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록 Mar 20. 2024

다 보이는 반지하

내 구역에 침범하지 마


 이사 갈 첫 번째 결심: 사생활 보호가 안돼!


 어떤 영상에서 우리의 뇌는 ‘다른 사람’에 대해 흥미롭게 느끼고, 관심을 갖는 게 원초적인 인간의 본능이라 했다. 물론, 나도 길을 다니다 보면 ‘저런 집에는 누가 살까?’ 같은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 단순한 호기심일 뿐이지 실제로 창문 안을 들여다본 적은 없다. 오히려 누군가와 눈이 마주칠까 봐 시선이 오래 머물지 않게 피해버린다. 종종 뉴스에 나오는 몰래카메라나 집안을 훔쳐보는 사람에 관한 기사를 볼 때면 남일 같지 않았다. 반지하에 살면 외부를 항상 신경 써야 한다.





 반지하는 기본적으로 습하기 때문에 환기는 필수다. 마찬가지로 우리 집도 매우 습했다. 창문을 활짝 열어두진 못해도 어느 정도 열고 생활해야 한다. 그래서 침대나 책상처럼 오래 머무는 영역은 창문을 열었을 때 보이지 않는 곳에 배치해야 했다. 우리 집의 창문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곳에 위치해 있었다.



 집안에 있으면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발소리를 듣게 되는데 창문 앞에서 발걸음이 멈추면 흠칫 놀라기도 했고 다시 발걸음을 옮기는 소리가 들리면 후다닥 창문을 닫아버리곤 했다. 물론, 집 안을 봤다고 장담할 수 없고 피해의식일 수 있지만 불편한 마음은 계속 남아 있었다. 내 집에서도 이렇게 숨어야 하는지 의문이 들기도 했다.



 어느 날은 대청소를 하려고 창문을 활짝 열어놨는데 앞집에 사는 할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인사를 할 수도, 바로 문을 닫아버릴 수도 없어서 뻘쭘했다. 집 안에서 다른 사람과 눈을 마주친 게 영 기분이 이상해서 밖에 나가서 얼마큼 열어둬야 집안 내부가 보이지 않을지 연구하기도 했다. 3cm 정도 열어뒀을 때 내부가 보이지 않았다. 딱 그 정도만 열어두고 생활했다. 갈대발이 있지만 완벽하게 가려질 수는 없었다. 누군가 쳐다볼 것 같은 느낌은 걱정이 많은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또 하나의 문제는 알고 싶지 않은 타인의 사생활도 알게 된다는 것이다. 창문 앞에서 담배를 피우며 수다 떠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수밖에 없었다. 들려서 듣는 거지만 뭔가 불편했다. 게다가 담배연기와 꽁초를 남기기도 하고, 주차를 창문 앞에 해서 안 그래도 들지 않는 햇빛을 다 가려버렸다. 사생활 보호가 안 되는 건  물론이고 지하에 위치해 있단 이유로 알게 모르게 많은 피해가 나의 피로도를 높였다.



분명 집안에 있지만 침범하는 외부인들의 존재가 선명했다.




이전 04화 가족이 생겼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