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Luminari 露美那里論 — 루미나리즘(露美那里主義)
해를 향해 고개를 드는 진생(人蔘)
내가 루미나리가 된 사연, 들어볼래?
나는 빛이 되고 싶었어.
내 안의 어둠이 부끄러웠거든.
싫은 거랑 부끄러운 것의 차이, 생각해 본 적 있어?
싫은 건 괜찮아.
그건 내 마음의 소리잖
하지만 부끄러움은, 나를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을 담은 감정이야.
나는 내 눈이 없었어.
타인의 눈으로 나를 바라보느라 피 흘리고 쓰러졌다는 걸,
그땐 몰랐지.
나?
다이어트 세상의 잊힌 전설이야.
루저야.
한때는 전국구 스타였지만, 이제는 뚱보거든.
그런데 내가 다이어트를 그만둔 계기, 말해줄까?
부끄러움과 싫음,
이것과 맞닿은 이야기라서 들려주고 싶어.
대한보디빌딩협회에서 주최하는 대회 출전을 두고 고민하던 때였어.
내가 빌더로서 가진 게 있더라고?
데피, 근질은 엄청난 공주였지.
근데, 그때 이런 대화를 나눴어.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운명을 가른 순간이었어.
“너는 왜 다이어트해?”
“내 몸이 예뻐지는 게 좋아서.”
“난 내 몸이 얼마나 근사해질 수 있는지 궁금해서.”
나는 왜 다이어트를 할까.
반골기질을 가졌지만,
‘해야 할 일’에는 ‘왜’를 묻지 않는 타입이었거든.
그냥 하는 거니까.
그제야 나에게 물었어.
“왜?”
“뚱뚱한 게 싫어서.”
그러니까 왜?
싫은 이유가 부끄러움이었어.
나는 뚱뚱한 내가 부끄럽고 창피해서 다이어트를 해야 했던 거야.
‘하기로 했다’가 아니라,
고민도 없이 그렇게 정해져 버린 거.
끔찍한 수동태로 다이어트가 시작된 거지.
한참 몸을 만들었을 때도
나는 내가 얼마나 작은지 몰랐어.
초등학생 옷이 맞을 정도로 줄어들고서도
늘어진 뱃살, 허벅지 안쪽의 흐물거림만 바라봤어.
— 지금 다시 뚱보가 되고 나서야, 그게 보여. —
나는 어쩔 수 없는 뚱보라고 생각하면서
내가 얼마나 되는지 알고 싶어 친구에게 부탁했어.
“지나가는 사람 중에 나랑 비슷한 크기의 사람이 있으면 알려줘.”
나는 나의 원함으로 떠난 게 아니었어.
‘다른 사람에게 잘 보이고 싶다’는 욕망을 제외하면,
그저 ‘마땅한 사이즈’가 되지 못한 나를 고치려던 거였지.
어디인 줄 몰라서 혼란스러웠는데,
결국 완전히 잘못된 곳으로 들어왔다는 걸 알게 된 순간이 있었어.
알아도 멈출 수 없는 가속열차에서
앉지도, 내리지도 못한 채
우울의 파도가 나를 덮쳤지.
그리고 축축한 움막의 끝에서,
벌레처럼 기어 다니던 시간의 끝에서
나는 너의 문을 두드렸어.
그 시절의 나는 다이어트를 통해
인생의 법칙을 깨달았다고 믿었어.
반드시 할 수 있다는 것,
단점과 약점으로 가려진 곳에
내가 상상도 못한 장점이 숨어 있다는 것.
뚱뚱함이라는 자리에서 벗어나니까
비로소 내 피해의식의 모양이 보였거든.
그리고…
다시 뚱뚱보가 된 나는
실패한 사람처럼 괴롭고, 또 부끄러웠어.
하지만 이제는 알아.
날씬한 내가 좋긴 좋았고,
하프 마라톤을 거뜬히 뛰던 내가 참 좋았지만
그곳이 내 자리가 아니었어.
세상엔 뚱보도 있어야지.
내가 어둠을 맡겠다는 뜻이 아니야.
좀 더 들어봐 줘.
여기가 루미나리의 시작이니까.
나는 내 어둠이 싫지 않았어.
온실의 화초 같은 밝음을 동경했지만
나는 어둠 쪽에 익숙하고, 그래서 편안해.
그렇다고 익숙하니 뭉개고 살겠다는 건 아니야.
나는 ‘상처받았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해.
지나고 보니, 나는 나 스스로에게 상처를 내는 셀프 학대자였더라.
그래서 남에게 받는 상처는
낮은 단계의 고통으로 바꾸어버렸어.
사실은 순서가 바뀐 거야.
남의 시선과 말에서 받는 상처를 축소하기 위해
스스로에게 비수를 꽂으며 살아온 거지.
그래서 누군가에게 상처받았다는 건
내 감각의 층위에서는 잘 닿지 않아.
그런데,
시간이 한참 지난 뒤에야
‘상처’가 된 말을 하나 기억하게 됐어.
내가 사랑한 그 아이가 내게 말했지.
“누나는 즐거움을 함께하고 싶은 사람은 아니에요.
힘든 일을 털어놓고 싶은 사람이죠.”
아마도 나의 어둠이 그의 어둠을 감쌀 수 있었겠지.
하지만 그 역시,
자기 안의 어둠을 벗고 빛으로 가고 싶었을 거야.
그때 나는 더 부끄러워졌어.
나의 어둠이.
어둠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려 애썼지만,
마지막 등불이 꺼진 것처럼
나는 빛의 아이가 되고 싶어졌어.
빛이 닿지 못한 어둠의 깊숙한 자리에서,
눈물처럼 피어난 미나리 하나.
그것이 루, 미나리의 첫 호흡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