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N잡러가 되었다

흐르고흐르다 보니여기까지 와 버렸네

by 새별

나는 어쩌다 프리랜서(일명 N잡러)로 살고 있다.


대학 졸업할 때쯤 되면 대부분 진로 탐색이 끝나 자기 갈 길을 찾아간다고 하던데, 난 전혀 아니었다. 내 전공은 신방과라 과 친구들은 PD나 기자를 준비했다. 경영학과는 취업 준비하는 사람, 회계사 준비하는 사람, 공무원 준비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런저런 활동을 통해 내가 하고 싶은 일은 UX 기획이었다. 그렇지만 기획직은 신입을 잘 뽑지도 않을뿐더러 나는 디자인 전공자도 아니었다. 관련 경험을 계속 쌓아온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네이버 소프트웨어 멤버십 예비과정에 붙었을 땐 내 꿈에 가까이 갈 수 있을 줄 알았다.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프로그래밍 언어를 6개월 배웠는데, 개발은 정말 나의 적성이 아니라는 것을 단번에 알았다. 사실 기획직으로 취업이 되면 가장 좋고, 그게 아닐지라도 6개월 동안 프로그래밍 언어가 무엇인지 조금이라도 아는 것이 내 삶에 필요할 거라고 생각했다. 프로그래밍 언어는 내가 늙으면 부모님 세대의 영어와 같은 존재가 될 거라고 믿었다.


그리고 멤버십 예비과정이 끝날 무렵에 '이 길은 내 길이 아니구나' 라며 주변 친구들에게 파워블로거가 되겠다고 했다. 그렇게 돈을 버는 게 기획자나 개발자가 되는 것보다 빠르겠다고 말했다. 같은 반에 있던 친구들이 '유치원 선생님' 같다고 말을 해주거나 '너는 디자인이랑 사람에 더 관심이 많은 것 같은데?'라고 말해줬다. 하나도 틀린 말이 없었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나와 개발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옷이라는 것을. 기획자가 되기엔 부족하다는 사실도.


파워블로거가 되겠다는 것은 '부업'의 일종 혹은 '취업을 위한 발판'거리로 삼을 요량으로 한 말이었다. 블로그를 운영하는 건 세상을 향한 외침이었기에, 잘 되는 것과 상관없이 그냥 필요한 일이었다. 내가 여기에 있고, 나는 쓸모가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내가 성장하기까지 나에게 투자한 모든 사람들에게 어떤 성과물을 보여주고 싶었다. 내가 인정을 못 받는 것도 괴로웠지만 나를 도와준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나는 이 정도밖에 결과물을 못 내나? 싶고 서류조차 통과되지 않는 현실에 분노했다.


나는 아버지가 중학교 1학년 때 돌아가셨고, 엄마가 혼자 벌어온 돈으로 성장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 학원은 못 다녔어도 엄마 친구였던 변호사 분이 매월 10만 원씩 후원해주셔서 문제집은 마음껏 사도 됐다. 이모들이 반찬이나 먹을 것을 챙겨주고 여러모로 신경 써줬다. 외삼촌은 나에게 첫 아르바이트를 소개해주어 '일'이 무엇인지를 알려줬다. 대학교 학비는 신한 장학재단에서 장학금을 받아서 다녔다. 그런데 내가 취업을 못 하는 상황이라니. 이토록 자괴감이 드는 일이 또 있나.


회사 서류는 줄줄이 탈락하는데 내 블로그는 너무 잘 됐다. 갑자기 네이버에서 정식 에디터로 모시고 싶다고 하지를 않나 출판사 여섯 군데에서 책을 내보자고 하지를 않나. 이쯤 되니 이게 내 일인가 싶었다. 하루는 파워포인트 외주 작업을 하고 의뢰자 분이 나에게 '취업이 안 돼서 스스로 일자리를 만드신 분'이라는 말을 했다. 그 말이 참 묘했다.


