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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를 삭제할 용기가 필요하다

수집 원칙6

by 사만다

나는 디지털 중독자다.


손 필기보단 디지털 기록을 선호한다. 언제 어디서나 내가 필요할 때마다 즉시 검색해 찾아볼 수 있다는 이점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과거 수년 치 데이터는 디지털 저장 도구에 빼곡하게 쌓여간다. 아이클라우드, 구글 드라이브, OS X 메모 앱, 에버노트, 데본싱크(Devonthink), 외장 하드에 이르기까지 각종 저장소에는 디지털 자료들이 넘쳐난다. 단순한 메모에서 할일뿐만 아니라 기사, 블로그, 사진, 동영상에 이르기까지 그 형태도 다양하다. 지메일, 한메일, 네이버메일 등 엇비슷한 서비스 사이 서로 다른 계정으로 주고받는 메일 또한 디지털 혁신의 한 축으로 자리하고 있다.


하마터면 잊어버릴 수도 있는 과거의 소중한 추억들을 적시에 되돌아볼 수 있다는 점은 디지털의 매력 중 하나다. 과거 오늘 무슨 기사를 썼는지, 2년 전 여름 휴가 땐 어디를 갔는지, 무엇을 먹었는지, 무엇을 봤는지, 어디에 갔는지, 무엇을 즐겼는지 모조리 다 기억할 수 있다. 디지털 기록물 덕분이다. 요즘 OS X 사진 앱은 과거 오늘 무슨 사진을 찍었는지 알려주는 '추억' 서비스도 제공한다. 페이스북도 마찬가지다. 과거의 오늘에는 어떤 포스트들을 올렸는지 다시금 상기해준다.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 부터 기록을 지나치게 맹신하기 시작했다. "저장해두면 언젠가볼꺼야" "언젠가 하겠지"라며 하릴없이 저장만 하고 나중엔 보지 않는 "언젠가 병"에 걸린 것. 그러다보니 순간 막연하게 떠오르는 생각의 조각 마저 일단 적어놓고 본다. 다시 보지 못할 2016년을 장식하는 마지막 태양이 지는 와중에도 연신 사진과 동영상으로 담느라 현장 분위기에 제대로 취하지도 못한다. 진짜 중요한 건 현재 일이 일어나고 있는 '현재’인데 미래와 과거를 위해 현재를 포기하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최근 일이다. 주로 에버노트만 들여다보는 필자는 오랜만에 데이터 정리 차원에서 OS X 메모 앱과 심플노트(Simplenote) 앱을 켰다.에버노트에선 기사 아이템 트래킹이 자유롭지 않아 이를 해결할 방법을 나름 고심했는데 사실 잘 안됐다. 그러다가 점점 에버노트에 의존하는 비중이 커지고 심플노트와 메모 앱을 들여다보는 빈도는 낮아졌다. 오랜만에 다시 살펴보니 노트 앱에 추가한 기사 아이템 메모의 최근 수정일은 6개월도 훨씬 넘게 됐다. 심지어 이 노트는 다시 안봐도 무방한 녀석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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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노트필기 시절에야 표지만 보고 필요없으면 다 버렸다. 그 안에 귀중한 자료도 있겠지만 지금까지 멀쩡히 살아가는 것 보면 내 인생살이에 큰 영향을 미칠 놈은 아니었을 것 같다. 사실 극단적인 예시지만 지금 당장 에버노트 데이터가 사라져도 내 인생과는 사실 무관하다. 다시금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기까지 피나는 눈물과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 뿐이다. 외장 디스크에 들어있는 각종 사진과 영어 공부 자료 또한 마찬가지.


때론 너무 도구에 열광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한다. 어쩌면 우리는 생산성을 높여준다는 마케팅 문구에 놀아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히려 이런 앱을 열심히 쓸수록 더미데이터를 어떻게 처리해야하는가의 결정 놀음에 놀아나게 된다. 순간 떠오른 생각, 재미삼아 보다가 스크랩해둔 기사. 모든 것들이 의사결정에 오히려 방해만 되고 있을 뿐이다.


수집한 걸 지금까지 다시 보고 생각을 재정리하고 실행만 해왔어도 내 삶은 180도 바뀌어 있었을 것이다. 일상적인 리뷰가 없는 데이터는 사실 죽은 데이터나 마찬가지다. 수집에 집착하지 말자. 산더미같은 데이터에는 내 과거만 있을 뿐이다. 집착할수록 과거에 얽매일 뿐이다. 미래 지향적인 사람이 되려면 때론 과감하게 어떤 데이터들은 버릴 용기도 필요하다.


ps. 지금 외장하드가 뻑나가서 슬픔 마음에 이 글을 쓰는 게 아니다. ㅠㅠㅠ 내 2015년부터 사진을 날려먹어서 이런 글을 쓴 건 절대 아니다. 예전에는 디스크 유틸리티(Disk Utility)를 이용해 부팅 섹터를 수정했는데 지금은 그 수준도 아닌가보다. 정말 미치겠다.


수집 원칙 : 한곳에 모으기

당신에게 에버노트는 무엇입니까?:노트 수 9% 줄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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