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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으로부터의 해방 2

by 사이 Feb 12. 2025

물건으로부터의 해방1 에 이은 글입니다.




언젠가 읽을 거라 보관한 책들

정리해야 할 것은 지혜와 지식의 산물인 책도 마찬가지다. 책방에 다니며 책을 읽기보단 수집하는걸 더 좋아했는지 모른다. 직원가로 많은 책들을 사 보았고 사 모으기도 했다. 회사를 졸업하며 일과 관련된 책과 다 읽은 책은 이미 한차례 정리해서 소장할 책만 남겨두었다. 그리고 언젠가 읽을 ‘읽다 만 책’과 ‘읽지 않은 책’을 한쪽 구속에 모아놓았다. 그런데 쉽게 읽히지 않는다. 그 책이 아니어도 읽고 탐독할 책들은 도서관에 차고 넘친다. 몇 년째 방치할 것 인가. 그간 읽지 않은 책인데 앞으로 내가 읽을까. 확신할 수 없다. 이 참에 읽지 않은 책도 정리하기로 했다. 시간을 머금은 오래된 책에서 뿜어져 나오는 특유의 꿉꿉한 종이 냄새를 좋아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도서관에서나 즐길 거리다. 집은 머무르기에 편안하고 청결해야 한다. 그리고 생각할 수 있는 여백을 만들 빈 공간들이 존재해야 한다. 먼지 쌓인 빛바랜 책들이 그곳을 차지해선 안 된다. 이제는 그만 안녕할 때다. 



온종일 입고 있으니 마음도 해져지는 헛 옷들

이 글을 쓰면서도 20년 전 산 겨울 점퍼를 입고 있다. 메이드 인 코리아 옷들은 참 품질이 뛰어나다. 세탁하면 다시 새 옷처럼 복원이 된다. 시대에 뒤떨어진 올드패션은 차마 밖에서 입진 못하고 집에서 늘어지고 구멍이 나도록 입고 있다. 특히 면으로 된 옷들은 너덜너덜 해졌지만 반복해서 입다 보니 면은 더 반들반들 해져서 살갗에 데이면 보드랍다. 회사를 졸업하고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다 보니 편안 옷, 해진 옷을 입고 있는 시간도 늘어난다. 그리고 그 시간이 늘어나는 만큼 내 마음도 조금씩 누더기가 되어가는 것 같다. 회사 사람일 땐 가끔 입던 편안 해진 옷을 이제는 집에서 매일 입다 보니 ‘나’도 같이 한물간 올드 패션이 되어 가는 것 같다. 불편하지만 예쁜 옷들, 각 잡힌 정장과 하늘하늘한 블라우스를 입고 다닐 때는 찾아 입던 해진 편한 옷들이 이젠 내 아이덴티티가 되어가는 것 같다. 편하지만 해진 사람. 새로울 것도 없고 신선하지도 않은 그런 사람. 물론 본질이 그렇지 않더라도 매일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그러하니 울적할 땐 덩달아 자존감도 바닥 친다. 물론 헌 옷을 버린다고 새 사람이 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해지고 묵은 옷들이 내 감정을 잠식하기 전에 이쯤에서 헤어 지기로 했다.



자연을 차고 넘치게 생각해서 그 이름도 찬란한 에코-백

일회용 플라스틱 백 대신 반복사용을 권장하며 만들어지는 에코백. 그 이름도 자연을 담고 있는 에코-백. 나 역시 회사 사은품으로 여러 차례 만들어 보기도 했고 여기저기서 많이 받기도 했다. 돈 주고 산 것도 아닌데 1년을 나고 나면 에코백이 커다란 쇼핑백에 한가득이다. 환경을 너무나도 많이 생각해 너무나도 많이 만들고 뿌려댄다. 지나치니 그 이름도 무색해진 에코-백이다. 그래서 그런지 에코백이 때가 타면 빨아서 재사용하지 않고 버리고 새 에코백으로 갈아탄다. 나 역시 빨아 써보니 그 모양과 쓰임이 전 같지 않아 새 에코백을 집어 든다. 플라스틱 백보다야 반복해서 사용되지만 더 많은 에너지를 소비해 가며 생산되는 에코백인데 진정 에코인가 사용하는 나로서도 의문이 든다. 어쨌거나 그런 에코백 덩어리들이 한자리 차지하고 있다. 있으나 필요에 의해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소비하면서 주어지는 공짜 상품들. 이젠 사양해야겠다. 그리고 사은품 준다고 더 많이 소비하지 말아야겠다. 지나침은 불필요함을 만들고 결국에는 쓰이지 않아 쓰레기로 버려진다. 우리 집 에코백처럼 말이다. 그렇다고 환경을 생각해서 에코백을 다른 용도로 리폼하기에는 내 시간과 열정이 아쉽다. 그냥 안녕하는 걸로 하자. 에코-백 안녕~!



총 3박 4일에 걸친 묵은 물건 정리정돈의 대장정이 마무리되었다. 제발 1년 후에 같은 상황이 반복되지 않기를 기도한다. 그리고 필요한 만큼만 소비하자, 불필요한 물건은 공짜라도 들이지 말자, 마지막으로 오래된 물건을 붙들고 옛사랑을 추억하지 말고 지금 눈앞에 존재하는 사랑을 충분히 누리고 품기를 다짐한다. 


공간에 여백이 생기니 내 마음에도 여백이 생기고 그 안으로 아이들의 사랑이 스민다. 아들의 작은 블록으로 촉발된 집안 정리정돈이 결국에는 나 자신에 대한 자기반성과 다짐으로 마무리된다. 


어른 되긴 아직 먼 것 같다.



#일상 #청소 #집안일 #정리정돈 #아이들_장난감 #아이방_정리 #집안_대청소

#안본책_안볼책_해진옷_에코백_이제_그만_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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