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기자 언니가 전하는 평온함의 비결 2
언젠가 어느 방송에서 소설가 김영하 님이 작가 지망생들에게 ‘짜증 난다’는 말을 쓰지 못하게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짜증’이란 단어는 너무나 많은 감정을 단순하게 뭉뚱그리는 표현이기에, 작가가 되려면 감정을 섬세하게 읽는 훈련이 필요하다는 뜻이었다. 나는 김영하 작가님의 이 의견에 덧붙여, 짜증이 났을 때 평온함을 되찾기 위해서는 자신의 감정을 섬세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짜증의 사전적 의미조차 ‘마음에 꼭 맞지 아니하여 발칵 역정을 내는 짓’이다. 그러니까 마음과 어긋난 무수한 원인으로 일어날 수 있는 불편하고 불쾌한 상태가 바로 짜증이라는 불명확한 감정이란 소리다. 그러니 갑자기 짜증이 밀려들어 콱 소리라도 내지르고 싶을 때, 잠깐 멈추고, 무엇이 내 마음에 빗나간 건지 정확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러면 마음이라는 게 신기하게도 알아주는 순간 매섭게 세웠던 칼날을 스스로 무디게 만들더라.
나에게 짜증이라는 감정 폭발의 위기는 주로 육아를 하는 동안 가장 자주 찾아온다. 시간에 맞춰 외출해야 하는데 아이들이 늑장 부리면, 그야말로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하지만 이런 경우, 내 감정을 들여다보면 짜증을 일으키는 주요 원인은 ‘늦어서 민폐 끼치기 싫다’는 내 욕구가 바탕이다. 그걸 알아차린 이후부터는 가급적 외출 준비 시간을 넉넉히 마련해 상황을 개선했다.
한 번은 내가 야근을 마치고 새벽 두 시에 퇴근을 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겨우 침대에 누워 막 잠들려는 찰나에 둘째 아이가 칭얼대는 거다. 순간적으로 ‘아, 얘는 왜 이러는 거야, 정말 짜증 나게’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알아차렸다. ‘아, 내가 빨리 자고 싶구나. 그리고 더 늦게 자서 잠이 부족하면 내일 힘들어질까 봐 불안한 거구나!’ 그랬더니 이내 짜증이라는 감정은 사라지고, ‘잠 조금 못 자면 어때, 괜찮을 거야’라는 이성이 돌아왔다. 그리고 그제야 ‘아이가 뭐가 불편해서 찡얼대는 거지?’ 상황의 본질을 보게 되더라. 아토피 증상이 있는 아이는 좀 덥고 가렵기 때문에 짜증이 난 거였고, 나는 이불을 좀 치워주고 아이가 가려워하는 부분에 로션을 발라줌으로써 다시 재울 수 있었다.
이처럼 살아가면서 문득 마주하는 ‘짜증’이라는 감정에는, 그 이면에 다양한 내 욕구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아, 사실은 내가 인정받고 싶구나, 무엇에 대한 기대감이 이토록 크구나, 어떤 두려움을 지니고 있구나…’
내 마음이 바라는 것을 섬세하게 들여다보면, 불쾌한 감정 상태에서 머무르는 시간은 짧아진다. 곧장 내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문제 해결 방안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믿기지 않는다면, 짜증이 올라올 때 숨은 욕구를 들여다보는 시간을 들여 보라. 물론, 감정에 휘둘린 채 표출해버린 후보다는 전에 해야 의미가 있다는 사실도 잊지 말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