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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이 Jun 19. 2024

공황장애 3 - 수면제 그리고 이별

온전한 내 일상을 위한 단약과 회사 졸업

졸피뎀. 하루 일과를 마치고 잠자리 들기 전 먹는 수면제다. 잠을 잘 자지 못하면 공황장애 증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 처방받기 시작했다. 별이 다섯 개 하는 침대 광고처럼 정말 좋다. 하루 동안 있었던 힘들고 짜증 나는 일들 때문에 이불킥 할 필요도 없이 단숨에 잠들게 해 준다. 당시 퇴근하고도 지워지지 않는 회사 일 때문에 집에 돌아온 이후의 일상도 엉망이었다. 단순히 일이 많아 힘든 것이 아니라 상황이, 사람이 힘들었다. 일은 우선순위를 정해 쳐내면 되는 일인데 사람과 얽혀있는 일은 쳐낼 수 없는 일들이다. 지극히 감정적이고 주관적이다. 일은 ‘이렇게 하면 되겠네!’ 하고 방법을 찾으면 명쾌해지는데 사람과 상황으로부터 오는 스트레스는 아니다. ‘왜 그렇게 했을까?’ 하고 심리를 파악해야 했고 이해 가지 않는 부분들이 많아 퇴근 후 일상이 뒤흔들리고 상념에 빠지기 일쑤였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 보면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도 있는 일인데 당시엔 늪에 빠져있었다. ‘이 늪에서 계속 살아야 하나’ 하며 잠자리에 누워서도 한숨짓는 일이 잦아졌다. 이때 처방받은 약이 수면제, ‘졸피뎀’이었다. 


명약이자 나의 구세주, 수면제!


졸피뎀의 효과는 가히 극적이었다. 모든 근심, 걱정 묻어버리고 단숨에 나를 잠들게 했다. 어차피 잠자리에서 하는 걱정거리는 답도 안 나오는 도돌이표 의문들뿐이고 해결책도 없는 쓸데없는 근심거리들이다. 그런데 그것들을 곱씹지 않고 나를 편안하게 잠들게 해 줬으니 더할 나위 없이 명약임에 틀임이 없다. ‘베개닛이 부드럽고 포근하네’ 하고 이부자리의 촉감을 느끼면서 서서히 의식을 잃어 갔다. 의식이 아득해지면서 이불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그리곤 눈을 뜨면 아침이었다. 노곤하고 피곤해서 일어나지 싫어 뭉그적거리지도 않고 뒤끝 없이 깔끔하게 잠에서 깨어난다. 잘 잤다!! 졸피뎀은 나에게 명약이요, 구세주였다. 나의 경우 ‘잠’만 잘 자도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면역력이 올라간다. 몸도 훨씬 덜 피곤하고 스트레스도 덜 받는다. 잠만 잘 자도 훨씬 생활이 수월하다. 그러니 잠을 잘 재워주는 수면제가 너무 반가웠다. 큰 고민 없이 수면제를 먹고 자는 날들이 늘어났다. 용량도 늘어났다. 반 알만 먹어도 쉽게 잠들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반 알이 한 알이 되었다. 


나는 약물 중독인가?!


당시 처방전에 나와있는 ‘졸피뎀’이란 약명을 알고 녹색창에 검색해 부작용도 알고 있었지만 모든 약은 부작용이 있기 마련이고 의사가 처방해 준 수면제니깐 망설임 없이 먹었다. 무엇보다 잠만이라도 편안하게 자야겠기에 간절했다. 그런데 매스컴에서 자살한 연예인이 복용한 수면제가 졸피뎀이고 해당 약물에 대한 부작용이 방송됐다. ‘마약성 향정신성 의약약품 졸피뎀’ 글로 읽던 부작용을 영상과 구체적인 사례로 접하니 덜컥 겁이 났다. 난 잠을 잘 자려고 먹은 건데, 단지 편안한 일상을 위해 수면제를 먹은 건데 내가 지금 마약을 먹고 있는 거야?! 하고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분명한 건 의사 처방에 따라 적정량을 복용하면 아무 문제없는 약임에도 불구하고 난 심리적으로 다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졸피뎀은 마약인가. 나는 약물에 의존하는 건가. 반 알 먹다, 한 알 먹고 약효가 떨어지면 또다시 용량을 더 늘려나가야 하나. 이게 중독인 건가. 마약성이라 중독되는 건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고민들이 이어졌다. 불안감을 없애려고, 잠을 잘 자려고 먹었던 수면제였는데 ‘졸피뎀’ 약에 대한 불안감으로 나는 잠식되고 있었다. 졸피뎀을, 수면제를 더 이상 먹고 싶지 않았다. 잠을, 일상을 약에 의존하지 않기로 했다. 설령 잠들지 못하는 밤이 나를 괴롭힐지라도 약을 중단하기로 결심했다. 공황장애 약이든 수면제든 단번에 끊기 어렵다. 경험상 서서히 한 알을 반 알로 줄이고 매일 먹던걸 이틀에 한번 삼일에 한 번씩 먹으며 텀을 길게 가져가면서 서서히 끊는다. 약은 잘 끊었지만 일상은 여전히 힘든 날의 연속이다. 그래서 오랜 고민 끝에 회사를 나오기로 결심했다. 내 일상을 온전히 나기 위해, 나 몸을 지키기 위해 일을 그만두기로 했다. 


일을 그만두는 것이 능사는 아니지만 당시 그냥 다 놓고 싶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회사를, 월급을 놓을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모든 것이 세팅이 되었고 내 결심만 있으면 언제든 그만두어도 되는 상황이었다. 한편으론 약까지 먹으면서 붙들고 있었던 내가 미련스럽게만 느껴졌다. 그러나 당시에 회사 월급은 나에게 든든한 뒷배였고 불확실한 미래에 지금 당장 가지고 있는 확실한 캐시카우였다. 회사 사람들이 늘 하는 퇴사 생각을 나도 오랫동안 생각해 왔지만 쉽게 놓지는 못 했다. 그런데 우습게도 긴 고민이었지만 '퇴사'를 입 밖에 내는 순간 모든 것이 일사천리였다. 다니기 싫었던 회사는 더 다니기 싫어졌고 가급적 빨리 마무리 짓고 싶었다. 그리고 사직서 저장과 상신 버튼, 클릭 몇 번으로 모든 것이 끝났다. 


이제 그만 안녕! 우리, 다시 보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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