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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주는 밥상 권력(2)

느린 독립 13

by 삼각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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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모든 게 밥으로 통한다고 하지만 하다 하다 밥에 권력을 붙여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나에게는 생각의 끝에 다다르고 싶지 않았던 주제였달까.


보통 가족에게 밥은 '집밥'이라 불리며 공기와 같고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한 것 아니었나.


어렸을 때는 아빠는 밖에서 일하고 엄마는 집에서 집안일을 하며 우리를 돌보는 것이 당연했다. 엄마의 밥은 상대를 위한 마음이고 가족의 울타리에 자연히 맡은 역할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밥을 권력으로, 밥상차림으로 위아래를 나누고 싶지 않았다.


서로를 아끼고 배려하는 집에서는 특정 누군가가 누구를 차려준다는 것에 집착 없이 시간 되는 사람이 차리고 받는 사람은 차림에 감사하며 밥으로 마음을 채운다.


회피했지만 사실 우리 집에의 상차림에 대한 권력의 흐름을 난 느끼고 있었다. 아빠는 자기 마음에 안 들어 화를 낼 때면 밥상을 뒤집었고, 국그릇을 던졌으며, 식탁 유리를 깨뜨렸다. 밥으로 시위를 했음에도 어김없이 다음 식사 때 차려지는 게 밥상이었다. 분명 우리 집 밥상에는 권력이 존재하고 있다.


가사노동, 가사노동 말한 하지 어째 진심으로 알아주는 사람 하나 없다. 매일 차린 밥을 먹기만 사람 마음의 온도는 미적지근 데우고 엄마는 그냥 밥이 되어버린 것 같다. 그런 엄마의 시간이 장녀인 나에게 자연스레 대물림되자 나는 이 '밥상차림'이 거슬리기 시작했다.


왜 초등 저학년인 내가 다 큰 성인인 아빠 밥을 차리고, 티브이를 보는 아빠와 남동생 뒤로 혼자 설거지를 해야 하며, 놀다 들어온 다 큰 남동생의 밥을 차려 달라고 하면 밥을 차려야 하는지, 집에서 누구도 강요하는 사람은 없지만 당연한다는 듯 나는 왜 밥을 차려야 하는 건지. 다 어딘가 찝찝하고 싫고 벗어나고만 싶었다.


밥을 차리는 건 '노동'이라는 생각만 드니 독립을 하고 혼자 살게 됐을 때도 일이 바쁘고 고되면 혼자 먹는 밥도 차리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가 됐다. 퇴근을 하고 집에 왔는데 다시 출근하는 느낌이 든다. 차리고 먹고 치우면 한 시간 반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마법이 펼쳐지니 피곤하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배달로 음식을 주문하기 바빴고, 일로 받은 스트레스는 자극적인 간과 기름진 육즙으로 배를 가득 채우면서 풀었다.


살이 찐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일 년간 러닝을 하고 이사를 하면서 열심히 뺀 몸무게가 영원히 그대로 유지된다는 보장도 없는데 그렇게 밤마다 파는 음식을 밀어 넣었으니.. 결과는 참담했고 충격적이었다.


일 핑계로 나를 놔버린 시간들이 후회스럽고 늘어난 숫자만큼 나를 소홀히 했다는 생각에 스스로가 원망스러웠다.


그래서 아빠가 누렸던 그 권력, 나도 한 번 누려보기로 했다. 소홀했던 나에게 건강한 밥상으로 스스로를 대접해 주기로 한 것이다.


주말엔 채소 위주로 장을 보고 있다. 채소는 잘 무르지 않는 것들로 사고 잘 손질해 소분해 당장 먹을 양은 냉장칸에, 오래 먹어야 할 것들은 냉동칸에 얼려 둔다. 설탕 대신 대체당인 알룰로스를 사용하고, 당분간은 밀가루 음식을 먹지 않기로 했다. 세일한다고 10개씩 잔뜩 사놓고 부자처럼 쌓아두며 먹던 과자도 끊기로 했다. 이것 모두가 나를 위한 대접이다.. 진짜다.


난생처음 시금치를 한 단 사봤는데 몇 번을 먹어도 줄지를 않는다. 뿌리는 자르고 끓는 물에 살짝 데쳐 마늘과 된장 조금을 넣고 버무리다 참기름을 두르고 깨를 뿌리니 처음 한 것 치고는 꽤나 그럴싸한 시금치나물을 무쳐냈다.


오늘 밥상은 시금치나물과 닭가슴살, 양배추 들기름 샐러드였다. 오랜만에 컴퓨터 앞이 아닌 식탁에서 밥을 먹는다. 체크무늬 천을 깔고 데운 밥은 사기그릇에 옮겨 담는다. 수저에도 수저받침을 깔아주고 반찬은 접시에 예쁘게 담긴 반찬으로 먹는다. 고생한 사람은 나지만 그 그럴싸한 밥상을 받는 사람도 나니 오롯이 존중과 아낌은 나에게 돌아온다.


나 아니면 누가 날 챙기겠어?


이젠 내가 나를 보살피고 대우해 주기로 했다.



-몇 달 전 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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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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