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좋은 학교를 나오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제 대학교를 '수잡대'라고 칭합니다. 수도권에 있지만, 지잡대인 것 같은 학교를 '수잡대'라고 합니다. 직업, 소득, 지식과 같이 어떤 분야든, SNS에서는 현실보다는 높은 기준이 적용됩니다. 제 모교도 현실에서는 상위권이지만, SNS나 높은 사회(대기업이나 모두가 가고 싶어 하는 기업들)에서는 하위권의 삶을 살아온 사람이 가는 곳처럼 취급됩니다.
사실 저는 이 사실을 특별하게 신경 쓰고 있지 않습니다. 지금 재직 중인 회사에서 이렇게 좋아하는 일을 하며, 만족감을 느끼며 살아가는 삶이 저에게는 정말 좋은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가끔은 "이러면 안 되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주변의 모두가 바쁘게 움직입니다.
누군가는 대학원에 가고 누군가는 이직을 하고 누군가는 스터디를 할 때 마치 직장생활과 운동, 독서만 하고 있는 내가 멈춰있는 듯한 느낌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저는 운전을 좋아합니다. 운전을 하다, 주변에서 나보다 빨리 달리는 차들만 있다면 가끔 저는 제가 멈춰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와 똑같은 원리라고 생각했습니다. 모두에게는 각자에게 맞는 속도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속도는 옳은 것도 그른 것도 아닌 그냥 다른 것입니다. 사회의 모두가 서로 다른 속도로 달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각자의 '속도'를 존중해야 합니다.
그러나 자기 스스로 자신의 속도를 존중하기에는 사회가 우리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마치 매일 발전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만 같은 분위기를 만들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이상하게 바라봅니다. 높은 자리는 그 책임이 무거워 높은 자리이지만 지금은 그 권력이 크기에 높은 자리처럼 생각됩니다. 그리고 마치 높은 자리에 오르지 못한 사람을 혹은 높은 자리에 올라갈 생각이 없는 사람을 '능력 없는', '발전 없는' 사람으로 취급합니다.
저는 높은 자리를 '성공'이라고 표현하지 않습니다. 누구에게나 '성공'의 기준은 다른 법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높은 자리'라는 말을 자주 사용할 것입니다. 이 글에서 '높은 자리'는 지위가 높거나, 급여가 높거나 사회에서 통상적으로 사용되는 그 '높은 자리'를 뜻합니다.
왜 우리 사회는 '높은 자리'를 쫒는지 그리고 이 사회에서 우리의 '속도'를 지키기 위해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고, 찾아보고 정리해 보았습니다.
우선 많은 사람이 높은 자리에 올라가고 싶은 이유를 찾아보았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자료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높은 자리에 올라고 싶은 이유가 개개인의 욕심이 아닌 인간이 진화하는 과정에 필수적인 요소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회적 비교 이론'은 심리학자 레온 페스팅거(Leon Festinger)가 제시한 이론으로,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과 의견을 평가하기 위해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는 본능적인 경향이 있다고 설명합니다. 중요한 점은 SNS와 미디어의 발달로 매 순간 우리는 비교에 쉽게 노출되어 있고, 우리보다 잘 사는 사람들만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성공의 갈망을 느끼게 하는 강력한 동기가 됩니다. 결국 이런 생각은 가만히 있으면 마치 뒤처진다는 느낌을 주는 불안감을 이끌어내게 됩니다. 우리는 다시 이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그들처럼 '높은 자리'에 올라가고 싶어 하고 그 자리까지 올라간다면 이렇게 불안한 감정도 내 삶을 괴롭히는 불확실한 요소들도 사라질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지게 됩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로서 타인에게 인정받고 존중받고 싶어 하는 근본적인 욕구를 가지고 있으며 이를 '인정 욕구'라고 합니다. 윌리엄 제임스는 타인에게 인정받지 못할 때 고통을 느낀다고도 할 정도로 인정 욕구를 인간의 욕구 중 가장 깊은 욕구 중 하나로 꼽았습니다. '높은 자리'는 그 자리의 '희소성'으로 인해 유능함과 가치를 증명하는 강력한 상징입니다. 이런 상징을 얻음으로써 인정받고 싶어 하는 인간의 욕구는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결국 누군가가 인정 욕구로 인해 자신의 자랑거리를 SNS에 게시하고 미디어는 자랑할 만한 희소성 있는 소식들을 생산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이를 봄으로서 자신을 지금 보고 있는 작은 화면에 나오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사회적 비교를 하게 됩니다. 이 비교로 인해 불안감은 고조되고, 이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하게 됩니다. 이 노력으로 얻은 성과는 연정 욕구로 인해 다시 SNS에 게시되고 다른 누군가가 이를 시청하는 무한 비교 지옥이 형성됩니다. 결국 우리 또한 이러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는 한 명의 구성원일 수 있습니다.
