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를 간직하는 일
죽고 싶다.
잘 붙잡고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또 발밑이 아득한 기분이다. 집까지 운전해오는 길을 평소보다 두배 걸려서 왔다. 옆자리에 남편이 앉아있어서 남편을 죽게 만들기 싫으니까 정신줄 붙잡고 울면서 왔다.
몇 시간을 울기만 해서 기운이 하나도 없다.
남편에게 죽고 싶다고 얘기했는데 너무 놀라서 진정시키고 혼자 나와서 죽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다.
모욕감이 너무 깊은데 상대를 죽여버리고 싶다는 기분은 안 들고 그냥 내가 죽어버리고 싶다고 생각하는 건 뭘까.
그냥 이 세상에서 내 존재가 삭제됐으면 좋겠다. 왜 나는 삭제 버튼 누르듯이 삭제되지 않는 걸까. 살아야겠단 이유를 생각해봤는데 누군가 내가 죽은 걸 보는 게 싫으니까 붙잡고 있어야지. 이게 충동적인 느낌이라는 건 아는데 이런 생각을 멈추지 못하는 내가 너무 밉다.
설 연휴 첫날을 마친 밤에 sns에 쓴 글이다. 최근엔 이런 극단적인 기분이 별로 들지 않았다. 하지만 그 날 저녁의 일은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는 게 멈추지 않아서 그 글을 남기고도 한참을 더 울다 잠에 들었다. 오늘은 조금 나아졌지만 문득문득 어제의 장면들이 떠올랐다. 그러다 브런치에 쓴 예전 글을 돌아보다가 내가 이전에 겪은 일들과 비슷한 점이 느껴져서 다시 이곳에 이번 일을 옮겨보려고 한다. 그때의 분노와 모멸감과 자살충동을 기억해야 나 자신을 지킬 수 있으니까.
나는 외가라는 표현을 좋아하지 않는다. 어째서 아빠의 원가족은 친가인데 엄마는 외가일까. 단어가 주는 거리감이 싫어서 나는 그런 말 대신 동네 이름으로 그 말을 대신하곤 했다. 예를 들어 운서동 할머니네 처럼. 하지만 여기서는 특정 지역을 이야기하고 싶지 않으니 외가라는 말로 대신하려고 한다.
결혼식 후, 결혼식에 참석한 외가 친척들을 본 적이 없어서 명절 첫날에 남편과 방문하기로 했다. 우리나라 가부장제를 잘 따르고 있는 외가의 풍습상 삼촌 가족들은 명절 첫날에는 외할머니댁에 모두 모여 명절을 지내는 걸 알았기 때문에. 그래서 삼촌 수대로 준비한 양주와 간단한 안주거리와 할머니와 사촌동생들의 용돈까지 모두 준비해서 늦은 오후에 외가 문턱을 넘었다.
나는 매우 싫어하지만 내 양가 친척 어른들은 매우 좋아하는 게 술자리 문화다. 한국의 술자리 문화가 대부분 그러하듯이 술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먹지 않는 사람도 심지어 먹는 사람들조차 과음을 하곤 한다. 특히 나이가 어리고 서열이 아래일수록 술을 원하는지의 여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그날도 그랬다. 그런 분위기를 미리 알고 있었고 어느 정도는 맞추자 생각했던 거여서 술은 남편이 마시기로 했다. 나는 다음날 아침 일찍 남편의 가족들을 방문하러 출발해야 하니 운전을 하야하니까 술을 안 마시기로.
