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처음 걷기 시작한 것은 2년 전 즈음이었다.
지금은 은퇴하신 울 회사 전무님이
퇴근하면 운동삼아 시청에서 강남까지 뛰어다니신다는 말에 자극을 받아서 걷기 시작했다.
‘저 양반은 뛴다는데 나는 걷기라도 해 보자.’
그렇게 퇴근하고 집까지 어떤 날은 한 시간,
어떤 날은 한 시간 반을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산책로에서 나는 그동안 놓치고 지나쳤던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마주할 수 있었다.
벚꽃 잎이 만개하고 흩날릴 때뿐 아니라,
알고 보면 길바닥에 떨어진 꽃잎도 꽤 근사하다는 것을,
또 꽃이 다 지고 난 후에야 새파랗게 돋아나는 푸른 벚꽃 잎사귀가 반짝반짝 빛날 적엔,
어쩌면 그 잎사귀의 빛깔이 꽃보다 더 눈부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매일 차를 타고 지나치던 길이었는데,
그저 조금의 여유를 갖고 걷기 시작했더니,
지루한 퇴근길이 아니라 계절에 따라 형형색색 변화무쌍한 산책로가 되었다.
길을 걸으며 나는 생각했다.
“어쩌면 인생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똑같은 삶이라도 내가 어떤 태도로 사느냐에 따라서,
내가 어떤 관점으로 삶을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새로워질 수 있지 않을까.”
지난해 겨울 아내의 외도를 알게 되고,
이혼을 하면서 한동안은 걸을 수 없었다.
마음이 힘들어서인지
여유가 없어서인지 몰라도,
걸을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해방촌으로 이사를 한 뒤에야
나는 종종 마음이 내키면 뛰기 시작했다.
집에 혼자 덩그러니 있는 것보단,
뛰면서 땀을 흘리면 울적한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지곤 했다.
내가 주로 러닝을 하는 소월로는,
남산을 끼고 서울 전경을 내려다보며 걸을 수 있는 서울시내 최고의 산책로 중에 하나인데,
집에서 왼쪽 방향으로 달리면 남산도서관, 백범김구광장이 나오고 오른쪽으로 달리면 그랜드 하얏트 호텔이 나온다.
백범김구광장은 회사에서 점심시간에도 종종 한숨 돌리러 오는 곳이다. 탁 트인 전경에 사람도 많지 않은 곳이라 밤에 혼자 바람 쐬기에도 제격이다.
하얏트 호텔은 5성급 호텔로 워낙 고급호텔이라 숙박을 해보진 못했지만, 입구까지는 누구나 들어가 볼 수 있다. 잘 가꾸어진 조경과 호텔 전경을 즐기고 돌아오면 그것도 나름대로 재미가 있다.
달리면서 알게 되었다.
우울감이 사라지면 달릴 수 있게 되는 게 아니라,
그냥 달리다 보면 땀이 흐르듯 우울감도 함께 씻겨 내려간다는 것을.
숨이 차오르고 땀이 흐르고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로
열심히 뛰고 난 뒤에는 꽤 큰 성취감이 찾아왔다.
우울한 감정을 자연스럽게 흘려보낸 것,
혼자 걷던 길을 이젠 뛰기 시작한 것.
그리고 오늘도 땀 흘리며 최선을 다해 나 자신을 돌보고 가꾸어주었다는 사실에 나는 만족감을 느꼈다.
산책은 감정을 조용히 데려다주고,
달리기는 감정을 시원하게 날려 보내는 일이다.
땀을 흘리는 일은,
때론 복받치는 눈물 대신 몸이 울어주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슬픔과 절망에 빠진 그대여, 달려라.
신발 끈을 꽉 묶고, 가벼운 옷차림으로 힘껏 박차 올라라.
그리고 흠뻑 젖을 때까지 뛰어라.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때가 되면, 감정도 걱정도 불안도 다 잊게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