'높은 자리'에 가고 싶은 욕구는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다만 사회는 '높은 자리'에 가지 않는 혹은 가지 못한 사람들에게 조금 더 강하고 딱딱한 기준으로 그들을 생각합니다.
낮은 사람을 무시하는 태도는 잘못된 판단에서 나옵니다. 사실 저는 사람을 판단한다는 말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한 사람을 알려면 그들이 살아온 배경과 노력을 전부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모두를 알아도 한 인격체를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한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가끔 사회에서 만난 사람을 판단해야 합니다. 사회적 동물인 우리는 내 앞에 있는 사람이 내 생존에 도움이 되는지, 혹은 도움이 되지 않는지를 가려내고 이 사람과의 관계를 형성해야 하는지에 대해 판단합니다. 여기서 무서운 점은 우리의 뇌는 복잡한 사고 과정을 피하고 가능한 한 적은 인지적 노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인지적 구두쇠 현상이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한 사람을 판단할 때 그 사람에 대한 깊은 사고보다는 '높은 자리', '학벌', '자가용'과 같이 단순한 것들로 그들을 판단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단편적인 생각만을 하다 보면 결국 특정 직군의 사람들의 학습 수준을 비하하거나 그들의 노력을 내려치는 잘못된 판단을 하게 됩니다.
가난한 사람 혹은 지위가 낮은 사람들이 노력을 하지 않아서 지금 그런 모습으로 있다는 생각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한 가지가 바로 체제 정당화 이론입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사회 체제나 시스템이 기본적으로 공정하고 정당하다고 믿으려는 심리적 동기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경향이 자리가 낮은 사람들을 향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현재의 사회 시스템은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지위가 높지 않은 자들에게 그들의 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식으로 나타납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웹툰 중 '가담항설'이라는 웹툰이 있습니다. 이 웹툰에서는 다음과 같은 대사가 나옵니다.
나라의 명령이 가지는 권위는 정의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까? 귀한 자리는 그 책임이 무겁기에 귀한 법인데, 어찌 권위를 권위 자체만으로 휘두르십니까.
'높은 자리'는 결정에 대한 책임을 가지는 자리입니다. 그리고 '낮은 자리'는 책임이 크지 않지만 실무를 책임집니다. 이 둘은 서로 다른 것이지 결정을 하는 자리는 숭고한 자리이고 낮은 자리는 흔한 자리가 아닙니다. 그리고 결정한 자리는 편한 자리가 아니고 낮은 자리는 생각이 없는 자리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높은 자리'를 숭고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그 자리에 권위가 있기 때문입니다. 권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하지만 권위는 숭고한 것이 아닙니다. 권위는 정의에서 오는 것입니다. 그것이 숭고함의 자격이 아닙니다. 숭고함은 우리 모두가 존재 자체로서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회에서, 자리의 높낮이를 매 순간 구분하려는 사회에서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은 일단 이 자리들이 서로 '다른'것이지 틀리거나 가치가 낮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다양한 사람들은 각자 하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일의 목표가 꼭 '높은 자리'여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전 회사에서 실리콘벨리 개발자 분들과 화상 회의를 할 일이 자주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얼마 안 되는 영어실력을 연습하기 위해 가벼운 스몰토크를 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승진 문화에서 특이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승진을 거부하는 일이 자주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렇게 물어봤습니다. "그럼 나이가 많은 사람이 나이가 어린 사람보다 직급이 더 낮을 수 있는 거잖아요?" 놀란 표정으로 말하는 제 말을 듣고는 실리콘벨리의 개발자들은 저보다 더 놀란 것 같았습니다. "가족이 중요하거나 개인 시간이 중요한 사람은 적은 강도의 일을 선택하고 적은 보수를 받아요. 그건 그들이 선택한 거예요. 그리고 자신의 커리어가 더 중요한 사람은 더 높은 강도의 일을 하기 위해 승진을 선택해요. 그냥 그들이 그렇게 사는 겁니다. 나이가 무슨 상관인지 모르겠어요."
우리는 우리의 자리를 선택할 권리가 있습니다. 사회는 기꺼이 '낮은 자리'를 선택하여 사회의 구성원이 되어주는 사람들 덕분에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의 자리가 낮다는 이유로 그들의 노력이 덜 하다거나 능력이 좋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은 매우 오만한 생각입니다. 그렇기에 이번 에세이의 제목을 '기꺼이 사회의 구성원이 되기로 한 당신에게'라고 정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재밌게 읽은 '용의자 X의 헌신'이라는 책의 명대사를 적으며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이 세상에 쓸모없는 톱니바퀴란 없으며
그 쓰임새를 결정하는 것은 톱니바퀴 자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