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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이 9시간전

회사졸업 후 잃은 단어 : 신용

신용카드와 신용대출, 건강검진과 연말정산

회사를 졸업하고 나서 손쉽게 할 수 있었던 것들이 이제 더 이상 쉽지 않다. 회사 시절에 현금받고 발급받던 신용카드도 거절되기 일쑤니 대출은 말할 것도 없다. 매년 있던 건강검진도 연말정산 이벤트도 없다.


신용카드와 신용대출


신용카드와 신용대출! '신용'은 어디까지나 내가 회사에 소속되어 있을 때 하사 받는 단어다. 사내 인트라넷으로 클릭 몇 번만 하면 발급받을 수 있었던 재직증명서와 원천징수내역서. 회사가 담보해 주던 증빙자료는 더 이상 내게 없다. 그러니 회사를 나오면 더 이상 회사 신용을 담보한 카드 발급도 신규 대출이나 연장도 어렵다. 매번 연장하던 회사 담보 대출은 퇴사와 함께 만기가 도래하면 갚아야 한다. 혜자로운 신용카드로 갈아타고 싶어도 쉽지 않다. 자본주의 신용사회에서 회사는 언제나 나의 든든한 뒷배였지만 이제 나는 그 백을 등지고 나왔기에 기댈 수 없다. 더 이상 나의 신용은 손쉽게 담보되지 않는다. 나는 나의 신용을 증빙하기 위해 내 전재산 내역을 금융기관에 제출해야 한다. 내 모든 자산을 공개한다는 건 '지금까지 살면서 이만큼 모았어요.' 하고 검사받는 기분이다.  다시 있지 않을 일이지만 ‘퇴사’란 걸 다시 하게 된다면 나오기 전에 신용카드 발급과 신용대출은 연장하고 나오리라.


이젠 내돈내산 건강검진


때가 되면 회사에서 해주는 것들이 있다. 건강검진과 연말정산. 내 건강을 회사가 친히 염려해 주어 사전에 병이 있는지 관리해 준다. 나는 회사로부터 관리를 받던 사람이었다.  한 해는 피검사와 소변검사, 키, 몸무게, 시력, 청력 등 간단한 문진표를 작성해 진행되기도 하고 이듬해는 기본검사에 덧붙여 X-ray, 초음파, CT촬영, 내시경 검사까지 함께 해준다. 간단한 검사든 정밀 검사든 매년 진행되고 이상소견이 있으면 그에 따른 추가 검사와 진료를 본다. 갑상선 암을 조기에 발견한다든지 대장에 용종이 발견된다든지 간이나 폐에 문제가 있어 미리 발견하고 큰 병으로 가기 전에 조기 진료를 받을 수 있었던 동료들이 주변에 있었다. 회사 다닐 때는 검진이 빨리도 찾아와 귀찮기도 하고 이걸 매년 해야 하나 생각했지만 이젠 아쉽다. 물론 2년마다 국민건강보험 공단에서 나이에 맞춰 진행되는 기본검진은 받지만 가족력에 따라 특별히 받고 싶은 검진은 많은 추가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회사가 대신해 주던 검진들을 이젠 내돈내산으로 해야 한다. 내 몸은 내가 지켜야 한다. 


13월의 월급, 연말정산


연말 정산 역시 마찬가지다. 연초에 ‘연말정산’ 공지가 뜨면 사내 인트라넷에 간단히 입력하고 증빙자료들을 출력해 부서 내 담당자에게 제출하면 끝났다. 퇴직을 하고 나니 연말정산이란 게 없다. 물론 조삼모사이긴 하다. 월급에서 미리 세금을 많이 떼고 ‘나 이만큼 많이 소비했어요. 부양해야 할 가족들이 많아요. 세금 돌려주세요’를 증명해 선지급한 세금을 다시 돌려받는 게 연말정산인데 월급이 없으니 미리 떼 갈 것도 없고 돌려받을 것도 없다. 당연한 이야기고 유리지갑 월급쟁이가 아니라 강제로 세금 떼일 일은 없다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떼인 돈 다시 받는 이벤트가 없어져 아쉽다고나 할까?! 왠지 공짜로 받던 용돈을 못 받는 기분이다. 

 

회사 다니며 누렸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못 내 아쉽다. 그런데 회사 ‘신용’을 담보한 신용카드나 대출이나 좋은 말로 포장해 신용이지 자본주의 사회 상위 포식자인 금융기관에 이자를 따박따박 내어주는 일이다. 조금이라도 연체가 되면 더 많은 돈을 합법적으로 떼어간다. 물론 목돈을 대출받아 레버리지를 이용해 주식 투자나 부동산 투자를 해 더 큰돈을 벌 수는 있지만 어디까지나 성공했을 때의 일이다. 신용카드 역시 내가 안 쓰면 씀씀이가 줄어들어 가게 경제에 보탬이 될 일이다. 매번 회사가 대신해 주던 연말정산과 건강검진도 마찬가지다. 세금을 미리 떼일 일이 없어 다행이고 회사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경감되니 굳이 매년 건강검진 할 필요성도 낮아진다. 실제로 회사를 그만두고 약을 먹는 횟수가 줄었다. 세상만사 공짜로 손에 쥐어지는 건 없다. 공짜라고, 내가 품을 팔지 않아도 되던 것들은 어디까지나 회사가 일에 충성하라고 대신해 주던 것들이다. 


이젠 더 이상 아쉬워하지 말자. 잃어버린 단어 대신 더 큰 자유를 나는 얻었다. 

그럼 그것으로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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