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다 보면 내가 쓰고 싶은 글과 내가 잘 쓰는 글 사이에 간극이 있다는 걸 느낄 때가 있습니다. 내가 쓰고 싶은 건 A라는 유형의 글인데, 어느 날 가벼운 마음으로 쓴 B라는 유형의 글에 폭발적인 반응이 올 때가 있어요. 저도 그런 적이 있거든요. 진지하게 공들여 썼던 글에는 별 반응이 없었는데, 설거지하다 갑자기 떠오른 단상을 휘리릭 써서 글쓰기 플랫폼에 올렸더니 반응이 뜨거웠던 적이 종종 있어요.
물론 스마트폰으로 글을 읽는 독자와 종이책을 읽는 독자의 반응이 꼭 일치하지는 않을 수 있어서 인터넷에 올린 글만으로 내 글의 장단점을 쉽게 단정 짓는 건 경계해야 하지만 어쨌거나 글을 쓴다는 건 기본적으로 누군가와의 소통을 전제로 한 행위이기에 묵묵부답처럼 반응이 돌아오지 않는 글보다는 피드백이 많은 글을 쓸 때 더 힘을 얻지요.
저는 아이들 키우며 엄마로 느끼는 복잡한 감정을 자주 썼어요. 어깨에 힘주지 않고 술술 썼는데 제가 읽어도 재밌더라고요. 독자들에게도 인상적인 글이란 평가를 받았고요. 하지만 그 점이 고민스러웠어요. 첫 책을 내고 나서 엄마 이야기에서 좀 벗어나고 싶다고 생각했거든요. 첫 책은 엄마 이야기로 꽉 찼지만 뭔가 소재가 더 확장되어야 할 것 같고, 독자층도 확대되어야 할 것 같고, 그런 초조함을 느꼈어요. 엄마 이야기로 머문다는 게, 제 입장에서는 노력하지 않고 안주하는 것과 동일시됐어요.
마침 출판사에서 오랜 기간 일해온 에디터 님을 만날 기회가 있어서 이런 고민을 말씀드렸더니, "새로운 독자층을 확보하는 것보다는 있는 독자층 잘 데려가시는 게 먼저예요"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때는 그 의미가 썩 다가오지 않았어요. 일단 제게 독자층이 있는지도 확신할 수 없었고, 작가라면 다양한 독자를 만나기 위해 노력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런데 저도 모르게 글을 쓰다 보면 자꾸 엄마 이야기를 쓰고 있더군요. 아이가 어릴 때는 초보엄마로서 수없이 겪었던 시행착오 이야기, 아이가 사춘기에 접어든 다음에는 더 이상 물리적으로 힘들지는 않지만 마음이 힘들고 지치게 되는 부모 이야기, 그럼에도 아이도 나도 하루하루 성장해 가는 이야기, 그런 것들을 자꾸 쓰게 되는 거예요. 출간도 중요하지만 평소 글쓰기로 독자와 소통하는 일도 소홀히 할 수 없기에 글쓰기 플랫폼에 꾸준히 글을 썼거든요? 마음은 '엄마' 말고 다른 걸 써야겠다고 외치고 있었지만 손은 '엄마' 이야기로 지면을 한가득 채우고 있었어요.
출판계에 근무하는 분에게 우연찮게 기획을 상의한 적이 있었는데 역시나 비슷한 피드백을 받았어요. 제가 드렸던 기획서도 나쁘지는 않은데, 기획서에 있는 이야기보다 제가 출산과 육아에 대해 한참 수다처럼 풀어놓은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다며 왜 육아서나 자녀 교육서를 쓰지 않냐고 하시더군요. 육아서라니. 실용서는 생각해 보지 않았기에 처음으로 자신에게 질문을 해 봤어요. 나는 왜 육아서는 일단 안 쓰겠다고 마음먹은 걸까?
일단 일반인이 쓴 육아서나 자녀교육서 중에 '이렇게 저렇게 하면 착하고 반듯한 아이가 되어 명문대에 간다'는 주제가 많았다는 점이 걸렸어요. 저는 그런 면에서는 딱히 조언해 줄 게 많이 없고, 자칫 자녀의 성취를 내 성과처럼 앞세우게 되지 않을까 염려스러운 마음도 들었습니다. 아이들이 더 이상 유아가 아니고 청소년, 성인인 점도 고려하지 않을 수가 없고요.
두 권의 책을 내는 동안, 아이 이야기가 나오는 챕터는 반드시 아이가 미리 다 읽었어요. 부모라고 해도 어느 정도 철든 아이 사생활을, 당사자의 동의를 받지 않고 막 쓸 수는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게다가 책에 아이들 이야기가 많이 나오면 혹여나 '우리 엄마가 내 이야기로 책도 냈는데 내가 더 잘해야 하지 않나'와 같은 부담을 느낄 수도 있으니 조심스러웠습니다.
제가 이런 걱정을 비쳤더니, 저에게 육아서 쓰기를 추천했던 그분이 육아서라고 해서 반드시 결과 중심으로 접근할 필요는 없지 않느냐, 지금 하신 이야기만으로도 많은 엄마들에게 위로도 되고 도움이 될 것 같다고 하시더군요. 그러고 보니 제가 예전에 온라인 카페에 올리는 일상 이야기에 댓글이 우수수 달리고 늘 '인기글'로 올라갔던 기억이 났어요. 본격적으로 작가가 되기 이전에도 아이들 키우면서 드는 여러 단상을 정리해서 올리곤 했는데 많은 분들이 같이 울고 웃으며 공감해 주셨어요.
비로소 저에게 질문하게 되더군요. 나는 왜 엄마 이야기에서 벗어나고자 했을까? 나부터도 엄마란 자리를 변방으로 밀려난 주변인처럼 생각했던 거 아닐까? 사회적 성취에 대한 열망이 높았던 만큼 상실감이 컸던 것도 맞아요. 스스로 선택해서 전업주부가 되었다기보다 일과 가정을 양립하기 어려운 환경에서 떠밀리듯 착석했던 '엄마' 자리였으니 한동안은 정이 가기 어려웠던 것도 맞고요. 그러나 아이들을 키우면서 내가 참으로 많이 성장했다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어요. 여성이 아직도 사회적인 일을 하기 어려운 환경은 개선되어야 한다는 논의와는 별개로, 의외로 내가 '엄마' 자리에 꽤나 만족하고 그 자리를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는 걸 인정해야 했어요.
문장 사이사이로 엄마란 자리를 사랑하는 내가 나타나기 시작한 거예요. 어떻게 보면 엄마 자리에서 벗어나고자 시작한 글쓰기였는데, 쓰다 보니 엄마 자리를 공고히 해주는 글쓰기가 됐어요. 참 멋지지 않나요. 쓰다 보니 내가 머문 자리를 사랑하게 되는 글쓰기라니. 그래서 '내가 쓰고 싶은 글'과 '내가 잘 쓰는 글' 사이에서 고민하는 분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씀은 일단 가리지 말고 쓰라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