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일상의 경험을 비즈니스 인사이트로 바꾸는 매일의 기록'
0212.
최근 강남이나 성수동 거리를 걷다 보면, 마치 도넛을 잘라 붙여놓은 듯한 독특한 구멍이 뚫린 아웃솔을 가진 신발을 심심치 않게 보게 된다. 나이키와 아디다스가 양분하던 러닝화 시장에서, 조용하지만 강력하게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브랜드가 있다.
'온(On)'이다.
미국에서 성공 신화를 쓰고 있는 '호카(HOKA)'에 이어 기능성 러닝화 시장을 뒤흔들고 있는 브랜드가 바로 '온(On)'이다. 구멍이 숭숭 뚫린 독특한 아웃솔로 유명해진 신발. 무섭게 성장하고 있는 온러닝 어떤 브랜드일까?
온러닝의 시작은 '올리비어 베른하르트(Olivier Bernhard)'라는 스위스 태생의 철인 3종 경기 선수로부터 시작됐다. 선수 시철 3번의 세계 선수권 대회 우승, 1개의 유럽 선수권 대회 우승, 15개의 스위스 선수권 우승이라는 타이틀을 따낸 전설적인 인물이다. 당시 나이키의 후원을 받았던 그는 새로운 개념의 러닝화 아이디어를 개발해 보자고 나이키에 제안했지만 단칼에 거절당하고 만다.
이 사건을 계기로 그는 직접 신발 제작에 뛰어들기로 결심한다. 그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실현하기 위해 친구이자 광고 디렉터였던 카스파 코페트, 가구 디자이너였던 데이비드 알레만게에게 자신의 프로토타입을 제안한다. 프로토타입을 처음 본 그들은 프랑켄슈타인 같이 못생겼다고 생각했지만, 신발을 신고 달려본 후에 그 가능성을 알아봤고, 2010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온홀딩'이라는 회사를 창업하게 된다.
온러닝이란 브랜드네임은 러너들이 달리기를 시작하도록 '스위치를 켠다'는 의미를 담아 지어졌다. 때문에 로고 또한 전등 스위치를 모티브로 제작되었다.
온러닝의 시작이었다.
이렇게 탄생한 온러닝이지만 시작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 첫째로 일단 창업자 중 누구도 운동화를 만들어 본 경험이 없었다. 두 번째로 인구 800만 명의 작은 나라 스위스에서 사업을 시작한 것도 약점이었다. 스위스는 글로벌 스포츠웨어 시장의 변방이나 다름없었고, 특히 제조 기반이나 시장 규모가 취약한 나라였기 때문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하필 그들이 뛰어든 러닝화 시장은 나이키, 아디다스, 퓨마 등 쟁쟁한 글로벌 브랜드들이 막강한 기술력과 마케팅력을 기반으로 이미 선점하고 있던 시장이었다. 하지만 온은 이러한 약점들을 오히려 자신들만의 강점으로 바꿔나간다.
1.문제의식에서 시작된 기술
그는 선수 시절 고질적인 아킬레스건 부상에 시달렸다. 그는 '착지할 때는 부드럽고, 도약할 때는 단단한' 신발을 원했지만 시장에는 그에게 딱 맞는 제품이 없었다. 어느 날 그는 정원용 호스를 잘라 신발 밑창에 붙여 보았다. 호스가 눌리며 충격을 흡수하고, 발을 떼는 순간 단단하게 펴지며 추진력을 주는(Powerful takeoff) 구조. 이것이 온러닝의 핵심 기술인 '클라우드텍(CloudTec®)' 미드솔의 시초다.
기획자의 시선에서 볼 때, 이는 철저히 사용자의 결핍(Pain Point)에서 출발해 본질적인 솔루션을 찾아낸 '문제의식에서 시작된 기술'이었다.
2. '스위스 엔지니어링'이라는 프레임
온러닝은 스스로를 단순한 스포츠 브랜드가 아니라 '엔지니어링 회사'로 정의한다. 그들은 스위스라는 이미지를 그들의 브랜드에 적극 차용했다. 스위스 메이드(Swiss Made)'가 주는 정밀함과 신뢰성이란 이미지를 러닝화에 이식했다. 이 모토에 맞게 온은 스위스 특유의 정교하고 깔끔한 디자인을 추구한다. 요란한 로고 없이도 '이 신발은 뭔가 다르다'라는 인상을 준다.
온의 이러한 문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곳이 바로 스위스 본사에 위치한 '온랩스'다. 온랩스에서는 제품 디자이너, 소재과학자, 기술 엔지니어, 생체 역학 전문가 등 400여 명의 직원들이 협업해서 혁신적인 러닝화를 개발한다. 이곳에서 탄생한 신발에는 '스위스 엔지니어링'이란 문구가 새겨져 있다. 이는 기능성을 중시하는 '스니저(Sneezer)'들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는 강력한 브랜딩 수단이 되었다.