나는 사실 혼자 일을 한다는 것이 너무도 두려웠다. 남을 가르치기에는 내가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회사 경험도 아주 많은 것도 아닌데, 누가 누구를 가르쳐? 그리고 혼자 강사로 일하면 오만해질지도 모른다고, 나는 사실 그게 제일 무서웠다. 내가 잘해서 잘 되는 줄 알고 착각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할까 봐. 혹은 내가 너무 못한다고 기가 죽어서 아무것도 못할까 봐.


책을 내고 강연 의뢰가 들어오기 시작했으나 내 불안은 더 커지기만 했다. 책을 내고 나니 서류 통과는 되는데 면접에서 떨어졌다. 면접관들은 내가 회사를 꾸준히 다닐지 의심했다. 어느 회사든 나를 회사를 그만두고 자기 일을 할 사람으로 보았다. 결국 조그만 회사에 취업했는데 그도 순탄치는 않았다. 일을 가르쳐줄 상사와 사수가 그만두어서 일을 배우는 것도 아니고 그냥 이도 저도 아니게 되어버렸다. 나는 신입인데 도대체 일을 누구한테서 배우나 싶었다.


결국 일본으로 취업하여 3년 동안 근무한 뒤에 작년에 한국으로 귀국했다. 나는 이런저런 경험으로 젊은이들의 다양한 고충을 아는 사람이 되었다. 정부에서 해외취업을 권하기도 하는데 나는 권하고 싶지 않다. 한국사람은 한국에서 일하는 게 더 나을 것이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해당 국가의 영주권이 있는 게 아니라면.


3년 동안 일본에서 일한 후 회사에 재취업을 해서 계속해서 일하는 삶도 생각을 해봤지만, 해보고 싶은 일이 있어서 프리랜서로 사는 삶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나는 나처럼 취업 때문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은 경험이 있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돈을 벌고 살 수도 있어요'라는 말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특히, 경력단절 여성들에게 이런 방법으로도 살 수 있다는 걸 가르쳐보고 싶다. 그러려면 나 자신이 성공 사례가 되어야 하기에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나는 어쩌다 프리랜서가 되었고, '하고 싶은 일은 한 살이라도 어릴 때 해야지!'란 생각 때문에 이 일을 택한 것뿐이다. 돈은 별로 없지만 마음은 부자라고 생각하고 있다. 나는 내 앞가림할 정도만 벌었으면 하는 바람이기 때문에 큰 부자가 되지는 못하더라도 같은 금액을 버는 다른 사람들보다는 더 만족할 자신은 있다. 일본에서 외국인으로 살면서 내가 한국인으로 누리는 인프라가 얼마나 많은지를 뼈저리게 깨닫고 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이름을 걸고 버는 돈이니까 의미도 남다르기에 허투루 쓸 수도 없다.


'내 이름 걸고 돈을 버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왜 어려운 길을 굳이 하겠다고 했지?' 이런 생각이 드는 날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수익이 적어도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일할 수 있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고,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눈도 키워야 하고 게으르고 미루는 나가 튀어나오지 않도록 부지런하게 살아야 한다. 그렇지만 쉽게 말하면 재미있다. 누가 나를 간섭하지도 않을뿐더러, 잠시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싶을 땐 거리를 두어도 좋다. 그리고 나 자신의 한계를 넘어 어떤 성과를 이뤄냈을 때, 어떤 제안이 나에게 왔을 때, 어떤 강의를 잘 해냈을 때, 멋진 콘텐츠를 만들어내서 사람들이 좋아해 줄 때의 뿌듯함이 있다.


여하튼, 혼자 일하는 모든 프리랜서들에게 응원을 보낸다. 당신이 하는 모든 일이 다 잘 되기를. 혼자서 다 한다는 것은 쉽지 않으니까. 그렇지만 그만큼 보람과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직업이기도 하다. 나 스스로 해냈다는 그런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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