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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커다란 마당이 생겼다

슬기의 텃밭 사랑

by 새바람

내 인생의 첫 주택은 아니지만, 이전의 주택과 다른 경험이라면 새바람주택에는 커다란 마당이 있다는 거다. 나무와 여러 식물이 있지만, 난 마당이 생기면 텃밭을 만들고자 했다. 사실 나는 식물과는 연이 없는 건지, 예전에 조교를 하던 시절에도 꼼꼼한 가이드를 다 지켰음에도 불구하고 교수님의 귀한 식물을 제법 말려 죽이는 사람이었다. 분명 시키는 대로 다 해도 식물은 영 친해질 수 없는 것이었는데, 작물을 키우는 것은 무언가 달랐다.



텃밭이 처음은 아닙니다

군산에 내려와서 처음 무언 갈 키운 건 방울토마토였다. 어떤 마음이었는지 불현듯 다이소에서 방울토마토 키우기 키트를 샀고, 사무실 옥상에 화분을 두고 방울토마토를 키우기 시작했다. 분갈이도 하고 물도 주고 했지만 생각보다 신경을 많이 쓰지 않았음에도 무럭무럭 자라서 열매가 열렸다. 아니 근데 방울토마토에서 방울토마토 맛이 나는 것이다! 너무 당연한 것임에도 내가 키운 것에서 그 맛을 느낀다는 것이 너무 신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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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화분에서 시작해 점점 크게 넓혀갔다.


그렇게 시작된 호기심은 친구네 텃밭으로 옮겨갔다. 마당을 정리하면서 새롭게 텃밭을 만든 친구네 텃밭에 각종 식물을 심었다. (물론 남의 텃밭이다) 방울토마토를 통해 수확의 기쁨을 알게 돼 선지, 심은 작물들이 잘 있는지 자주 가보고 물도 주고 관심을 주게 되었고, 거침없이 무럭무럭 자라게 하는 자연의 무서움과 위대함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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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차게 심어서 수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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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운 무와 그 무로 담근 김치


상추는 먹는 속도보다 자라는 속도가 빨랐고, 단호박은 끝도 없이 늘어나며, 무는 생각보다 길게 자라지 않았다. 그 외에도 수많은 작물들을 계절별로 심고 수확하며, 친구들과 김치도 담가먹고, 요리를 해 먹었다. 수확했던 무 몇 개는 엄마한테 택배로 보내기도 했다.



처음에는 작게

이런 즐거움을 알아버렸으니, 새바람주택에서도 텃밭은 꼭 만들고 싶은 것이 되었다. 처음 이사 왔을 때도 이 집에는 텃밭이 있었다. 다만 너무 커다랗고 건물 철거를 방해하는 부분이 있어서 초기에 같이 철거했고, 새로운 텃밭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그간의 경험으로 텃밭은 너무 클 필요가 없었다. 자라는 속도가 빠르기에 한 가지 작물을 많이 심기보다는 여러 작물을 조금씩 심는 것이 관리도 편하고 다양하게 먹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마당 잔디밭 구역 한편에 동그랗게 텃밭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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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텃밭과 첫 수확물


첫 번째 텃밭은 빨간 벽돌을 엇갈려 텃밭 테두리를 만들고, 맨 아래에는 굵은 나뭇가지들을 놓고 텃밭용 흙을 가득 채워주었다. 1평보다는 작은 크기로 만들었고, 집에 찾아오는 동네고양이들이 작물들을 건드리거나 텃밭을 화장실로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고기 굽는 데 사용했던 철망을 연결해서 감싸주었다. 윗부분도 망사천으로 덮어주었는데, 철사로 테두리를 잡아서 열었다 닫았다를 잘할 수 있도록 뚜껑을 만들었다.

콘크리트 바닥 위에 흙을 채워 만든 작은 텃밭이었지만 텃밭으로써 잘 역할을 해주었지만, 더 다양한 작물을 키워보고 싶어서 크기를 키우기로 마음을 먹었다.