3.로저 페더러, 그리고 라이프스타일로의 확장
이 신발은 러너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며 서서히 인기를 끌게 된다. 그러던 중 온러닝의 성장에 가속도가 붙는 사건이 생기게 되는데, 테니스 황제 로저 페더러(Roger Federer)의 합류였다. 그는 단순한 광고 모델이 아니라 투자자이자 공동 크리에이터로 참여하며 온러닝의 성장에 기폭제 역할을 하게 된다. 페더러라는 최고의 페르소나를 통해 온러닝은 '러닝 크루'들의 전유물을 넘어 전문직 종사자, 창의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의 일상화로 영역을 확장해 나가는 계기를 맞이한다.
4.팬더믹과 러닝붐
2020년 코로나팬데믹을 거치면서 온러닝은 급성장을 하게 된다. 전국의 체육관이 문을 닫자 수많은 사람들이 달리기를 시작하면서 동시에 러닝화를 구매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너도나도 달리기에 적합한 기능성 신발을 찾게 되면서 온러닝은 단숨에 크게 성장하는 행운을 누리게 된다. 이러한 매출 성장세에 힘입어 2021년 온은 창업 11년 만에 미국나스닥 상장에 성공한다. 국가별 판매량을 살펴보면 미국의 비중이 압도적이다. 온러닝의 매출 가운데 약 65%가 미국에서 발생한다. 25년 온러닝의 매출액은 약 30억 스위스 프랑. 한화로 약 5조 원에 달한다. 이는 전년비 34%가량, 5년 전과 비교하면 자그마치 300% 가량 성장한 수치다.
5.그들만의 독특한 판매 전략
팬더믹과 함께 전 세계적으로 D2C 열풍이 불어닥쳤다. 'D2C'란 'Direct to Consumer'의 약자로 중간 유통 단계를 없애고,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하는 방식을 말한다. 나이키가 나이키스토어에 전념한 시기도 이 때다. D2C 모델의 장점은 소비자와의 접점을 강화하는 것은 물론 고객 데이터까지 확보할 수 있고, 중간 유통 단계를 건너 뛰기 때문에 마진 또한 극대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단점도 있다. 브랜드가 온라인과 오프라인 매장으로 소비자를 직접 유치해야 하기 때문에 고객 확보 비용이 증가한다는 점, 때문에 자사 채널을 통한 브랜딩에 많은 돈과 노력이 든다는 점이다.
온은 이러한 D2C 모델의 장점만을 취해 자신만의 독특한 성장 경로를 개척한다. 바로 순서를 바꾸는 것이었다. 초창기 직영 매장을 열기보단 전문 소매점의 제품을 공급하는 전략을 택한다. 온이 전문소매점에 먼저 집중한 이유는 신생 브랜드로서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고 더 적은 비용으로 고객을 유치하기 위함이었다.
이후 온의 인지도와 브랜드 파워가 어느 정도 쌓이면서 본격적으로 D2C 모델을 도입했고, 그때부터 런던, LA, 뉴욕 등 핵심 지역에 대규모 플래그십 스토어도 오픈하기 시작한다.
'Ignite the human spirit through movement(움직임을 통해 인간의 정신을 불태우다)' 온(On)의 브랜드 철학이다.
단순히 신발을 파는 것을 넘어, 사람들이 더 많이 움직이고, 달리고, 그 안에서 즐거움을 찾도록 영감을 주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때문일까? 클라우드텍(CloudTec®)이라는 혁신적인 기술을 기반으로 탄생한 브랜드지만 개인적으로 ‘온러닝’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기술(Tech)'이 아니라 '감각(Stylish)'이다.
그들은 '빠른 사람'이 아니라, '달리기를 계속하는 사람'에게 집중했다.
엘리트 선수 시장은 이미 거대 브랜드(나이키, 아디다스)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대신 온러닝은 도시의 러너, 출근 전 5km를 뛰는 사람, 주말마다 자신과 싸우는 일반 러너들에게 말을 걸었다.
'당신이 계속 달릴 수 있게 하겠다.'
그들이 말하는 메시지는 늘 한결같다.
'Move in, Live out(계속 움직여라)'
온러닝은 단기간에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했다. 하지만 그들의 성장 이유가 기술 혁신 하나 때문은 아니다.
그들은 ‘기록을 깨는 순간’이 아니라, ‘다시 신발 끈을 묶는 순간’에 집중했다.
그들은 '최고가 되겠다'고 외치지 않았다. 대신 '계속 달리게 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 태도가 그들을 글로벌 무대의 ‘최고’ 반열에 올려놓았다.
브랜딩 또한 결국 하나의 질문에서 시작한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다.
'우리는 무엇을 더 잘 만들 것인가? 아니면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인가?'
혹시 여전히 남들의 속도에 맞추느라 정작 중요한 '내 신발 속 돌멩이'를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가?
질문하고 또 질문해 본다.
'위대한 브랜드는 유행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당연하다고 믿었던 불편함에 질문을 던지는 것에서 시작된다.'
- 사마리아인 -
- 관련글 보기 : 아식스런도쿄 'AsicsRunToky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