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이 글을 쓰는데 또 가득 불쾌한 감정이 올라온다. 아빠와 이런 대화는 20년째 반복 중. 1,2주에 한 번이라도 안부전화를 하면 이런 소리 들을 일이 없는데 아빠가 원하는 대로 해 드리는 못(?)안(?)하는 나나, 20년째 그런 딸의 마음을 읽지 못하고 굳이 꼭 한마디를 해야 하는 아빠(&할머니&고모&작은 아빠)나.. 용호상박 막상막하 도찐개찐. 아빠의 이런 타박을 들을 때마다 한결같이 요동치고 벌게지는 심장은 왜 익숙해지지도 않는지. 핸드폰에 고모나 할머니 이름만 떠도 심장이 벌렁거리며 온몸이 긴장되고 통화 후에는 한마디한마디를 곱씹으며 깊은 우울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증상이 결혼 이후 10년 넘게 지속됐었다.
생일을 축하하긴 해야겠고, 안부전화 없는 딸이 괘씸하긴 하고, 괘씸한 마음을 표현 안 할 순 없고. 한때는 먼저 저런 문자도 안 보내셨는데 나이가 드셔서 좀 약해진 게 이 정도다. 나라고 미주알고주알 힘든 일 있거나 애들 소식 있을 때 왜 전화하고 싶지 않겠는가. 누구보다 먼저 알리고 싶고 누구에게든 얘기하고 싶다. 어릴 적 내가 무섭다고 말하고 싶을 때, 엄마가 보고 싶다고 하고 싶을 때, 학교 일을 미주알고주알 얘기하고 싶을 때 내 곁에 누가 있었던가. 말하지 않고 사는 법을 배워야 했다. 그래야 살 수 있었다. 내 고민을 상담할 만큼 아빠가 친밀하거나 기댈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왜 이제 와서 나에게 보통의 딸들이 하는 역할과 의무를 바라시는 건가.
몇 년 전 용기를 내어 아빠에게 내 마음을 조금 내 비친 적이 있다. 언성을 높이다 "아빠가 딸한테 그런 말도 못 해?"라고 소리치시는데 너무 놀랐다. 아빠는 나랑 그런 말을 나눌 수 있는 사이라고 생각하는구나. 하기사 아빠는 자기 나름으로 우리를 끔찍이 여기는 건 있었다. 사골 국 해준다고 한솥 끓이다가 허벅지를 데기도 하셨고 밤에 집에 들어왔을 때 초등생인 내가 잠들어 있으면 번쩍 안아 아빠 옆자리에 옮겨놓고 주무시기도 했다. 아빠 집은 경기도여도 반대편 서울 변두리에 사는 언니와 나를 매번 집까지 데려다주고 가셨었다. (당연한 건가?)
머리로는 알겠다. 아빠도 인생이 녹록지 않았을 거다. 이혼도 처음이었고 아빠도 처음이었다. 가부장적이고 유교적인 할머니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자신과 아내와의 상황이 힘에 겨웠을 거다. 누나와 엄마 그리고 딸들 사이에서 어떻게 해야 될지도 몰랐을 거고 그래서 밖으로 나돌았을 거다. 어떻게든 한 푼이라도 벌어보려고 했을 거다. (그랬겠지?)
아빠가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건 알겠는데 어린 시절 어둠 속에 혼자 견뎌야 했던 그 시절의 나는 어떻게 하지. 할머니와 고모의 눈치를 보며 사랑받지 못할까 전전긍긍하고 주눅들며 자라지 못한 내면은 어떻게 해야 할까. 마흔이 된 지금 더 이상 부모 탓만 하는 건 아니라고 하는데, 상처에 새살이 돋지도 않았는데 '응당 바람직한 딸의 역할, 의무'란 옷을 자꾸 입으라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 상처가 쓸려서 아프다.
아빠가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건 알겠는데 나는 아팠고 지금도 아파요.
VS
지나간 과거를 왜 자꾸 곱씹니 앞을 봐야지 그래도 우리가 부모고 딸인데 기본이란 게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