두 번째 텃밭은 쿠바식으로

두 번째로 텃밭을 만들 때는 크기를 좀 더 키우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기존처럼 벽돌로 만들기에는 벽돌도 많이 들고 고정을 해야 하는 부분에서 번거로운 부분이 많았다. 그럼 목재로 만들어야 할 텐데 어떤 모양이 좋을지 찾다가, ‘쿠바식 텃밭’을 알게 되었다.


‘쿠바식 텃밭’은 미국의 경제제재로 인해 자급자족을 위한 도시농업을 일환으로 만들어진 텃밭이라고 한다. 방부목이나 벽돌, 폐타이어 등의 재료로 토양의 유실을 최대한 적게 만들어서 손쉽게 채소와 작은 과일을 키울 수 있도록 만든 데서 유래가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필요한 재료들이 새롭게 구입해야 한다기보다 기존에 있던 것을 많이 활용하는 느낌이 들었다.


방부목과 각재로 텃밭의 틀을 만든다. 나는 데크를 만들기 위해 샀던 데크재를 이용해서 틀을 만들고, 자투리 각재로 보강을 해서 네모난 텃밭 틀을 만들었다. 그리고 종이 박스를 넓게 바닥이 덮일 정도로 깔아준다. 다음으로 그 위에는 나뭇가지들을 잔뜩 넣어준다. (종종 나무를 전지 해주면서 모아두었던 것을 활용했다.) 마지막으로 그 위에 흙을 채워 주면 쿠바식 텃밭이 완성된다.


이 형태의 텃밭을 선택하게 된 데엔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새바람주택 마당은 모두 콘크리트로 되어 있어서 작물을 심기 위해서는 별도의 흙과 공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고양이가 많이 오는 곳이기도 하고, 내가 작물을 관리하는 데 있어서 어느 정도 높이가 있는 것이 편할 것 같아서 쿠바식 형태가 가장 적합해 보였다. 쿠바식 외에는 커다란 화분을 이용하거나, 나무 팔레트를 이용해서 만드는 방식도 있었는데, 마당에 가장 어울리는 형태를 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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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가 늘 호시탐탐 노리는 텃밭


새로운 텃밭도 고양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에, 각재를 높게 세우고 망을 둘러주었다. 이전의 텃밭이 입구가 작아서 불편했던 것도 있고, 고추나 방울토마토처럼 높기 자라는 작물도 키우고 싶어서 높이를 높게 작업했고, 거대한 텃밭이 완성되었다. 경첩도 쓰고 문틀도 달아서 좀 더 멋들어진 형태를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구현이 잘 안 되어서 일단 이번 버전에서는 거대 망사천으로만 감싸주었다.



초보텃밭농부의 분투기

텃밭을 가꾼 지 1년 여쯤 되었다. 나름 계절에 맞춰 모종도 씨앗도 사고, 때가 되면 비료도 주며 매일 같이 텃밭의 성장을 지켜봤는데, 여전히 너무 어렵지만 내가 많이 해주는 것 없는데도, 흙과 물과 햇빛으로 자라는 작물들을 보면 늘 신기하다. 자연의 힘이란.


텃밭의 전성기는 여름

아무래도 모든 식물의 성장이 폭발하는 여름이 텃밭에서는 가장 화려하다. 그리고 뭐든 심어도 쑥쑥 잘 자란다. 이 시기 상추, 로메인, 버터헤드, 배추를 원 없이 먹었고, 의외로 깻잎이 잘 자랐다. 워낙 빠르게 자라다 보니 이런 쌈, 샐러드 채소류는 매일 같이 수확해야 너무 웃자라는 걸 막을 수 있었는데, 먹는 속도가 수확하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늘 채소가 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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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로 잘 자라던 오이, 열심히 키웠지만 하나 먹을 수 있었던 애플수박

오이도 심어봤는데, 높이높이 자라서 텃밭이 지붕의 망을 따라 줄기를 뻗어서 주렁주렁 오이가 끊임없이 열렸다. 잘하면 이 텃밭 하나를 오이로만 채울 수 있을 것 같은 정도로 엄청난 생명력을 자랑하며 많은 열매를 맺었다. 의외로 바질도 잘 자랐었는데, 아무래도 이 거대한 텃밭 속에서 어느 정도 햇빛을 피할 수 있었기 때문인 것 같았다. 덕분에 매일 신선한 바질을 원 없이 먹을 수 있었다.


