티차]라고 불렀다.
19세기 세르비아뿐 아니라,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슬로바키아, 불가리아, 폴란드, 우크라이나에도 matica가 있었고,
체코에는 matice[마티체]가 있었다.
그 중 가장 먼저 생긴 게
1826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시작된,
세르비아 마티차(Matica srpska)고,
1864년 노비사드로 옮겨왔다.
즉 노비사드엔 세르비아 최초이자,
슬라브 최초이자,
세계 최초의 마티차가 자리잡고 있다.
세르비아 마티차 건물엔
현재 학습교재 연구소가 있고,
서점도 있다.
그렇지 않아도 이날 오전
우체국에서 책을 한국으로 부쳤는데,
서점에 들어가면 또 책을 잔뜩 사게 될 것 같아,
그러면 주말인 그 다음날과 그 다다음날
계속 그 책을 들고 다녀야할 것 같아서,
그리고 책 둘러보는 시간에 차라리
노비사드 시내를 좀더 둘러보자 싶기도 해서,
서점에는 들어가지 않기로 했다.
대신 나에게는 의미 있는 장소인 그 곳에서
기념 셀카를 찍었다.
이렇게 세르비아 문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곳이지만,
노비사드는 세르비아적이기보다는 다문화적이다.
우선 종교적으로도 그런데,
적어도 내가 둘러본 구시가에 있는 종교 건축 중에
세르비아 정교회 성당이 과반수를 넘지 않는다.
그게 뭔가 중요한가 싶겠지만,
구 유고슬라비아에서 종교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1990년대 구 유고연방이 붕괴될 때,
외모도 크게 다르지 않고, 언어도 매우 비슷한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세르비아인을 구별한 건
무엇보다도 종교였다.
크로아티아인은 대다수가 가톨릭 신자,
보스니아인은 대다수가 이슬람 신자,
세르비아인은 대다수가 동방정교 신자였다.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에서 만난 청년이,
자기를 "세르비아인"이라고 소개했는데,
사라예보 토박이처럼 보이는 그가
자신을 "세르비아인"이라고 여기는 가장 큰 이유는
그가 정교도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동방정교는 개신교나 가톨릭과 달리,
나라마다 각각의 동방정교가 있어서,
러시아 정교가 다르고, 그리스 정교가 또 다르다.
그런데 수백년간 형성되고 또 그렇게 고착되었을
노비사드 구시가에는
정교 성당만 있는 게 아닐 뿐더러,
그나마 정교성당도
세르비아 정교성당만 있는 게 아니다.
"자유 광장"의 성 마리아 성당은 가톨릭 성당,
니콜라이 성당은 "러시아" 정교 성당이었고,
세르비아 마티차와 니콜라이 정교회 성당 남쪽의
성 베드로, 바오로 성당(Rusinska grkokatolička crkva Svetih apostola Petra i Pavla, Greek Catholic Church of St. Peter and Paul)[지도 13번]은 동방정교식으로 전례를 하는 가톨릭, 즉 그리스 가톨릭 성당이다.
1820-1847년에 건설되었고,
신자는 주로
소수 슬라브 민족인 루테니아(루신)인들로
18세기에 노비사드로 이주했다고 한다.
세르비아어는 남슬라브어에 속하니까,
동슬라브어에 속하는 루테니아어를 쓰는
이들은 아마 우크라이나쪽에서 이주해왔을거다.
예전엔 책에서 루테니아인들이
우크라이나뿐 아니라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등에도 거주한다는 걸
읽는 적이 있는데,
여기서 루테니아인들의 흔적을 만날 줄 몰랐다.
그 남서쪽에는 슬로바키아 복음교회(Slovačka evangelistička crkva, Slovak-Evangelical church) [사진 14번]가 보인다.
1886년 건축된 바로크와 고전주의 양식 교회다.
그리고 그 교회 옆 노비사드 극장(Novi Sad Theater, Novosadsko pozorište)[지도 24번] 바깥엔 극장 이름이 세르비아어뿐 아니라 헝가리어 Újvidéki Színház로 병기되어 있다.
이 극장은 1974년에 문을 연
보이보디나 지방 유일의
헝가리어 극장이기 때문이다.
세르비아 도시인 노비사드엔
세르비아인이 대다수지만,
다른 민족도 20% 정도 거주하고,
총인구의 4%는 헝가리인, 2%는 슬로바키아인이다.
즉 노비사드는 종교뿐 아니라
민족과 언어의 측면에서도 매우 다문화적이다.
(뒤 포스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