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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이 Jul 10. 2024

경제적 독립 3 - 직장과 직업

직장은 놓고 직업을 보다

회사를 졸업하고 가끔 ‘회사를 대하는 나의 태도가 바뀌었더라면 더 오래 다녔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런데 가정이 틀렸다. 나는 ‘회사를 대하는 태도’가 아닌 ‘나를 대하는 태도’를 바꿨어야 했다. 스스로에게 내가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하며 살지를 질문했어야 했다. 회사 맞춤 인간이 아닌 나를 중심에 둔 삶을 고민했어야 했고 그 질문은 지금도 유효해야 한다. 나는 월급을 담보로 나의 시간을 회사에 종속시켰다. 그 종속관계가 사회적 소속감과 경제적 안정감을 주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 자신을 잃게 만들었다.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는 나. 내 경우에 그러했다. 


회사원이 되면 소원이 없겠네


무덤에서 요람까진 아니더라도 어린이집부터 시작해 초중고 공교육 사이클을 지나 대학은 선택이고 취준생(예비 회사원)이거나 회사원이 된다. 늘 어딘가에 소속되거나 되려고 존재했다. 소속(회사)을 물려받을 금수저도 아니고 그렇다고 창업을 할 만큼 용기도 없던 나는 이 회사 저 회사 이력서를 들이밀기에 바빴다. IMF시절 대학에 들어가 매년 초유의 취업난이라는 뉴스를 접하며 청년기를 보냈으니 어떤 문이든 취업 문턱을 넘는 게 중요했다. 아빠도 망하고 친구 아빠도 망하던 그 시절에 오로지 따박따박 월급만이라도 제때 나오는 안 망할 회사의 정규직이 되는 게 소원이었다. 자아 따윈 덮어 놓고 밥벌이가 중요했다. 당연했다. 밥은 생존이니깐.


직장인은 되었지만 직업인이 되진 못 했다


소원대로 회사원이 됐다. 회사원.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 이 단어에는 업(業)이 없다. 돈으로 치환되는 기술이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직장에 들어가 직장인이 되었지만 결과적으로 직업인이 되진 못했다. 물론 당시 커리어 패스를 고민하지 않은 건 아니다. 오프라인 CS기획 직무였고 그곳에서 경력을 쌓아 시장이 커지고 있는 온라인 CS기획으로 이직해 나의 업태를 전문화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함정에 빠져버렸다. 회사가 너무나도 좋았다. 책을 다루는 회사여서 좋았고 그 회사가 광화문광장 한복판에 있어서 좋았다. 업무 관련 책을 신청하면 바로 5분 거리도 안 되는 매장에 가서 책을 받아볼 수 있었고 퇴근 후 경복궁, 덕수궁, 삼청동, 북창동, 서촌 등 도심 속 골목길 산책을 맘껏 즐길 수 있어 좋았다. 연봉이 높진 않지만 안정적이고 문화 인프라(회사와 회사를 둘러싼 환경)가 좋아 오래도록 다녔다. 


직업 없이 직장을 떠나 생각해 본다


마흔을 넘기고 그렇게나 간절히 바랐던 회사를 나오고 보니 사무직으로 일했던 나에게 남는 건 아무것도 없다. ‘공부 못 하면 기술이나 배워’가 아니었다. 일평생 하고 싶은 일하며 잘 먹고 잘 살려면 결국에는 업(業)이다. 그렇다고 ‘직장에서 직업인으로 성장하기 위해 자기 계발을 했어야 했어!’, ‘왜 나는 커리어(내 업태)를 용도변경 내지는 확장하지 않았나.’ 따위의 늦은 자기반성과 후회를 논하고 싶진 않다. 지극히 평범한 인생 사이클을 돌다 보니 물길 따라가듯 그렇게 흘러갔을 뿐이다. 그런데 그 물길을 벗어나 뒤돌아보니 굳이 그 물길을 따라 살 필요가 없었단 생각이 든다. 물길은 여러 갈래였고 오대양육대주로 나아가는 거대한 물줄기도 있는가 하면 폴짝 뛰어넘을 수도 있는 작은 시냇물도 있다. 어떤 물 위에 떠갈지는 자기 몫이고 선택이다. 대학에 들어가며 첫 단추를 잘 끼웠다 생각했고 취업했을 땐 두 번째 단추도 잘 끼웠다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 나는 단추가 필요 없는 ‘티’만 입어도 되는 사람이었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단추 있는 셔츠를 입어 봤으니 하는 말일 수도 있다.


직장 떠나 직업을 꿈꾼다


‘회사 밖은 지옥’이라 했지만 나와 보니 지옥은 아니다. 감당할 수 있는 만큼 그릇을 선택하고 채우고 비우면 된다. 나에게 나만의 그릇을 찾는 게 중요하다.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더랩에이치 김호 대표의 말이 와닿는다. “인생을 여행에 비유하곤 하잖아. 나에게 중요한 건 자유여행이야. 사람들은 주로 패키지여행으로 삶을 시작해. 부모님이 짜준 루트, 학교가 짜준 루트, 직장 상사가 짜준 루트에 따라 살아가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어느 순간 패키지여행을 계속할 수 없는 순간이 와. 패키지여행은 질문이 필요 없지만 자유여행을 떠나려면 질문과 고민이 필요해. ‘어디로 떠날까?’ ‘무엇을 볼까?’ ‘뭘 타고 가지?’ 같은.”(톱클래스 인터뷰 내용 中) 결국엔 자의든 타의든 패키지여행은 끝이 나고 자유여행을 떠나야 하는데 자유여행을 어떻게 할지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내’가 있어야 한다.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 “무엇을 할 때 즐거운가?” 아이들을 키우며 하는 일상 언어이지만 내 삶을 두고도 열심히 물어야 할 질문이다. 그리고 그 물음과 실천이 “나를 성장시키는가?” 돌아봐야 한다. 성장기의 아이들처럼 쑥쑥 크진 않더라도 손톱만큼이라도 성장한다면 결국에는 시간과 함께 자란다. 지금 내가 글을 쓰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과연 내게 글쓰기가 업(業)이 될 수 있을까?! 그건 아직 모르겠다. 그냥 하는 거지 뭐. 지금 이 순간 글쓰기가 가장 즐겁고 행복하다. 가장 마음이 평안하고 온건하다. 그럼 하는 거지! 뭐 별거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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