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개지랄 떠는 딸년이 된 이유(5)

느린 독립 10

by 삼각커피
B느린독립09.png

목구멍에 걸린 용암 같은 감정이 입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두려울 것도 없었고 더 이상 참고 싶지도 않았다. 괴성이 오가고 난 새벽, 나는 이기적이고도 매정한 사실 한 가지를 깨달았다. 내 의견을 참고 우울하고 무기력한 사람보다 화내는 분노조절 장애가 남한테 피해는 줘도 본인은 세상 살기 속 편하다는 사실 말이다. 감정 조절을 못하는 병적인 사람이 되겠다는 건 아니지만 속 앓이 하는 것보단 낫다. 이제는 내 분노를 참지만은 않겠다.. 회피하지도 두려워하지도 않고 내 마음을 지킬 것이다.


그동안 독립에 있어 내가 결정하려는 것 모두 딴지를 걸던 엄마 때문에 나도 내 결정이 의심스러웠다. 내 선택이 맞나? 지금 사는 게 손해인건 아닐까? 싶어 부동산만 들락거렸는데 그날 밤 바로 결심이 섰다. 그날 밤 아빠와의 소란으로 인해 물렁한 마음이 단단해졌다. 곧장 그 주 주말에 가서 매물을 보고 계약까지 해버렸다.


내 나이 30대 중반이 되어하는 독립, 이 독립은 가볍게 자취 같은 의미로 여겨지지 않는다. 20대 때 학교가 멀어 학교 근처 고시원에서 살다가 힘들면 다시 집으로 들어가도 아무렇지 않은 느낌이었다면, 이제는 돌이킬 수 없이 완전한 개별 가구로 혼자 사는 삶은 선택한 느낌이다.


내 결연한 마음가짐을 주변에 말하면 뭘 그렇게까지 생각하냐 하겠지만, 나는 오롯이 내 힘으로 살아남아 부모님에게서 정신적으로 벗어나고 싶었다. 내 어린 시절을 지독하게 괴롭히던 기억에서 멀어지고 싶었고 그 기억들로 습관처럼 베어버린 주눅 들고 무기력한 못난 나는 지우고 싶었다. 나만을 위해 사는 나만 사랑으로 키우고 싶다.


계약서를 쓴 뒤로는 틈틈이 안 쓰는 물건들을 정리했다. 어렸을 때 부모님이 싸울 때마다 울면서 쓰던 일기장과 그 당시 우울함에 종이에 상처 내듯 토해낸 그림이 내 방에 한가득이었다. 청소년 때, 부모님 싸움으로 힘든 이 감정을 잊지 않고 나중에 꼭 이 감정을 그대로 똑같이 돌려주리라 생각하며 일기장을 펼쳐 바득바득 틈 날 때마다 보고 또 보며 상처받은 모든 날을 기억하고 있던 치기 어린 과거의 나를 이제 놓아주기로 했다. 그동안의 일기장, 그림을 다 정리했다. 이불속 숨죽여 울며 눈물로 적신 너덜거리는 소매를 갖고 있는 잠옷도 쓰레기 통으로 들어갔다.


이것저것 다 버리고 나니 짐은 소박했다.


이사 당일, 지하철로 옮길 마지막 짐을 캐리어에 눌러 담고 집을 나섰다.


몇십 년 동안 수없이 싸우고 시끄럽게 해서 이웃 주민을 만나면 부끄러워 똑바로 앞을 보기 어려웠던 우리 집. 던진 물건들 때문에 찍히고 부서지고 망가진 흔적이 가득한 우리 집. 창문 밖으로 떨어져 죽을 거라고 술 먹고 아빠가 베란다로 나가서 울며불며 아빠를 잡고 매달려 울고불고 난리를 쳤었던 우리 집.


아, 이 집과도 안녕이구나...


나가는 나를 배웅하며 엄마가 말한다.


"간다고 하니까 말리진 않지만.. 좀만 더 천천히 결정하지, 뭐가 그렇게 급하게 그래. 내년에 더 돈 모아서 나가지. 집도 그렇게 싸게 산 것도 아니구먼."



IMG_4504.PNG


인스타그램도 놀러오세요:-)

https://www.instagram.com/triangle__coffee/




keyword
화요일 연재
이전 10화개지랄 떠는 딸년이 된 이유(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