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랑 소리도 없고 수염 하나 씰룩거리지 않는다.
몇 분이 흘렀을까. 웅얼웅얼 말소리가 피어오른다. 티브이 소리다. 심장이 쿵쾅거린다.
"가.. 저리 가.."
들릴 듯 말 듯 말끝을 흐리며 손을 휘저어본다.
움찔도 않는 녀석. 마치 다 알고 있는 거 같다.
너, 혼자지?
범죄도시 마동석처럼 "어 아직 싱글이야" 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빤히 서로 쳐다보며 눈을 깜빡이지 않는다. 눈물이 자꾸 차오른다. 후들거리는 다리에 힘을 주어 뒷걸음질 친다. 다행히 따라오진 않는다. 엉거주춤 전화기까지 왔다. 휴. 누구한테 전화를 걸지.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누굴까. 아빠나 언니와 연락할 방법은 없고 엄마는.. (따로 산지 오래다) 하는 수 없이 할머니에게 전화를 건다. 이럴 때 전화할 사람이 할머니밖에 없다니.
"여보세요"
애정 어린 관계가 아니라 해도 할머니 목소리를 듣자 울음이 왈칵 쏟아졌다. 엉엉 울음을 터트리며 고양이가 들어왔다고 알렸다. 그런데 이게 웬걸. 할머니는 깔깔 웃으시며 아주 재밌어서 숨이 넘어가신다. 무슨 일이지, 내 생에 이렇게 혼자이고 두려운 순간일 수가 없는데 할머니는 왜 심각하지 않으실까. 아마도 무서워하는 내가 귀여워서 웃으신 거 같은데 아무리 귀여워도(?) 손녀가 그렇게 울면서 공포에 떠는데 숨 넘어가게 웃다 별일 아닌 듯 내쫓으라는 말만 하고 끊어버리시는 건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별 소득 없이 통화를 끊었다.
내가 알아서 해야 하는구나. 아무도 날 도와줄 사람은 없구나. 인생은 혼자구나.
열세 살은 깨달았다.
결혼식 전날 울며 불며 새엄마 VS 친엄마를 결정해야 할 때도 아무도 도와줄 수 없었다. 고개를 빳빳이 들고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입장해야 했던 예식장에서도 나는 혼자였다. 아이를 출산하고 완모를 할 때도 아무리 몸이 천근 같고 불타는 듯 아파도 젖은 오로지 나에게 있었고 나만 먹일 수 있었다! (강박과 젖량 때문에 분유는 먹이지 않았다) 새벽에 2,3시간마다 깨서 1시간씩 아이에게 젖을 물리는데 끝날 것 같지 않은, 잠을 깊이 못 자는 고통 속에서 오롯이 나 혼자 감당해야 하는 일임을 깊이 체감했었다.
영원할 것 같은 시간을 응시하다 스윽 사라진 검은 고양이.
어쩌면 이렇게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 반지하 회색빛 그곳의 나에게
너, 혼자 아니야
내가 널 보러 왔어
할머니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본다. 전화를 받아주심으로 사람 목소리를 들려줘 안도하게 해 주셨다. 엉엉 울 수 있게 상대가 되어주셨다. 깔깔 웃으심으로 어이없게 해 공포가 무색해지게 하셨다. 부디 이것이 할머니의 숨은 의도였기를. 지금은 하늘에 계셔서 다시 물어볼 수도 없다. 할머니 그때 이 말이었지요?
그냥 웃어넘겨
이까짓, 별일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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