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1학년 1학기, 아무것도 모르고 들어간 원어 수업이었다. 강의실에 들어선 순간 아 이 강의는 내가 들을 강의가 아니다.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수많은 외국인 학생들이 있었다. 이 수업은 자국의 문화를 영어로 소개하고, 자기를 표현하는 발표로 구성되는 수업이었다. 영어로 진행되는 수업이었기에 너무 긴장되고, 여러 가지 힘든 점이 많았던 수업이었지만 인생 모든 분야에 있어서 나의 시야를 넓혀준 의미 있는 강의였다.
나는 특히 이 수업에서 만난 프랑스 친구의 발표가 기억에 남는다. 자신의 정치성향부터, 좋아하는 성격과 개인적 취향까지 사소한 것들을 이야기했었다. 그러다 자신은 ‘게이’임을 밝혔고, LGBTQ에 대한 자기 생각을 이야기했다. 그가 그런 이야기를 솔직하고 당당하게 이야기할 때 조금은 당황하고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몰랐던 사람들은 강의실에 있던 ‘한국인’들 뿐이었다. 콜롬비아, 스페인, 포르투갈, 프랑스 등에서 온 사람들은 그저 당연하다는 듯 듣고 있었고, 한국과 비슷한 문화권인 아시아 국가 출신 학생들은 당황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런데 이는 사실, 한국인들의 개방적이지 않은 사고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 사회는 LGBTQ, 즉 레즈비언, 게이, 바이, 트렌스젠더, 퀴어 등에 대한 개념이 확실히 자리잡히지 않았으며 이들에 대한 법적인 보호 또한 전혀 마련되지 않은 상태이다. 오히려 그들의 사랑을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취급하며 완전히 무시하고 심지어는 그들에 대한 혐오를 조장하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되어있다. 그들의 사랑은 이성 간의 사랑과는 차원이 다른 것으로 간주하며, 그들의 사랑을 사회질서를 흐리는 것으로 규정하는 사회의 분위기가 한국인들이 ‘게이’인 사람을 봤을 때 당황할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이유라고 생각한다.
세상에는 다양한 형태의 사랑이 존재한다. 나의 엄마가 나를 ‘사랑’하는 것, 내가 내 동생을 ‘사랑’하는 것, 나의 친구들을 ‘사랑’하는 것, 나의 여자친구, 남자친구를 ‘사랑’하는 것.
꼭 이성 간의 사랑만이 법적인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인가?
LGBTQ 의 사랑이 사회질서를 흐린다는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그들의 성행위가 성병을 유발하고, 족보가 꼬이며, 지금의 가족관계질서를 무너뜨린다고. 그러나, 과연 이 중 맞는 말이 얼마나 될까?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 사회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으며 우리는 우리의 사고를 변해가는 사회에 맞추어나가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정부가 성 소수자들에 대한 법적 보호를 내놓는 것 또한 성 소수자들을 배려하는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지만, 그들에 대한 일반 사람들의 시선부터 바꾸는 것이 우선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건강한 사회를 원한다. 혐오는 혐오를 낳을 뿐이다. 과연 나는, 정말 그 누구도 ‘혐오’한 적이 없는 선량한 인간인가? 만약 혐오를 했었던 사람이라도 이제부터 하나씩 바꾸어나가면 된다. 우리 가슴 속 편견을 덜어내어, 혐오 없는 자유롭고 평등한 세상에서 살 수 있을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