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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LAWRIKER Oct 28. 2020

'베네펙턴스'의 역설(逆說)

어느 샐러리맨의 우울 #12.

매년 연말이 되면 '인사평가'라는 명목으로 직원들의 성과에 대한 줄 세우기가 시행된다.


연초에 '핵심성과지표'라고 불리는 그럴싸한 목표를 세워놓고는 이를 기반으로 목표대비 얼마나 달성했는지에 대한 평가를 하는 것. 그것이 바로 매년 똑같이 자행되는 '인사평가'의 된 골자다.

어떤 이는 좋은 결과에 만족하는 반면, 누군가는 형편없는 결과에 불만을 가진다.




언젠가 팀 막내의 '인사평가'를 위해 공적서를 검토해준 적이 있다.

입사한 지 2년밖에 되지 않았던 터라 이런 방식의 평가가 낯설 것을 염려해 직속 선배인 나에게 지시가 떨어졌는데 그의 공적서 내용은 황당함을 넘어 실소를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그가 작성한 공적서에는 지난 1년간 팀에서 진행된 프로젝트가 하나도 빠짐없이 빼곡하게 열거되어 있었고, 모든 프로젝트에서 본인이 주요한 업무를 수행하였음으로 명기되어 있었다.


물론 팀 막내가 모든 업무에 참여한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 업무에 대한 자기 역할에 대해서 지나치게 확대 해석한 면이 어딘가 눈에 거슬렸다.

'내가 한 일에 대해서는 과하면 과했지 조금의 손해도 보지 않겠다.'

마치 자신의 성과에 대해 한 줄이라도 더 채워 넣어야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 듯 그의 공적서는 숨 쉴 틈 없이 촘촘하고 빽빽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노력에 비해 딱히 인상적이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베네펙턴스 현상(Beneffectance Effect)'이라는 것이 있다.

선행·자비심을 뜻하는 'beneficence'와 결과·효과를 뜻하는 'effectance'의 합성어로 여러 사람이 모여 일을 하는 경우 그 일이 성공하면 자신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생각하는 반면, 일이 실패하면 남의 실책 때문이라고 생각하거나 자신의 역할을 축소시키는 사고방식을 말한다.

'잘되면 내 탓, 안되면 네 탓'으로 이해하면 쉬울 듯하다.


만일 당신의 업적 평가서에 성공적으로 마친 프로젝트에 대한 내용을 넣었다면 당신뿐 아니라 함께 일한 다른 동료들도 동일한 내용을 자기 업적 평가서에 넣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더 수려한 미사여구를 동원하여 자신의 성과를 어필하려고 할지 모른다.


인간은 자신의 인식과 행동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왜곡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는, 자기 존중과 사회적 인정의 욕구에서 기인한 것인데 '베네펙턴스 현상'은 일종의 자기기만이 확장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 하게도 정작 좋은 평가를 받는 직원들은 공적서 작성에 열을 올리지 않는다.


누구는 올해 승진 대상자여서...

누구는 작년에 좋지 않은 평가를 받았으니...

누구는 내 말을 잘 들으니까...


그들은 인사 평가자와 단단한 유대관계를 맺고, 이미 예측 가능한 평가 결과로 마음의 여유를 누린다.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기준이 아닌, 인사 평가자의 주관적 의사 판단에 근거한 평가 시스템은 이미 그 순기능을 상실했으며 의사결정층의 권한을 유지하는 도구로 전락한 지 오래다.

공정한 '인사평가' 시스템의 부재는 자신의 성과를 조금이라도 더 어필하려는 '베네펙턴스 현상'을 가속화시키고 있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수혜는 평가자와 비밀스러운 침묵을 유지하는 자들에게 돌아간다.




무엇이 회사를 망치는가?

과거의 불합리한 답습을 마치 자연스러운 권한의 이양처럼 고수하고 유지하려는 안일함이 결국, 회사를 파탄에 빠뜨린다.


지금의 '인사평가' 시스템은 유능한 직원의 이탈 앞에서 무력하고, 조직의 영속성을 부르짖는 절박함 앞에서 참 보잘것없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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