모종 vs 씨앗

작물을 심는 데는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모종으로 심는 것과 씨앗부터 심는 것. 씨앗부터 심으려면 먼저 싹을 틔우고 어느 정도 자란 다음에 텃밭으로 옮겨 심어야 한다. 모든 씨앗이 다 발아가 되는 것은 아니라서 발아가 된 것들만 골라내서 심는 것이다. 씨앗은 다이소든 어디서든 쉽게 구할 수 있지만 성공하긴 너무 어려웠다. 발아가 잘 안 되기도 하고 텃밭에 옮긴 후에도 영 자라지 않는 것이 대부분 실패했던 것 같다. 씨앗에서 키울 때 가장 어려운 점은 속아내는 거다. 발아가 많이 되면 심을 만큼만 남겨놔야 하는데, 아까워서 전부 텃밭에 심고, 싹을 하나씩 잘 가르지 않으면 자라면서 식물이 엉켜서 결국 잘 성장하지 못한다. 방울토마토가 그랬는데, 발아된 싹을 뭉텅이로 대강 텃밭에 옮겼다가 하나도 제대로 자라지 못해서 실패했다.


모종.JPG 씨앗 발아의 가장 큰 적은 고양이 하지만 귀엽다.


모종은 어느 정도 자란 상태로 오기 때문에 텃밭에서 금방 자라는 걸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잘 옮겨 심고 나면 매일 같이 빠른 속도로 자라는 것을 볼 수 있다. 인근에 모종 파는 곳이 있다면 직접 살 수도 있고, 요즘엔 인터넷으로도 포장 잘해서 보내주기 때문에 씨앗보다는 좀 더 추천하게 된다.


올해는 꼭 먹어보리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패한 작물들이 있는데, 가지, 공심채, 루꼴라였다. 사실 왜 실패했는지는 잘 모르겠고, 너무 정글이 되어버린 텃밭에 심어서 관리가 잘 안 된 것 같기도 하다. 가지는 심지어 열매가 열린 채로 왔었는 데도, 제대로 자라지 못해서 먹지 못했다. 루꼴라는 도무지 살아남지 못했고, 공심채는 그래도 몇 번 먹긴 했지만, 잘 관리를 못해서 오래가진 못했다.

계절마다 제철 작물들이 있고, 때를 놓치면 모종을 구할 수 없기에 미리미리 파는 시기들을 확인해야 한다. 여름작물을 한차례 먹고 무와 배추를 심으려고 했는데 1-2주 게으름을 피우는 사이 생각보다 무가 짧게 나왔다가 사라졌다. 올해는 무가 안 나왔다고 하시기도 했는데 기후, 날씨 영향도 많이 받다 보니 해마다 모종도 나오는 것과 안 나오는 것들이 있는 것 같았다. 부지런해야 원하는 걸 먹을 수 있다.


IMG_0422.JPG 심지 않을 때도 텃밭을 관리해야 한다.


가을에 아무것도 심지 못해서 겨울의 텃밭은 쉬어가고 있다. 여름에 매일 같이 신선한 채소를 먹었던 것이 꿈같이 느껴질 정도인데, 올해는 좀 더 부지런하게 제철 작물들을 심어서 사계절을 풍성하게 만들어보고 싶다. 내게 텃밭은 내 애정과 노력의 대가를 얻는 경험이라기보다, 나는 크게 하는 게 없는데 왜 이렇게 잘 자라지, 왜 오이에서 오이맛이 나지 같은 경외감을 경험하는 것이 큰데, 올해도 자연이 어떤 놀라움을 보여줄지 너무 기대된다.



- 다음화 예고 -
마당도 인테리어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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