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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윽고 슬픈 독서가 Dec 24. 2018

청소를 마치고, 리스본에 도착했습니다

리스본 여행 에세이 #Prologue. 호시우 광장




여름이 지나자 해가 길어졌다.

그것을 눈치 챈것은 계절이 한참 지난 시점이었다.

지난 계절에는 겨우 창틀에 닿던 해가 이제는 패브릭 소파의 팔걸이에 닿는다.

그 덕에 반팔을 입고 소파에 앉아 팔을 기대면, 맥주를 마셨을 때의 귓불처럼 온도가 오르는 것이 느껴진다.

그러니 이제 소파에서 일어나야 한다.

나는 아직 반팔차림이었으니까.

계절은 이미 가을이었으니까.


몸을 일으키고자 하는 의지.

그것은 알람 시계라는 원심력. 그리고 하루 치 가계부의 구심력이 주는 것이다.

문제는 자전보다 한 바퀴를 더 도는 하루를 쌓다 보면 현기증에 몸이 무거워진다는 사실이다.

겨우 무거운 몸을 일으키자 소파에 그간 쌓인 먼지가 일었다.

나를 따라 소파에 누워있던 고양이, 로맹과 에밀도 일어났다.

그러자 두꺼운 먼지 사이로 고양이 털이 섞여 날렸다.

여름이었다면 보이지 않았을 그것이 가을 햇빛에는 유독 진하게 비쳤다.


청소를 해야겠다 결심한 것은 그때였다.

이대로라면 안될 것 같았다.

여름은 지나갔고 햇빛은 길어졌다.

나는 겨우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고, 먼지와 고양이 털은 두눈을 흐렸다.

그러니 청소를 해야 했다.

쌓임은 타인을, 또 가끔은 자신을 무너뜨리는 것이 속성이었다.

그러니 청소를 해야 했다.


앉아 있는 모든 것을 일으켜 세우는 것.

청소의 시작은 그것이었다.

책장은 작은 거실에 겨우 몸을 비집고 들어가 있었다. 그 속의 책등과 책머리는 먼지의 소파였다.

츠타야 서점에서 사 온 ‘책 먼지떨이’를 들고 한 번에 그들을 일으켜 세웠다.

그것이 실수였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단숨에 일어선 먼지는 억지로 깨운 것에 항의라도 하듯 코와 입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기침으로 사과를 대신하고는 서둘러 마스크를 가져왔다.

그리고는 무자비한 기상의 외침.

책장의 먼지는 공격할 대상을 잃은 채 허공으로 떠올랐다.

지금부터는 시간 싸움이었다.

그들이 다시 자리를 잡기 전에 먼지를 샅샅이 털어야 했다.

패브릭 소파의 쿠션을 들어 ‘팡팡’ 두드리고, 거실 테이블의 서랍도 잊지 않고 찔러야 했다.

그렇게 앉아 있는 모든 이들을 뮤직 페스티벌의 관객처럼 일으켜 세워야 했다.

그리고 다음 할 일은 볼륨을 높이는 것이었다.

‘POWER’

그들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함성을 지를 수 있도록 청소기 버튼을 누른다.

그러자 강렬한 사운드에 홀린 듯 청소기 헤드로 먼지가 모여든다.

잔뜩 힘을 준 버튼에서 손을 놓자 구겨진 공기가 퍼지면서 귓가에 얕은 이명이 들렸다.


이제 좀 가벼워졌을까?

한쪽씩 팔을 돌리고 다리도 괜히 들었다 놓는다.

“어쩌면 가능할지도 몰라.”

힘껏 점프도 해본다.

겨우 그 정도로 숨이 찬다.

청소를 막 끝낸 숨처럼, 짧아진 햇빛이 발끝에 걸린다.

더는 먼지도 고양이 털도 비치지 않는다.

하지만 이명은 여전히 울리고 있었고 나는 아직 반팔차림이었다.


텅 빈 맥주병의 라벨처럼 속이 울렁거렸다

“먼지 탓이겠지.”

물을 한 잔 마시면 진정될까 싶어 냉장고를 열었다.

물은 없었다. 가뜩이나 온도가 떨어진 살갗에 냉기가 닿자, 피부가 돋아 오르는 것 같았다.

생수를 사러 가야 한다. 간 김에 밤 온도를 맞춰줄 맥주도 사 오면 좋을 것이다.

여름내 눅눅해진 옷장 문을 연다.

청소를 해야 한다는 생각은 옷장 문을 닫을 때까지만 유효하다.

되는대로 바람막이 하나를 꺼내 입는다.  

그리곤 작은 가방을 들쳐멘 뒤, 현관문을 열었다.


그러자,

리스본 호시우 광장⁠의 햇볕이 쏟아졌다.




글 | 최동민
제작 | Studio 1.9.8.4
메일 | groscalin8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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