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포로 여행 ep.9 삿포로 닛코 호텔 프렌치레스토랑 '미쿠니'
삿포로 여행 ep.8 삿포로 닛코 호텔 대욕장 아카스리(때밀이) 에 이은 글입니다.
혼자인 덕분에 가능한 프렌치 코스요리. 4인 가족여행이었다면 예산이 곱절에 곱절로 늘어 엄두도 못 내는 고급요리를 삿포로 닛코 호텔에서 넘본다. 삿포로 닛코 호텔의 자매품 프렌치 레스토랑, '미쿠니'. 디너로는 1인 10만 원은 너끈히 넘는 이곳에서 세금과 서비스 비용 포함해 3,800엔(약 34,200원)에 런치코스 요리를 합리적으로 즐겨본다.
닛코의, 닛코에 의한, 닛코를 위한 일정
도시 여행은 주로 역 주변에 베이스캠프를 마련하고 역을 중심으로 쇼핑과 끼니를 해결하는 주의라 삿포로역에서 어슬렁어슬렁 거리면 한 번쯤은 지나치는 스텔라 플레이스. 미슐랭 별 따라 먼 길 가지 않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9층 버튼만 누르면 도착하는 곳이 ‘미쿠니’. 게다가 이번에는 작정하고 닛코 호텔 부대시설을 즐기려 인근에 비스니스 호텔까지 앞뒤로 예약했으니 닛코를 중심으로 먹고 자고 목욕하는 ‘쉼’ 여행 되시겠다.
미쿠니는 사전 예약과 할인 쿠폰,
여유로운 시간과 느긋한 마음가짐으로 즐기자
먼저 미쿠니에 가기 전 해야 할 것! 첫째. 이왕이면 예약하자. 뷰 좋은 창가자리를 앉기 위해서는 사전 예약이 필수다. 혼자 여도 예약하고 방문하면 창가 옆 좋은 자리를 내어 준다. 둘째, 스텔라 플레이스 안내데스크에서 웰컴 쿠폰 받기. 2천엔 단위로 1백엔 할인되는데 미쿠니에서도 알뜰히 사용할 수 있다. 셋째, 여유로운 일정과 느긋한 마음. 정성스러운 요리들이 하나씩 순서에 맞추어 행진하듯 나오는데 한 그릇 뚝딱 먹고 끝내는 음식이 아니기에 식사 종료까지 다소 시간이 소요되고 중간중간 텀이 생긴다. 빽빽하게 채워진 음식과 시간이 아닌 듬성듬성 여백을 즐기는 시간이니 느긋함은 이곳을 즐기는데 큰 덕목이라 하겠다.
탁 트인 고요한 공간에서 타인에게 시선이 머문다.
좋다. 조용해서 좋다. 안쪽에 위치한 레스토랑까지 걷는 복도가 번잡스러운 아래층 쇼핑몰과 상반되게 고요하다. 나는야 이곳을 고고히 혼자 걷는 프렌치 레스토랑 예약자. 한국에서라면 감히 엄두도 못 내는 고급 프렌치 코스요리를 우아하게 즐기러 온 혼밥의 달인이다. 삼삼오오 하하 호호 웃는 숙녀분들이 한쪽에서 와인잔을 기울이고 있고 옆테이블에는 나이 든 어머니와 함께 온 중년의 딸도 있다. 어머니에게 상냥히 건네는 목소리가 다정하다. 다른 옆테이블은 나와 같이 혼자 온 아주머니. 혼밥이 처음이신지 코스요리가 처음이신지 다소 부끄러운 낯빛이다. 예약금까지 냈는데 약속한 사람이 안 온 걸까?! 레스토랑에 혼자 예약하고 올 정도면 낯가림 없이 위풍당당 여유로운 시간을 즐길 터인데 이 공간과 시간이 그분에겐 왠지 어색해 보인다.
프렌치 요리는 잘 몰라도
맛을 즐기기에 어색하진 않다.
풀 먹인 듯 빳빳하고 새하얀 테이블보. 그 위에 화려한 접시가 단정하게 자리하고 있다. 투명한 물 잔, 은색의 나이프와 포크. 나를 위해 준비된 테이블이 환하게 나를 맞이한다. 사람이 주는 친밀한 서비스도 반갑지만 깔끔하고 가지런히 놓인 사물에서 더 큰 환대를 느낄 때가 있다. 웃고 싶지 않지만 웃는 얼굴에 웃으며 궁금하지도, 하고 싶지도 않는 말을 섞는 것보다 적당한 거리에서 군더더기 없이 깔끔히 내어오는 음식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여백이 있는 공간과 시간이 때론 내 마음을 더 살찌운다.
커피를 커피잔 맛으로 먹는 내게 프렌치 요리도 별반 다르지 않다. 원두 특색이나 바디감, 향을 논하기에 커피에 대한 조예가 깊지 않고 파인 다이닝의 요리를 예찬하기에 배경지식이 없다. 메인 요리를 중심에 두고 앞서 나오는 입맛을 돋운다는 아뮤즈 부쉬(amuse-bouhe), 따뜻한 수프와 고소한 빵, 생선이나 육류의 메인 요리, 뒤이어 나오는 입가심 디저트와 차. 음식이 나오는 순서와 그에 따라 커트러리를 밖에서 안으로 사용한다 정도만 알 뿐이다. 또한 맥주 반 캔이면 알딸딸한 나로서는 요리에 따라 페어링 되는 와인 역시 문외한이라 프렌치 코스요리에 우롱티를 먹는다. 알고 먹으면 맛도 깊고 폭넓게 음미하며 이러니 저러니 맛평을 하겠지만 괜찮게도 홋카이도산 제철 식자재가 주는 신선함은 미묘하게 알아챌 수 있다.
프랜치 레스토랑에서의 혼밥. 썩 괜찮았어! 일본에서 혼밥은 평이하다. 한국도 간혹 '혼자 오셨어요?' 되묻지만 어색하진 않다. 혼밥을 즐기는 내게 누군가 ‘혼자 와도 괜찮은 곳’이라 추천하지만 내게는 대체로 어디든 ‘혼자 여서 괜찮은 곳’이다. 미쿠니 프렌치 레스토랑 역시 혼자 여서 좋았던 곳! 공간과 공간 사이가 존재하고, 요리와 요리 사이가 존재해 번잡스럽지 않아 편안하다. 시공간의 사이를 내 나름의 방식대로 천천히 걸으니 무엇이든 밀착된 관계보다 바람이 들고 나는 관계를 더 좋아하는 내가 보인다.
혼자여서 좋았던 프렌치 코스요리, 미쿠니
https://maps.app.goo.gl/kG4X6UjDLBjUNW8n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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