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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썰티마커 SALTYMARKER Feb 20. 2024

맛집으로 유명한 문수암 템플스테이에서의 1박 2일

 

문수암은 지금 템플스테이를 하는 절 중 가장 작다고 한다. (정확한 규모는 모르겠지만 다른 작은 규모의 템플스테이도 있는 것 같기는 하다.)


문수암 전경. 우측에 동자승이 털모자를 쓰고 있다.


문수암은 두 분의 비구니 스님이 계신 곳으로 스님의 성향 때문인지 가족적이고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특징이다. 손님들이 차를 마실 수 있는 공간인 지리산 옹달샘도 아기자기하게 잘 꾸며져 있고, 공양을 하는 곳도 나무색으로 잘 꾸며져 있다. 암자의 마스코트인 보리(리트리버)와 복이(흰색 개)도 따뜻한 분위기에 한몫을 하고 있고, 손님을 맞이하는 꽃비마당도 바닥에는 흰색 털이 아늑하게 깔려 있었다.     


각종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꽃비마당


템플스테이를 다녀보면 절마다 시설이나 분위기, 음식이 다 다르다. 마치 집집마다 인테리어나 가족의 분위기, 먹는 음식이 다르듯이 절도 마찬가지다. 절로써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불상이라든지 예불, 복장 등은 비슷하겠지만 그 외의 것들은 주인이 하기 나름이다. 그런 면에서 문수암은 내가 가본 템플스테이 중에서 기억에 남을 절임에는 틀림없다.     


공양을 할 때 반찬도 절마다 다 다른데, 문수암에서의 저녁 공양도 정갈하고 세련되게 잘 나왔다. 호박 튀김, 새콤달콤한 샐러드, 명이 나물, 시원하고 깔끔한 김치, 토마토와 계란이 잘 어우러진 반찬, 고명이 올라가 있는 두부구이, 파인애플 등 화려한 색깔의 반찬들이 우리의 저녁을 맞이해 주었다.     


저녁 공양 반찬들


우리가 새해 첫 손님이라고 하였는데 1주일 동안 템플스테이를 하지 않고 쉬었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스님들도 우리에게 각별한 애정을 갖고 대해 주었고, 법당에서 좋은 음악과 내레이션을 들으며 108배를 하고, 꽃비마당에서 명상도 하고 스님이 스님이 된 이야기를 듣기도 하였다. (아마도 그 이야기는 갑자기 생각이 나서 특별히 해 주신 것 같다. 아끼던 분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출가의 계기가 되었고, 50세에 인도 갠지스 강에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진 이야기가 인상 깊었다.)     


‘나’는 고정된 ‘나’가 없고 항상 변화한다는 이야기와 지나간 과거에 너무 얽매이지 말고 오지도 않은 미래를 너무 불안해하지 말고 현재를 살라는 이야기도 반짝이는 별빛과 함께 들었다.    


어둠이 깔린 문수암 대웅전의 모습

      

다음 날은 새벽 4시 반에 눈을 떠서 5시에 새벽 예불에 참석을 하고, 아침 공양을 하였다. 아침 공양은 다른 절들과 다르게 직접 내린 원두커피와 토스트를 먹는데 토스트와 같이 먹는 샐러드가 스님이 공을 들인 것이었다. 임금님께 진상되었다는 지리산 감으로 소스를 만들었다며 저녁과 점심은 안 먹더라도 아침은 꼭 먹어보라는 스님의 말씀이 있었다. 전날 저녁을 먹은 지 12시간이 넘었기 때문에 아주 맛있게 잘 먹었다. 템플스테이를 담당하는 직원분이 직접 내린 커피도 부드럽고 맛있었다.      


다른 절들과 다른 색다른 아침 공양


아침 공양을 한 뒤 우리는 바보 숲길 걷기 명상을 하였다. ‘바보’라는 말은 ‘바라보기’의 준말이다. 나를 바라보는 시간을 가지라는 의미인 것 같았다. 예전에는 보리가 손님을 인도하고 다녔다고 하는데 지금은 10살로 나이가 많이 든 데다가 70kg에 육박하는 몸무게 때문에 관절이 좋지 않아서 못 간다고 하였다. 대신 직접 그린 지도를 주시면서 손님들이 직접 찾아가게 하였다. (보통 다른 템플스테이에서는 스님이 같이 가기도 하고, 실무자분이 인도하기도 하는데 손님들끼리 가는 것도 재미가 있었다.) 나는 와이프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걸었다. 부부와 함께 온 꼬마 아이들이 장난을 치면서 우리 앞에 걸어갔다.      


갈림길이 나오면 왼쪽으로만 가는 게 포인트!


걷기를 하고 오니 처음에 서먹서먹하던 보리가 갑자기 눈짓을 하며 따라오라고 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처음에 ‘뭐지?’라고 생각했는데 계속 눈짓을 하며 계단을 내려갔기에 따라갔다. 아마도 예전에 손님들을 인도하고 다녔던 기억이 남아 있어서 그런 것 같았다. 나이가 많이 들어 무거운 몸을 이끌고 우리를 인도하는데 마음이 짠했다. 보리는 소변도 보고 똥도 누면서(?) 우리를 인도했고 매우 즐거워 보였다.     


손님을 인도하는 보리와 복이


숙소에서 좀 쉬다가 점심 공양을 했다. 점심을 주지 않는 곳도 있었던 것 같은데 점심까지 챙겨주니 고마웠다. 점심도 화려한 색의 반찬들로 가득했다. 샐러드, 호박 튀김, 연근 조림, 토마토, 김치, 콩나물무침, 살짝 구운 것 같은 도토리묵, 두부, 야채 롤, 토란, 그리고 별미로 먹는 도토리떡. 반찬을 하나씩만 접시에 담아도 접시가 가득 차서 밥을 놓을 수 없을 정도였다.     


접시 우측 하단에 있는 게 도토리떡


문수암은 식사 자체가 홍보가 되었다. 음식을 먹은 것이 기억에 남기 때문에 사람들이 블로그도 많이 올리고 특히나 젊은 사람들이 그런 블로그를 보고 많이 찾아오는 듯했다.      


그렇게 1박 2일의 문수암 템플스테이가 끝나고 스님과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했다. 메리골드 차였는데, 뜨거운 물을 찻잔에 따른 뒤 잘 말린 메리골드 한 송이를 물 위에 띄워 우렸다. 맛이 살짝 나는 게 신기했다. 차를 마시며 후기를 적어서 스님께 드렸고, 나는 마당에 누워서 배를 드러내고 햇볕을 쬐고 있는 보리와 마지막 작별의 놀이를 하였다. 이번에 같이 온 사람들과도 만난 지 하루밖에 되지 않았는데 서로 얼굴이 익어서 작별의 인사를 했다.       

   

떠날 때가 되어 정이 든 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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