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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셈케이 Mar 28. 2023

10 이해의 세포분열




 이전 회사에서 만나 인연이 된 선배가 사랑스러운 아기를 낳았다. 선배와 형부의 모습을 예쁘게 닮은 아기 얼굴을 한참 들여다보며 행복을 충전한 하루였다. 선배는 형부와의 연애 일주년이 되던 날 결혼을 했고 나는 그들의 시작을 함께했다.


 한 상 가득 차려놓은 선배 덕에 배불리 식사를 마치고 대화를 나누다 최근 있었던 형부와의 일화를 듣고 가슴이 펑!하고 터지는듯한 기분을 느꼈다. 공감과 기쁨의 펑! 어쩌면 당신과 나에게도 그런 일화가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의 펑!


 형부의 어머니, 즉 선배의 시어머니가 어느 날 선배의 집에 이불을 가져다 두시며 한 달에 한번 아들네에 와서 아기도 보고 하룻밤 자고 가겠다 말씀하셨다고 했다. 아이가 보고 싶어 그러한 생각을 하셨으리라 짐작했지만 갑작스러운 통보에 선배는 적잖이 당황했다고 했다. 선배는 육아도 힘들고 바뀐 밤낮도 힘겨운데 한 달에 한번 시어른을 모셔야 한다는 생각에 아찔해 형부에게 어떻게 도움을 청해야 할지 고민했다고 했다. 쉽사리 이야기를 꺼낼 수 없었던 이유는 당신 부모의 방문이 부담된다 말하기가 차마 어려웠기에 몇 주를 혼자 끙끙 앓았다고 했다. 그리고 마음을 제대로 먹은 날, 형부의 퇴근에 맞춰 맥주와 가벼운 안주를 준비해 두고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단어와 형용을 더해 고충을 토로했다고 했다. 형부가 이야기를 듣고 서운함을 표하면 어찌할까 걱정하던 찰나, 형부는 다 마신 맥주캔을 확인하고 냉장고를 향하며 담담하게 말했다고 했다.


 “당신 성격에 이런 말 하기까지 그간 혼자 마음고생 많이 했겠네”


 그 대사에 같이 이야기를 듣던 감수성 촉촉한 또 다른 선배는 눈물이 터졌다. 맙소사. 나도 하마터면 울뻔했다. 온갖 가정을 해보며 고민하던 그 기나긴 시간을 단 한 마디로 품어주다니. 형부가 너무 멋있어 보였다. 선배도 형부의 말에 순간 눈물이 터져 한참을 울었다고 했다. 그리고 형부의 현명한 조율(?)로 시어머니는 종종 오셔도 주무시지 않고 저녁이 되기 전 댁으로 가셨다고 했다. 선배는 그날 이후 어떤 상황에도 이 남자의 편에 서서 힘이 되어주리라 더불어 시부모님께 더 좋은 며느리가 되어드리겠다는 불타는 다짐을 했다고, 그리고 형부를 더 많이 사랑하게 되었다고 덧붙였다.


 마음이 펑! 했던 이윤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이해의 순간을 실로 마주했기 때문이었다. 속상한 일을 말하는 상대에게 건조한 사과와 논리적인 대화를 통해 감정을 줄 세우는 맥 빠지는 이해가 아닌 당신의 성향과 상황을 들여다보며 포용해 주는 마음의 너비. 나는 그러한 이해와 공감이 자아내는 엄청난 힘을 믿는다. 많이 힘들었겠다는 한마디가 이 남자의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어야겠다는 거대한 다짐까지 이르게 했다. 사랑하는 이에게 받는 오롯한 이해는 이러한 비논리적인 비율의 사랑을 가져온다.


 연애도 결혼도 서로의 옆에서 가장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 자리하는 관계임은 분명하지만 어찌 매일, 매주 견고할 수만 있겠는가. 때론 균열도 생기고 가장 믿었던 순간을 헛헛하게 뒤돌아보는 날도 생기기 마련이다. 그래서 때때로 서로의 익숙함에 치고 들어오는 섬세한 사랑과 배려가 무한한 사랑으로 세포분열을 하게 된다. '잊고 있었네. 참 고마운 당신이란 걸' 내가 선택한 나의 사랑에 대한 믿음이 다시금 확고해지는 순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장 가까운 사이이기에 그저 각자 감정을 정리해주길 바라지만 오히려 가까운 사이이기에 더 면밀히 들여다보아야 한다.


 당신과 내게도 서로를 위한 이해의 너비가 보다 넓었다면 우리 앞에 닥친 난관들을 잘 헤쳐나갈 수 있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달달한 커피와 함께 목으로 넘어갔다.



 형부 어머니의 방문을 달가워하지 않는 선배에게 서운했을 만도 하다. 그러나 형부는 알고 있었다. 낯선 시댁에게 한 발 다가가게 하는 것은 본인의 배려와 이해가 우선이라는 것을. 사랑하는 아내의 마음을 먼저 헤아리고 토닥여주는 사소함부터 더 크나큰 사랑을 만들어낸다는 엄청난 사실을.


 나는 우스갯소리로 당신에게 '내 말 한번 잘 들어주면 당신 말 열 번 잘 들어줄 거야'라는 다소 지키기 어려운 말을 내뱉으면서까지 당신에게 이해받고 싶어 했다. 대체 어떻게 하면 잘 들어주는 거냐 말하던 당신은 사과도 했고, 다시는 안 그러겠다 했는데 뭐가 더 필요하냐며 볼멘소리로 말했다. 확실한 사실은 내가 원하는 것은, 또는 우리가 바라는 것은 사과가 아닌 그저 마음을 이해받고 싶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


 행복한 날 즐거운 대화 속 이해와 공감은 그저 일상적인 대화다. 보다 유연하고 편안하다. 그러나 진짜 마음에서 우러나는 이해는 내 마음이 그러기 힘들 때 당신를 위해 그렇게 하려 노력 하는 것, 머릿속으론 상대를 완벽히 이해하기 어렵지만 마음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것, 나는 그래서 고난 속에서 꽃 피우는 찰나를 진정한 사랑의 시작이라 생각해 왔다.



 애교 많은 조카와 마주 앉아 장난감을 가지고 놀던, 유난히 햇살이 내리쬐는 따사로웠던 오후. 사랑의 이해에 마음까지 따사로워졌다.


 사랑하는 이를 고요히 안아주는 넉넉한 사람이 되리라 다시 한번  다짐하게 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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