모두가 취하지 않았을 땐 그나마 괜찮다. 자고 가라며 계속 술을 안 마시고 거절하는 나를 탓하는 것도 괜찮지 않았지만 괜찮은 척 넘겼다. 내 친척들 사이에서 앉지도 서지도 못하며 눈치 보는 남편을 재우는 것도 못할 짓이고, 다음날 일정이 틀어지는 것도 여기저기 피곤한 일이니까. 술자리가 길어지고 알코올 없이 맨 정신으로 심해지는 주사를 지켜보는 일은 매우 괴로웠다. 그래도 여기까진 내 결혼식을 시간 내어 방문해준 친척 어른들이라 생각하며 맞출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게 나를 향한 무례한 언사일 땐 참을 수 없었다. 내가 술자리에서 술을 거절하거나 2차 자리 옮기는 걸 거절한다고 내 ‘고집’을 꺾겠다며 내 인생이나 내 인격을 깎아내리는 발언을 하는 걸 삼촌이라는 이유로 참아야 할까? 나는 표정을 굳히고 “방금 그 말씀은 너무 기분이 나빠요.”라고 했다. 이럴 때 어른이 보이는 여러 가지 반응 중에서 삼촌은 가장 최악의 수를 선택했다. 지금부터 내가 “왜” 기분이 나쁜지에 대해 탐구하는 시간을 나의 동의와 상관없이 진행하며, 본인이 한 발언은 한 적이 없다고 발뺌하는 거였다.
나는 속으로 ‘오늘 이 자리는 끝이구나.’ 생각했다. 상대는 술에 취했고, 본인의 무례함을 수습할 생각이 없으며, 본인이 나보다 윗 항렬인 것을 무기로 이용했다. 그리고 사실 계속되는 폭언으로 내 이성도 반쯤 날아가버린 상태였다. 나는 여러 번 분명하게 지금 이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고 하더라도 술이 깬 다음에 하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주위를 돌아보니 다들 슬슬 피하며 상황이 없는 일인 척하고 있었다. 심지어 남편은 술에 잔뜩 취해 겁에 질린 사슴 같은 얼굴을 하며 얼어 있는 걸 발견한 순간 예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맞아 이거 굉장히 익숙한 상황이었지. 심지어 브런치에 비슷한 일을 두 번이나 쓴 적 있다. 아빠 때문에.
https://brunch.co.kr/@sae-on/39
https://brunch.co.kr/@sae-on/47
<모멸감에 대하여> 부분의 주변 친척들의 외면과 <내가 나를 지키려면> 부분의 아빠의 강압 및 가족들의 공포 반응이 어찌나 그날 상황과 똑같던지. 그땐 왜 극단적인 사고까지 치달았는지 몰랐는데 지난 브런치 글 읽다가 이해됐다. 트라우마 반응이었다.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집에 가기로 했다. 이 순간에 나를 지킬 건 나뿐이었다. 외할머니는 이 상황을 모르고 텔레비전 연속극을 시청 중이었다. 그 와중에 할머니에게 보이고 싶진 않아서 아무렇지 않은 척 인사를 했다. 할머니는 여상스럽게 “아이고 늦었는데 자고 가지.”하며 일어나 과일까지 챙겨주셨다.
그러나 바깥 상황은 아직이었나 보다. 내가 빨리 가자며 남편을 채근하자 남편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시간이 지체되고 그사이 삼촌은 내가 본인 말을 무시한다며 소리치기 시작했다. 뒤늦게 상황 파악한 다른 삼촌이 왔지만 갑자기 나는 흥분한 삼촌, 아니 이미 개놈이 된 개자식에게 밀쳐지며 폭언을 듣기 시작했다. 내가 대문을 나가면서도 멈추지 않고 몇 번의 폭언이나 몇 번의 밀침을 당했는지 생생하게 기억난다. 떠올리는 지금도 몸이 부들부들 떨릴 지경이니까.
할머니 앞에선 그러기 싫었는데. 좋게 온 자리에서 이러기 싫었는데. 꾹 참다가 나도 결국 터져버렸다.
“그 폭언 하나하나 다 기억할 거야!”
“내 몸에 손대지 마!! 내 몸에 손대지 말라고!!”
이렇게 개싸움이 나고 나서야 완전히 분리되고 나는 바닥에 앉아서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귓가에는 할머니의 “동네 사람들 다 소문나니까 그렇게 크게 울지 말어. 소리 좀 죽여.” 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서 일어나서 더 크게 울며 동네를 벗어났다.
