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처음 만난 것은 독서클럽의 번외 모임이었다. 나는 2016년부터 매주 한 번씩 열리는 독서토론 모임에 꾸준히 참석해 온 4년차 회원이었다. 활동을 오래 하다 보니 많은 회원들과 친분이 쌓였고, 특히 더 가까운 이들도 더러 있었다. 그 번외 모임은 친하게 지내는 회원의 초대를 받아 참석한 집들이 자리였다.
바람이 쌀쌀하지만 어떻게든 봄의 기운을 느껴보려 애쓰던 3월 초였다. 겨울 내내 일에 완전히 파묻혀 지내느라 그토록 좋아하는 독서토론 모임에도 자주 나가지 못한 채 몹시 지쳐 있었다. 그런데 라디오에서 <벚꽃 엔딩>이라던가 <봄이 좋냐?> 같은 봄을 알리는 노래들이 슬금슬금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듣자마자 ‘벌써?’라는 생각이 스쳤지만, 이내 ‘조금 이르지만 많은 이들이 설레는 마음으로 봄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겠지?’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겨울보다 햇살이 한결 따뜻해져 당장이라도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만나 웃고 떠들며 신나게 놀고 싶었다. 그런 때에 마침 집들이 초대를 받았고, 마다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초대를 받을 때는 모두가 아는 회원들만 참석하는 편안한 자리라고 들었지만 약속 장소에 가보니 낯선 얼굴이 한 명 있었다. 나를 초대한 이후 새롭게 초대된 회원이었던 것이다. 어색하게 인사를 나눈 후, 우리는 일단 집으로 들어갔다. 신축 아파트라 입구부터 반짝반짝 새 것의 느낌이 가득했다.
우리는 집들이라는 명목에 걸맞게 집들이 선물을 건넨 뒤, 집주인의 안내를 받으며 ‘우와~’를 연발하며 집 구경을 잠깐 했다. 그런 다음 식탁에 둘러앉았고, 본격적인 파티가 시작되었다! 술은 와인, 안주는 회와 다과로, 괜찮은 조합이었다. 특히 화이트 와인이 유독 맛있었는데, 그것은 모르는 사람이 집들이 선물로 가져온 것이었다. 그 덕분에 그 사람에 대한 호감과 관심이 조금 상승했다.
그날은 이상하게 약속에 가기 전부터 술이 당기던 데다, 술맛까지 마음에 들어 나는 홀짝거리며 와인을 계속 마셨고, 그러는 사이 앉은 자리에 따라 자연스레 대화가 나뉘었다. 우리는 총 여섯 명이었는데, 식탁 앞쪽에 앉은 두 사람과 중간에 앉은 두 사람이 어느새 그들만의 대화에 빠져들어, 식탁 끝에 앉은 나와 낯선 사람만 남게 되었다. 그렇게 되니 우리도 멀뚱히 앉아만 있기는 뭐해서 아무 말이나 하며 대화를 시작했다. 그게 나와 남편의 첫 대화였다.
모르는 사람과 대화를 나눌 때는 일단 공통의 관심사를 빠르게 찾아야 어색한 침묵의 불상사를 피할 수 있다. 그래서 그가 가져온 화이트 와인에 대한 호감으로 말문을 열고, 좋아하는 책이나 영화 등을 소재로 일반적인 이야기를 나누며 공통의 관심사를 찾으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그러다가 현재의 관심사로 넘어갔을 때 드디어 우리의 대화를 길게 이어 줄 공통의 관심사가 나타났다.
그건 바로 ‘심리학’이었다. 나는 대학에서 심리학을 부전공으로 택했을 정도로 심리학에 깊은 관심이 있었기에, 요즘 그가 심리학에 흥미를 느끼고 있다는 말을 듣고 무척 반가웠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물었다. “어느 학파 좋아해요?” 그러자 그는 “로저스요.”라고 답했다.
“어? 로저스면 인본주의 심리학이죠? 공감과 수용 같은 개념을 중요시하는.”
“네. 맞아요.”
“왜 로저스를 좋아해요?”
“인간을 가능성이 있는 존재로 바라보니까요.”
한 번 관심 있는 주제가 겹치자 할 말이 넘쳐나, 우리 둘의 대화는 집들이가 끝날 때까지 거의 끊임없이 이어졌다.
뜻밖의 인물을 만나 바람대로 신나는 하루를 보낸 후,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기브 앤 테이크>를 구입해 읽었다. 이 책은 몇 주 후에 있을 독서토론의 지정도서로, 그가 자신이 추천한 책이니 올 수 있으면 참석하라고 했기 때문이다.
가고 싶어 이미 책을 읽는 중이면서도 고민이 됐다. 사실 굉장히 많은 회원의 얼굴, 아니면 이름이라도 알던 내가 그를 모르던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독서토론 모임은 수요일과 토요일, 주 2회 진행되는데, 나는 매번 토요일에 참석하고 그는 항상 수요일에 참석해 서로 마주칠 일이 없었던 것이다. 직장인인 나는 퇴근 후 참석하는 것이 부담스러워 여유로운 토요일 오후 모임에만 참석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권한 모임은 당연히 수요일이었다.
그 당시 대화가 통한다는 느낌이 드는 상대를 찾기가 너무 어렵고, 내가 좋아하는 주제로 즐겁고도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상대가 턱없이 부족해 외로웠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대화가 즐거운 상대가 절실했다. 그랬기에 만나자마자 신나게 대화를 나눈 그에 대해 호기심이 생겼고, 독서토론에서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졌다. 하지만 참석하고 싶다가도, ‘평일인데 괜찮을까?’라는 생각에 마음이 갈팡질팡했다.
그러던 차에 모임 며칠 전 그에게 메시지가 왔다. “내가 말한 독서모임에 올 거예요?” 한참 만에 온 연락이었고, 메시지가 따로 올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에 의외였다. 하지만 반가웠다. 또, ‘그때 나눈 대화가 나만 좋은 게 아니었구나.’라는 생각에 기뻤다. 그래서 “네, 갈 거예요.”라고 답하며 마음을 완전히 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