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후두둑 Oct 22. 2021

강릉살이 예찬

서울 깍쟁이의 만만치 않은 강릉살이 기록


강릉에서의 직장 생활은 서울에서는 돈으로 사지 못하는 (돈이 있어도 시간이 없어서 엄두를 못 내는) 경험들로 가득했다. 


점심식사 후 직원 할인을 받아 천 원을 내고 산 호텔 커피를 사 들고 밖으로 나가면 빽빽한 빌딩 숲이 아닌 피톤치드 가득한 소나무숲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 숲을 가로지르면 50보 채 걷지 않아 그야말로 광활한 동해가 끝도 없이 펼쳐지는 풍경을 매일 볼 수 있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커피를 한 손에 들고 바다를 배경 삼아 사진을 찍은 뒤  #강릉살이 #회사앞풍경 같은 해시태그를 걸어 인스타그램에 올리곤 했다. 


호텔에 근무한 지 꽤 되거나 강릉에서 태어난 직원들에게는 일상이였지만 나에게는 매일 설렘의 연속이었고 매일 여행하는 기분이었다. 퇴근 후에는 세탁실에서 빨래를 돌리는 동안 책과 비치타월, 스피커를 챙겨 해변에 앉아 노을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 어떤 날에는 일찍 일어나 출근 전 일출을 보러 나가기도 했다. 맑은 날에는 마치 바다가 태양을 낳는 듯한 광경을 볼 수 있었다. 퇴근 후 경포 호수를 산책하며 대관령으로 넘어가는 해를 볼 때는 직장생활의 고단함과 타지생활의 외로움도 높은 산이 품어주는 듯했다. 


가끔 여유가 있을 때는 점심시간에 직원 식당대신 양양이나 정동진에 가서 전복 칼국수를 먹고 온 적도 있다. 오징어가 철일 때는 근처 횟집에 가서 오징어 물회를 실컷 먹었다. 주말에는 한 시간이 넘게 줄을 서야 겨우 먹을 수 있는 맛집도 평일에 가니 기다릴 필요 없었고 관광객이 모르는 진짜 로컬 맛집을 찾아다니는 재미도 쏠쏠했다. 주말 내내 번잡했던 안목 해변도 일요일 저녁에 가면 관광객이 썰물처럼 빠지고 한적한 해변을 내 것처럼 누릴 수 있었다. 그야말로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환경에서 살고 있던 나. 완벽한 나의 강릉 생활이 계속 이어질 것 같았다.


어쩌면 이 곳에서 정착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부풀고 있었다. 지나치게.

이전 03화 어쩌다 우리 모두 이방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