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7월 말, 한여름 밤의 이야기다.
미국에 사는 큰 시누이가 방학이라고 아들과 두 딸을 데리고 들어왔다. 큰 시누이는 내 남편보다 여섯 살이 많다. 남편은 네 살 터울인 작은 누나와는 막역한 사이였지만 큰누나와는 별로 친하지 않았다. 내 눈엔 누나와 동생이라기보다 아주 먼 친척 같아 보였다. 우리가 결혼할 때도 큰 시누이는 결혼식에만 잠깐 참석했기 때문에 나도 거의 얘기를 해본 적이 없었다.
큰누나가 큰 맘을 먹고 아이들을 데리고 방학을 지낸다니, 시댁 식구들은 한 번쯤 가족여행을 가야 한다고 했다. 난 둘째를 임신한 상태였다. 임신 초기에 유산기가 있어서 5월까지는 내내 누워있었고, 6월부터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조심할 때였다. 하지만 모두가 함께해야만 하는 분위기였다.
시댁 일에 있어서 개인적인 사정 같은 것은 내밀 틈이 없었다. 어머니가 정하면 무조건 따르는 일이 허다했다. 그래도 소심한 겁쟁이였던 나는 겁이 나서 산부인과에 가서 의사 선생님께 여쭤봤다. 담당의 선생님으로부터 안정기에 접어들었으니 크게 무리하지 않는다면, 다녀와도 괜찮다는 확답을 받고서야 함께 가기로 했다.
그때만 해도 여름엔 무조건 설악산을 거쳐 동해안에 가는 게 최고 휴가였다. 시부모님과 형님네 가족이 시누이들 가족과 먼저 떠났다. 남편은 3교대로 근무를 했다. 그날은 오후 근무라 밤 열 시가 다 돼서야 퇴근했다. 늦은 시간이라 퇴근 시간에 맞춰 아이를 먹여 재우고, 가방을 다 싸놓고 남편을 기다렸다. 남편은 집에 오자마자 작업복만 갈아입고 바로 차에 시동을 걸었다.
지금 같으면 잠을 자고 다음 날 일찍 출발하겠지만, 그때만 해도 우리는 청춘이었다. 온 가족이 강원도로 휴가 여행을 간다는데 밤 10시가 대수냐며, 한시라도 빨리 가야 한다고 서두르는 남편을 난 어쩌지 못했다. 운전사 마음대로니 뭐.
지금은 강원도까지 고속도로가 뻥 뚫려서 설악산에도 두 시간 정도면 간다. 그때는 국도를 타고 갔는데, 아무리 빨리 달려도 서너 시간은 족히 걸렸다. 게다가 아이가 깨서 화장실이라도 찾으면 중간중간 쉬어야 하니, 아무리 서둘러도 새벽에 도착할 터였다. 하지만 한번 마음먹으면 그대로 해야 직성이 풀리는 남편을 말릴 재간이 없었다.
7월 말 극성수기라 차가 밀릴까 걱정했지만, 시간이 늦어서인지 도로는 별로 붐비지 않았다. 아이도 생각보다 잘 자고 있었다. 남편과 나는 예상보다 일찍 도착하겠다며 들떠있었다.
강원도에 가까워지면서 도로가 점점 좁아지더니, 산길에 접어드는지 길도 울퉁불퉁해졌다. 가로등도 없이 자동차 전조등에 의지해서 가다가 갈림길에서 잠시 고개를 갸웃하던 남편이 앞서가던 차를 따라 달렸다. 우리 뒤에도 차가 오길래 맞다고 생각했다. 그때는 내비게이션이라는 신적인 존재가 없어서 출발하기 전에 지도책을 보고 길을 익혔다. 표지판을 제대로 읽지 못해 길을 잘못 들 때도 많았다.
그 밤 산길에서는 표지판도 없는데 갈림길이 나왔으니, 앞차를 의지해 갈 수밖에 없었다. 잘 가던 앞차가 갑자기 속도를 줄였다. 남편도 따라서 속도를 줄였다. 앞차가 멈췄다. 우리도 따라 멈췄다. 뒤따라오던 차도 멈춘 것 같았다. 무슨 일인가 싶었다. 앞 차 문이 열리더니 운전하던 사람이 내려서는, 우리 차 쪽으로 다가왔다. 뒤차에서도 사람이 내려 우리 차 쪽으로 걸어왔다.
그 순간 머리가 쭈뼛 섰다. 가로등 하나 없는 캄캄한 산길에서 차들이 멈추더니 두 남자가 내려서 우리 차로 다가왔다. 나는 잠든 아이를 안고 벌벌 떨었다. 온갖 상상이 머릿속을 휘젓고 다녔다. 당시 인기리에 방송되던 MBC 텔레비전 프로그램 “이야기 속으로”가 생각났다. 시청자들이 경험한 일들을 다시 엮어서 만들었는데, 전설의 고향처럼 오싹한 이야기들이 많았다. 한밤중 산길에서 생면부지의 시커먼 남자 둘이 앞뒤에서 다가오니 그렇게 무서울 수가 없었다.
‘가진 돈 다 털리고 줄에 묶여서 감금당하는 건 아닐까?’
말로만 듣던 인신매매단에 걸린 거라고, 어쩌냐며 달달 떨면서 남편에게 우리 이제 어쩌냐고 했던 것 같다. 목숨은 살려줄까? 뱃속 아기가 세상 빛도 못 보고 떠날까 봐 얼마나 가슴을 졸였는지 모른다. 남편에게 절대로 차 문 열지 말라고 몇 번이나 얘기했다. 하지만 그 남자들이 차 유리창을
똑! 똑! 똑!
두드리자,
남편은 곧바로 창문을 내렸다. 버티지 못하는 남편이 미웠다.
‘이제 어떡하지?’
가슴이 조마조마하다 못해 벌렁벌렁 댔다.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하는데 자꾸 정신줄을 놓으려 했다. 1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나는 생사를 오가는 고민에 빠져있었다.
알고 보니 두 사람 모두 길을 몰라,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물어보려고 우리에게 온 거였다.
앞 차가 섰던 이유는 더 이상 갈 곳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공사를 하려는지 나무와 돌이 엄청 많이 쌓여있다고 했다. 뒤차는 우리 차가 서니, 영문도 모르고 섰던 거다. 한참 이러니 저러니 이야기하더니 다들 자기 차로 돌아갔다. 우리 뒤에 섰던 차가 먼저 차를 돌려 나가고 다음엔 우리, 그리고 우리 앞 차도 우리 뒤를 따라 그 좁은 길을 빠져나왔다. 나오면서 찬찬히 보니 공사장 물건을 나르려고 임시로 만들어 놓은 좁은 길이었다. 운전자 한 명이 헷갈리니 서너 대의 차가 뒤따랐던 거다.
허무하게 끝나긴 했지만, 그 순간을 떠올리면 여전히 심장이 쿵쿵쿵 달린다. 우리는 설악산 가는 길에서 진짜 ‘이야기 속으로’ 빠질 뻔했다. 그 아찔했던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후기: 아기는 그 난리에도 깨지 않고 콜콜 잘 잤답니다. 뱃속 아기도 별 탈 없었습니다. 말은 안 했지만 남편도 그때 꽤나 놀랐나 봅니다. 그다음부터 더 꼼꼼히 지도를 보고, 길을 잘 살피고 다닌답니다. 앞으로는 한밤중에 모르는 사람을 만나 차 문을 여는 일은 절대로 없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