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후두둑 Oct 22. 2021

오늘의 바다는 무사했다.

서울 깍쟁이의 만만치 않은 강릉살이 기록

강릉생활의 소소한 단상 1- 오늘의 바다는 무사했다

강릉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매서운 파도가 내가 일하는 호텔을 덮치는 꿈을 꿨다.  창문을 깨고 들어온 물살이 점점 차오르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보다 번쩍 눈을 떴다. 일 년 만에 다시 시작한 업무에 대한 스트레스 때문인가, 낯선 곳에서 적응해야 하는 부담감 때문인가 아니면 혹시 예지몽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일단 날씨부터 확인했다. 폭풍우는 커녕 비 한 방울 오지 않는 청량한 가을 날씨가 이어지고 있었다.


네이버에 ‘홍수 해몽’을 검색했다. 다양한 해석 가운데 ‘재물이 들어올 징조’라는 풀이가 마음에 들어 믿기로 결심했다. 복권을 사야 하나? 여긴 복권 사려면 시내에 나가야 하는데… 하는 수 없이 서울에 있는 남자친구에게 꿈을 대충 이야기해주고 커피 쿠폰 한 개와 꿈을 맞바꿨다.

"오빠, 내가 꾼 꿈 엄청난 재물이 들어올 증조라니까 꼭 복권 사~"


점심시간에 남자친구가 준 쿠폰으로 산 커피를 들고 바다가 무사한지 확인하기 위해 호텔 앞 해변으로 나갔다. 크게 숨을 마시니 박하사탕을 머금은 공기 맛이 났다. 파도는 건강한 맥박처럼 규칙적으로 밀려왔다가 다시 물러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파도의 박자에 내 호흡을 맞춰본다. 그리고 왠지 모를 안도감의 숨을 내뱉었다. 


'괜찮아서 다행이야. 괜찮을 거야 앞으로도'


파도를 위로한 건지 내 자신을 위로한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커피 한 모금에 다짐을 했다. 활기차게 들어왔다가 멋지게 퇴장하는 파도처럼 강릉살이를 해보겠다고.

 

'그나저나 남친은 복권 샀나?'


저녁에 물어보니 복권 사려고 여기저기 일부러 돌아다녔는데 결국 못 샀다며 아쉬워했다. “근데 오빠, 생각해보니 난 오빠가 준 커피 쿠폰 덕분에 물이 들어왔잖아. 딱 커피 한 잔 만큼의 물이 들어올 예지몽이였나봐”  


강릉생활의 소소한 단상 2 - 아침의 소리

‘바스락’

내가 발로 찬 이불이 낸 소리에 잠에서 깼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분명히 일요일 밤이었는데 잠깐 눈을 감았다가 뜨니 월요일 아침이다.

‘후-’ 

나도 모르게 내뱉은 깊은 한숨에 대답이라도 하듯이 때마침 알람이 울린다.

‘우두둑’

다리를 쭉 폈다가 접으며 스트레칭을 하자 관절이 안부 인사를 건넨다. 아직 거기 붙어 있구나. 이번에는 몸을 일으켜 창문을 열어본다. 강릉에 온 이후로 매일 아침 공기와 파도소리를 체크하는 것이 루틴이 되었다. 

‘솨아아아 촵’

파도가 밀려오고 수면을 치는 소리의 간격이 긴 것을 보니 오늘의 파도는 적당히 잔잔한가 보다. 아직 공기가 바삭한 걸 보니 오늘 비는 오지 않겠구나. 따듯한 차와 함께 잠시 창밖을 응시하며 멍타임을 가져본다. 오전 7시의 호텔은 고요하다. 창밖 소나무숲을 산책하는 사람들이 간간히 보였다. 소나무를 오르는 청솔모가 이제 낯설지 않다. 


출근은 하기 싫지만 호텔 커피는 마시고 싶으니까 몸을 움직여본다. 분주한 월요일의 시작. 

이전 04화 강릉살이 예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