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붙이기
나는 어렸을 때 반지하에 사는 게 창피했다. 부모님께 말한 적 없지만 정말 친하다고 생각되는 친구 몇 명에게만 집을 알려줬었다. 단지 어린 마음을 갖고 있었을 뿐 우리 가족이 창피한 건 절대 아니었다. 성인이 되어서 반지하에 사는 건 예전만큼 창피하진 않다. 그래도 반지하는 싫었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즐길거리를 찾아야 했다. 어쨌든 피할 수 없으면 즐겨야 하니까.
이곳에 마음 붙이고 살기 위해 먼저 한 일은 내 맛대로 집을 꾸미는 거였다. 가족이랑 같이 살았을 때는 취향이라 할 것도, 집안을 꾸민다는 개념도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의 취향을 알 수 없었다. 자취하는 사람의 필수 어플인 ‘오늘의 집’을 보면서 마음에 드는 스타일을 찾고 꽃무늬 침구와 화이트&우드 스타일로 가구를 구매했다. 내 취향에 대해 처음 고민해 보고 그런 것들에 돈을 쓴다는 게 하나도 아깝지 않게 느껴졌다.
이삿날이 되고 빈 집에 가구가 하나, 둘 자리 잡았다. 가장 큰 가구인 침대는 설치기사님이 뚝딱 조립해 줬다. 문제는 나머지 가구들인데 생각보다 완성된 상태로 배송되는 가구가 없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내 머리가 나쁜 건지 설명서가 한 번에 이해되지 않아 답답했다. 상품 후기에는 분명 조립이 쉬워서 여자도 금방 할 수 있다 했는데. 나만 빼고 다들 천재가 분명하다. 심지어 전동드릴도 없어서 한참을 씨름했다. 서랍부터 행거, 의자, 식탁••• 내 손이 안 닿은 가구가 없었다.
잘 꾸며진 집을 유지시키는 것도 중요한 일 중 하나였는데 꽤 어렵게 느껴졌다. 어렸을 때 집안일을 돕긴 했지만 엄마만의 확고한 살림방식이 있었기 때문에 정확하게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물건을 찾을 때도 항상 엄마를 찾기 일쑤였다.
“엄마 손톱깎이 어디 있어?”
“서랍 2번째 칸”
엄마는 자질구레한 모든 것들의 위치를 정확하게 다 기억하고 있었는데 그건 엄마의 살림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나만의 방식을 연구하기도 하고 정리정돈 관련 영상을 찾아보면서 나름 공부도 했다. 이제 나도 엄마처럼 눈 감고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나의 생활방식을 알아가는 일은 뿌듯하고 즐거웠다.
내 손길이 닿아 완성된 이 공간은 그렇게 싫다 생각했던 반지하라는 사실도 잊게 만들었다.
‘반지하 탈출 목표는 무슨? 오래 살 수 있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