그런 나를 따라서 남편, 숙모, 다른 삼촌 두 명이 왔다. 나는 온몸을 떨며 울면서도 그들이 하는 소리를 다 들었다. 술이 취해서 그랬다는 말, 저 삼촌이 미워도 가족이니까 용서하라는 말, 좋은 날 왔는데 다음에 다시 내 얼굴 못 볼까 봐 걱정된다는 말. 내가 듣기 싫어서 더 크게 울자 저 삼촌은 안 봐도 할머니는 보라는 말까지 했다.
내 차에 가는 길까지 숙모가 따라오셨다. 숙모는 어른들 중에서 유일하게 내게 정말 위로되는 말씀을 해주셨다. 저런 주사는 술자리마다 이루어졌으며 어른들이 어른답지 못하게 행동해서 대신 미안하다고. 오늘 와줘서 고맙고 좋았으니 다음에도 보고 싶고 차에서 진정이 되면 잘 도착했다고 문자 달라고. 내 개 같은 가족사 동안 사실 이런 위로는 처음이어서 정신이 나가 있는 와중에도 숙모를 꼭 꼭 끌어안았다.
그 이후는 처음에 적은 대로였다. 별수 없이 집에 가려면 내가 운전해야 했고 30분을 더 울다 지쳤을 때쯤 운전대를 잡았다. 겨우 집에 와서 죽는 방법은 뭐가 좋을까, 어떻게 죽어야 흔적도 안 남게 이 세상에서 삭제될 수 있을까 등등의 고민을 하며 울다가 지쳐 잠에 들었다.
다음날 시가에 갔다. 남편은 어제 보호해주지 못해 미안하다며 집에서 쉬자고 했지만 집에 있어봐야 죽은 생각밖에 더하겠나 싶었다. 한편으론 시가 명절은 처음이라 이렇게 와르르 무너진 정신으로 가는 게 걱정이었다. 그런데 내가 가부장제 명절을 지내며 인간으로서 존중받는 경험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모든 어른이 명절에 내가 온 것이 당연하지 않다고 이야기하고 낯선 곳에 온 나를 먼저 배려해주고 술 대신 식혜를 마시며 나를 ㅇㅇ씨라고 부르며 존대해주었다. 어제 내가 당한 상황에 대해 자책이 남아있었는데 온몸의 피가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이거 내 잘못이 아니었잖아.
기다가 이런 집에서 자란 남편이 그전날 외가에 가서 구한말 노비처럼 못 먹는 술 받아먹고 눈치 보고 있었던 게 너무 분했다. 내 친척들은 남편의 접대를 바라면서 남편에게 나에게 하던 것처럼 하대를 하고 싶어 난리였는데. 그곳에서 우리 부부는 서열 놀이 가장 끝자락에 있었고 시가에서의 우리 부부는 명절을 맞아 함께 자리를 한 사람들이었던 거다.
나는 이제 두 번은 없다. 이미 반복된 여러 일들로 알게 됐잖아. 아빠네 가족만 서열 놀이하고 부당한 일에 침묵하는 줄 알았더니 엄마네 가족도 마찬가지란 걸 이번에 잘 알게 됐을 뿐이다. 그리고 그걸 깨닫는 과정이 지독하게 아프고 끔찍했을 뿐. 이제 안 가. 그런 개 같은 서열 놀이나 역할놀이에 더 이상 나를 맞추고 싶지 않다. 나는 죽고 싶은 기분을 느끼고 싶지도 않고 나를 보호할 수 없는 공간에 나를 집어넣는 가학적인 행동도 하고 싶지 않다. 뭐 그 개놈이야 나를 쫓아내서 뿌듯한 마음이 들었을는지 성취감이 들었을는지 모르겠지만 부디 그렇게 하나 둘 쫓아내면서 성공적인 역할 수행에 정진하시기 바란다. 나는 내가 존중받을 수 있는 공간에서 안전하고 편안하게 살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